금리 동결시 긴축 효과 vs 양극화 해소 등 미시정책 필요
[뉴스핌=정연주 기자] # "엄밀히 말하면 가계부채는 정부 소관인데, 한국은행이 가계부채를 이유로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것은 핑계 아닌가. "(기획재정부 관계자)
# "가계부채가 한은 소관이 아니라고 치자. 이번에도 금리 인하를 했는데 경기 부양 효과는 없고 가계부채만 늘면 결국 가장 큰 책임을 한은에 물을 것이다.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의 여력이 더 남았다고 본다."(한은 관계자)
한국은행 안팎으로 또 다시 기준금리 인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두 차례 금리 인하에도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치권을 필두로 외부에서 다시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것이다.
모든 정책당국자의 목표는 '경기 부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수단에 따라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글로벌 통화완화 기조에 발맞춰 추가적인 통화 완화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불투명한 금리 인하 효과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간 한은은 그간 급증하는 가계부채와 사상 첫 1% 기준금리 시대 진입에 추가 통화완화책을 내놓기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우려 확대에 만약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면 우리나라는 사상 첫 1% 기준금리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고육지책으로
◆ "저물가 덫·힘 빠진 수출..한국 나홀로 긴축 못 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진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지표와 낮은 수준의 물가를 근거로 내세운다. 일본·유로존 등 글로벌 통화완화 기조 속에 최근 중국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것 또한 부담이다.
올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5%)이 1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재부상한 한편 수출채산성도 더욱 악화했다. 이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그간 한은을 두고 '할 만큼 했다'고 보던 정부 당국자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잡고 있다. <사진=김학선 기자> |
주요국이 통화 완화정책 카드를 꺼낸 상황에서 기준금리 동결은 상대적인 긴축 효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정책 효과들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어떤 정책만을 해야 한다고 꼽기 어려우며 가능한 거시·미시정책 모든 것을 동원하는 전방위적인 대응 방법이 어떨까 싶다"고 진단했다.
또한, 한은이 내세우는 '구조개혁론'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응 방법으로 당장 우리나라 경제 현안의 대응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들이 대다수다.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서 늘어나는 가계부채는 미시적 대응으로 조절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현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다면 자연스럽게 긴축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구조개혁으로 당장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기 쉽지 않은데다 상대적인 환율 수준, 실질 금리를 고려한다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미시적인 정책으로 조절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기존 가계대출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쪽이 맞다"고 진단했다.
◆ "금리 인하해도 경기부양 효과 제로"
반면 추가 인하에 부정적인 의견들도 만만치 않다. 금리 인하가 경기를 단기적으로 반등시킬 수 있더라도 가계부채와 전세가격 급등을 부추겨 결국 작은 대외충격에도 쉽게 무너지는 '모래성'을 쌓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금리를 인하한다면 한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더라도 결국 다른 주머니로 돈이 들어오는 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로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의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은 금리 인하로 시중의 유동성을 확대해봤자 투자 유인이 부족해 실물경제로 유입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는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유동성 함정'이다. 쉽게 말해 돈이 있어도 투자할 곳이 없다는 것인데, 애초 기대수익이 낮으니 결국 기업들도 곳간에 돈을 쌓아 놓을 수밖에 없다.
또 현재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공급 측면 물가하락에 기인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이 전 세계 물가를 끌어내리고 있으며, 이 같은 저물가 현상은 통화 완화정책의 부족함보다는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된다.
외국계은행의 A 채권딜러는 "금리 인하를 해봤자 자산을 통한 기대수익률이 하락하니 실물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거시정책 대응은 현재로서 한계가 있으며 일본 양적완화의 실패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겉잡을 수 없이 급등하는 전세가격도 금리 인하에는 부담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집주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되고 전세 물량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은 이미 지난해 두 번의 금리 인하로 나타난 '전셋값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확인했다.
이에 금리 인하보다 양극화 해소 등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미시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를 통해 유동성의 선순환 구조가 해결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현재 15조원 한도로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운영 중인데, 이를 확대하는 방안도 금리 인하의 대안으로 경기 부양에 일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유익선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금리 인하가 가계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반드시 작용하고 있지 않다"며 "금리 인하가 수차례 단행돼 기대감이 생기면 오히려 민생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경제의 크레딧 양극화와 함께 가계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며 "금리를 낮춘다고 해서 금융기관의 대출태도가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며, 취약계층 또는 취약기업에 대한 대출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양극화를 방지하는 신용정책이 소규모 금리 인하 정책보다 더욱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만약 이번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사상 첫 1% 기준금리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대응에서 한 발 물러서는 듯했던 한은이 거세진 인하 압력 속에서 어떤 묘책을 내놓을 지,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정연주 기자 (jyj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