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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일할 사람 없는데"...주 52시간 시행에 중소기업들 '울상'

기사입력 : 2021년06월20일 06:56

최종수정 : 2021년06월20일 06:56

고용부담 느는 데 코로나19로 외국인 채용도 막혀
해외 수주·기후 등 영향 조선·건설업 '답답'

[서울=뉴스핌] 조석근 기자= 인천 서부산업공단의 A주물업체는 직원 5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 경영진은 오는 1일부터 적용될 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금형에 쇳물을 부어 각종 부품을 생산하는 업종 특성상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3D 업종'으로 불리면서 젊은 층이 유입되지 않아 대부분 직원이 정년기를 지난 60대 중반 이상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될 경우 현재 2교대 근무에서 3교대로 전환해야 하는데 인력을 구하기가 마땅찮다. 이 회사 관계자는 "청년들이 하루 일 해보고 못 하겠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앞으로 2~3년 뒤 이쪽 업종이 남아 있긴 할지도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서울=뉴스핌] 조석근 기자 =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주 52시간제 대책 마련 촉구 경제단체 공동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2021.06.14 photo@newspim.com

B업체는 건설현장에서 철근, 형틀 시공을 담당하는 하청업체다. 콘크리트 타설 전 건물 기본 구조물을 만드는 공종 특성상 야외 작업이 대부분이다. 이 회사 사람들에게 지난해는 악몽 그 자체다. 6월부터 9월까지 기록적인 폭우를 동반한 54일간 역대 최장기 장마로 상당 기간 작업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도 예년보다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에 걱정부터 앞선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가 오는 날이 많으면 공기를 맞추기 위해 연장근무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경우 연장근무를 없애는 대신 인력 채용을 늘려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교대→3교대 전환 시 직원 30% 더 뽑아야, 영세기업들 '폭발'

20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내달 1일부터 고용인원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는 가운데 중소기업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 및 경제계가 이들 사업장에 대한 최소 1년 이상 계도기간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주 52시간제는 2018년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종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의무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도입됐다. 2018년 7월 대기업을 포함한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된 이래 지난해 1월 50~299인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주 52시간제 시행 전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선 9개월, 50~299인 사업장에 대해선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엔 법 시행 3년이 지난 만큼 별다른 계도기간 없이 곧바로 적용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인력 수급이 어려운 주조·금형·소성가공·열처리 등 소위 '뿌리산업'과 영세 제조업, 기후 영향과 수주조건으로 탄력적 근로에 대한 요구가 큰 조선·건설업계 중소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중기중앙회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부가 지난 5월 주 52시간제 노동시간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용인원 50인 미만 제조업체 38.8%가 아직 주 52시간제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미 시행 중인 고용인원 50인 이상 기업들 34.6%가 여전히 시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주 52시간제 적용 이후 고용 부담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을 줄인 채 조업 수준을 현재 수준대로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따른 지난해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실적은 대체로 악화됐다. 이미 최저임금도 2018년 16.4%, 2019년 10.9%로 크게 올라 인건비 부담을 키웠다.

[서울=뉴스핌] 조석근 기자= 조선업, 건설업은 기후 영향이 큰 대표적 업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요구가 크다. 사진은 아파트 건설현장 2021.06.18 photo@newspim.com

특히 전통적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크다. 업무강도가 세고 위험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아 기피 업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뿌리산업의 경우 2019년 관련 종사자가 51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8000명(6.9%) 줄었다.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보니 종사자들의 전반적인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주물업계 관계자는 "자동화 설비를 갖춰도 주야 2교대 근무인 경우가 많아 주 52시간을 적용할 경우 3교대로 바꿔야 한다"며 "인력을 최소 30% 이상 늘려야 하는데 기피 업종 특성상 신규 채용 자체가 어렵고, 숙련인력을 구하기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업종 특성상 탄력적 근무여건이 필수적인 곳도 적잖다. 대표적인 게 조선업이다. 해외수주가 많은 업체 입장에선 발주처들은 통상 국내 법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들이 요구하는 납기일에 맞추다 보면 연장근무, 특별근무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건설업은 조선업과 함께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대표적 업종이다.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면 조업이 중단된다. 장마철과 7~8월 혹서기, 12월~2월 혹한기는 다른 때보다 조업일수가 더 줄어든다. 그 때문에 건설업의 월평균 근로일수는 15.7일로 전체 평균 18.4일보다 적은 편이다.

주 52시간제가 전면 도입될 경우 이같은 근로일수 자체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비·성수기 구별, 기후 여건 등 업종별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라는 요구인데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근로여건 개선? 잔업·특근 없어져 '투잡' 뛰는 경우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출입국 자체가 중단되면서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중단된 점도 중소기업들의 고충이다. 지난해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도입계획 3만7700명 중 실제 달성된 인원은 2437명으로 전체 6.4%에 불과하다.올해의 경우 4만700명 중 지난달까지 달성률은 2.5%(1021명)다. 뿌리산업처럼 인력난이 심각한 업종일 경우 주 52시간 시행 이후 인력수급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제가 당초 취지인 근로 여건 개선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별근무, 연장근무가 많은 업종의 경우 개별 근로자들의 임금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경우 주 52시간제가 먼저 도입된 고용인원 50인 이상 업체들의 경우 야근, 잔업 등이 사라지면서 임금이 30% 이상 감소한 경우도 나타났다. 10년 전 평균임금 수준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퇴근 후 다른 공장에서 투잡을 뛰는 사례도 있다"며 "서로 다른 업체들이 각자 직원을 교대로 잔업에 투입하는 '스와프' 형태 편법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보완책으로 추가연장근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현재 30인 이상 미만 사업장 대상으로 적용 중인 주당 8시간 내 추가연장근로를 주 52시간제 적용 기업들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국인 등 대체근로자 채용이 가능한 코로나19 종식 시까지 한시적으로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추문갑 경제정책본부장은 "구조적 인력난을 겪는 기업들이 부담을 무릅쓰고 추가 고용에 나서거나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라도 노사 합의로 연장근무에 나설 수 있는 것처럼 보완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mys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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