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박지연이 올여름 '시라노'를 거쳐 국내 최고의 흥행대작 '레베카'에 합류했다. 누군가는 의외의 선택이라지만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지금, 완전히 새로운 '나'로 호평받고 있다.
'레베카'에 출연 중인 박지연과 19일 한남동 모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레베카'를 만난 후 어느 때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왔을 그는 "힘든 게 맞는 것 같다"며 매일 더 '레베카'를 사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작품을 한번 봤는데 정말 재밌다는 감상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EMK뮤지컬컴퍼니 작품 중 가장 재밌었죠. 이번 시즌 김문정 감독님이 영상 요청하셔서 자연스럽게 참여했죠. 이렇게 작품에 애정이 커질 줄 몰랐어요. 연습과정도 너무 힘들고 '내가 할 수 없는 걸 한다고 했나' 후회될 정도였죠. 공연을 시작하고 무대에 서면서 이제야 재미를 찾아가요. 적응이 되니 재미가 보이고 애정도 수직상승했죠. 뭣보다 관객이 이렇게 좋아해주는 작품이 있을까요. 힘든 만큼 보람있고, 행복하게 공연 중이에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레베카'에 출연하는 배우 박지연 [사진=WIP] 2019.12.20 jyyang@newspim.com |
박지연이 연기하는 '나'는 '레베카'의 이야기를 열고 끝까지 이끄는 주인공이다. 다만 강렬한 카리스마의 댄버스 부인과 비밀스러운 남자 막심, 실체조차 없는 레베카에 비해 조금은 평범하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기에 등장인물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 캐릭터기도 하다.
"힘든 게 사실 맞죠. 뭐든 쉽게 하면 안되는 느낌이에요. 일단 분량이 어마어마해요. 무대에서 퇴장을 안해요. 더 힘든 건 '나'로서 목소리를 내는 부분은 뒷부분에 잠깐이고 그 전까지 타인의 영향을 계속 받거든요. 그렇다보니 중심을 잡고 끌고가기보다 영향을 계속 받는 리액션이 힘들더라고요. 모든 사람의 감정을 계속 받아내야 하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을 받으면, 다음엔 제가 다른 신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관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짐을 내려놓고 가는 게 아니라 계속 어깨에 감정의 짐을 싣고 가는 기분이죠. 그래도 이걸 극복하고 싶지 않아요. 계속 힘들면서 해야 하는 역할 같아요. 그래야 안주하지 않고 장기공연을 잘 마칠 수 있겠죠."
기존에 '나' 역을 했던 배우들에 비해 박지연의 기존 캐릭터를 생각하면 의외란 반응도 있었다. 박지연은 "그런 말씀이 기분 좋다"고 웃었다. 어떤 역을 할지 빤히 예상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배우로서는 확실히 기쁜 일인 듯했다.
"사실 저도 '나' 역이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인물인지도 몰랐죠.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이 기분이 좋아요. '나'가 안보이는 게 사실 정상이에요. 말 그대로 주변의 영향을 받는 인물이고 댄버스, 막심, 레베카의 존재감에 대해 '나'의 시점에서 소설을 이야기 하는 사람인 거죠. 하다보니까 이 공연과 '나'의 매력을 정말 많이 느껴요. 한번 보시면 '레베카'라는 킬링넘버가 각인되기 쉽죠. 저는 공연을 하다보니 '이렇게 상징이 많은 작품이 또 있던가?' 싶어요. 모든 오브제와 인물들이 현실의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하죠. 관객들이 모두 '나'가 돼 보기에 더 재밌는 뮤지컬이에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레베카'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2019.12.20 jyyang@newspim.com |
극 초반에 '나'는 강렬한 느낌의 반 호퍼 부인, 막심, 댄버스 부인에 비해 조금은 주눅들어있는 듯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박지연이 나름대로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쨌든 박지연의 캐릭터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나'를 빚어냈다는 반응들이 대다수다.
"저는 '나'가 일관된 사람으로 보이게끔 신경썼어요. 물론 후반에 막심을 구하기 위해 변화하는 지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A라는 사람이 B가 될 수는 없는 거죠. A에서 조금씩 A1, A2, A3로 바뀌길 바랐어요.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 일관된 사람으로 보였으면 했죠. 쉽지는 않았어요. 대본에 '나'가 너무 나약하게 표현돼 있었거든요. 처음엔 어떡하나 싶었죠. '나'는 나약해서 환경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우뚝 서있기 때문에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나'가 댄버스에게 '왜 날 조롱한 거냐'고 화를 낼 때도 단지 그 사건 때문이 아닐 거예요. 맨덜리에 들어와서 당한 대우와 모든 힘듦이 쌓였다 터진 거죠. 단지 작은 푸들 강아지가 멍멍 짖는 것처럼 하고싶지는 않았어요."
'나'로 무대에 서면서 박지연은 막심 역의 류정한, 엄기준, 카이, 신성록까지 네 명의 배우와 로맨스 호흡을 맞춘다. 넷의 차이를 물으니 "정말 다른 막심들이다"라면서 웃었다. 막심 뿐만 아니라 댄버스 부인도 옥주현, 신영숙, 장은아, 알리까지 네명이나 된다. 페어 조합만도 셀 수 없을 정도라 매 무대에서 매일 새로운 호흡이 나온다.
"성록오빠와는 아직 첫공을 못했어요. 연습 때는 뿜어내는 에너지가 가장 많은 막심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카이 선배는 좀 더 섬세한, 상처가 많았을 것 같은 막심이죠. 엄기준 선배는 연습할 때 처음으로 펑펑 울었어요. 도대체 속을 모르겠는 거예요.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요. 이번에 '하루 또 하루' 직전에 감정 연기를 하면서 엉엉 울던 그때가 기준 선배와 할 때였어요. 정한 선배랑은 정말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그래도 '시라노' 때 호흡을 맞춰본 게 있다보니 전혀 걱정이 안되고 오래 전부터 해온 느낌이 들어서 편안했죠. 저와 스케줄도 제일 많이 붙어요. 어쩌면 제가 가장 편안하고 기댈 수 있는 막심이에요. 이 사람을 아니까 잘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레베카'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2019.12.20 jyyang@newspim.com |
박지연을 너무도 힘들게 한 작품이지만, 가장 친한 배우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 되기도 됐다. 함께 '나'를 연기하는 이지혜, 민경아가 바로 그들이다. 연습 때부터 서로 의지를 한 것은 물론 공연 중인 지금도 서로의 노트를 알려줄 정도로 돈독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진짜 연습실 가기 싫을 때도 '나' 같이하는 친구들 때문에 '그래도 가야해' 할 정도였어요. 너무 유쾌하고 재밌은 친구들이거든요. 사실 많이 힘든 역이고 '나'는 해본 사람만 안다고 할 정도로 마음이 통해요. 그래서 셋이 똘똘 뭉쳤죠. 지금도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매일 공연하면서 만나는 문제나, 이럴 땐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점들을 적어서 주고받아요. 페어가 많으니 조금씩 달라지는 걸 얘기해주기도 하고요. 연습할 땐 모니터도 서로 해주고 셋이서 의지하면서 한 달을 보냈어요. 성격은 다 완전히 다르고 비슷한 구석이 없어요. 그래서 더 친해졌나봐요."
끝으로 박지연은 '레베카'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 또 이 공연이 가치있는 이유를 얘기했다. '독이 된 사랑과 초월한 사랑'이라는 작품의 주제와도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결국은 극중에서 그다지도 괴롭게 했던 레베카와 댄버스마저도 끌어안으려 한 '나'가 막심을 살리고 모든 걸 가능케 했다. 그의 말처럼 진정한 사랑과 믿음의 힘이 '레베카'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극중에 정말 많은 인물이 나와요. 우리가 살면서 댄버스, 베아트리체, 프랭크 같은 사람도 다 만날 수 있는데, 결국 해결점은 사랑이었다는 걸 요즘 늘 깨닫죠.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 막심에게만 적용되지 않아요. '나'는 죽일 듯이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죠. 그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줘요. 모두가 '나'를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많거든요.(웃음) 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사랑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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