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못살린 산안법·중대재해처벌법 '구멍' 많아
김용균 숨진 자리엔 또다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0'
1심 문턱도 못 넘은 김용균 재판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故) 김용균씨가 석탄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김씨의 나이는 스물 다섯.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1년짜리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사고 당일 혼자 컨베이어 벨트에 낀 석탄 제거를 위해 점거구 안으로 몸을 숙여 작업하다가 변을 당했다.
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당시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비참한 희생자를 더이상 만들어선 안된다며 경종을 울렸지만 3년이 지난 현실은 제자리다. 김씨가 일했던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는 굉음을 내며 돌고 있고, 그의 동료들은 아직도 비정규직이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500명대로 줄이겠다고 공언한 정부의 목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 '김용균법'에서 빠진 김용균…법 개정만 요란
11일 국회와 노동계에 따르면 김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2018년 12월 당시 국회는 하청 노동자 사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산업안전보건법)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2016년 6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들어오는 전동차에 치여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모(당시 19세)씨 사건을 계기로 발의됐으나 기업들의 반발로 계류된 바 있다.
2016년 이후 잠자고 있던 개정안은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이번엔 실효성 논란에 부딪혔다. 하청업체에 일을 주는 도급 금지 대상을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하는 작업'등으로만 한정하는 바람에 김씨처럼 발전소에서 근무하거나 산업재해가 번번한 조선소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산재 사고에 부과하는 형량도 줄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비해 개정안은 원청 사업주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이 대폭 강화됐다. 하지만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정부안은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벌금' 내용으로 후퇴했다.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범위 역시 줄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고(故)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해단식에서 포옹하고 있다. 2021.01.08 leehs@newspim.com |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누더기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 씨 등이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인 끝에 통과된 법이다. 법안에는 산업 현장에서 사망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형사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여전히 허점도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까지 적용이 유예됐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산재 사망사고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중대재해처법이 입법 과정에서 원안이 대폭 후퇴되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눈물을 참기 어렵다. 오늘 논의된 중대재해법은 기업살인 방조법에 가깝다"고 맹비난했다.
◆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김씨의 동료들
김씨가 일했던 발전소 환경은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김씨의 사망 후 정부는 국무총리 훈령으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를 발족했다. 특조위는 4개월 여의 조사 활동 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22개의 권고안을 제출했다.
이중 특조위가 첫번째로 내세운 권고안은 운전 및 정비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다. 특조위는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는 발전소들이 하청업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경상정비 업무는 한국전력공사 자회사를 통해 재공영화하라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에 일하는 비정규직 1만1200여 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김씨의 동료들도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5개 발전소에서 발생한 10년 산업재해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력발전소에서 집계된 산업재해 건수는 총 508건이다. 이중 30건은 사망 재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전체 사업재해를 원·하청 소속 여부로 분류해보면 위험의 위주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상 재해의 경우 전체 511명 중 494명이 하청 노동자였고, 사망 재해의 경우에도 전체 30명 중 1명이 김씨를 포함한 하청 노동자로 확인됐다.
책임자 처벌 역시 더디다. 김씨 죽음의 책임을 묻는 재판은 사고 발생 3년이 지나도록 1심도 끝내지 못했다. 검찰은 김씨 사망 이후 20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 등 임직원 9명과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 원·하청업체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의 선고는 내년 1월에나 내려질 예정이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청년전태일, 진보당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김용균 동료 기만한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3 dlsgur9757@newspim.com |
◆ 현장 목소리 빠진 정부의 안전강화방안
정부는 김씨 3주기를 앞둔 지난 8일 '발전산업 안전강화방안 이행점검보고서'를 발간해 56개 세부 과제 중 47개를 이행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분야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법 위반 시 양형기준 상향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노동조건 개선 분야에서 ▲유해·위험 작업 2인 1조 투입을 위한인력 충원 등이 추진됐다고 했다.
하지만 특조위는 "알맹이 없는 보고서"라고 반박했다. 특조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특조위 이행점검 보고회에서 "김용균 사고의 원인은 안전보건 작동시스템의 부재"라며 "정부는 근본적인 원인은 접근조차 안했고, 파생적인 문제들의 해결여부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성 발전 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간사는 "김용균의 동료 6561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아무도 없다"며 "특조위와 당·정 발표에 따른 정규직화와 적정노무비 개선방안이 논의된지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지적된 노무비 착복과 지급개선은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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