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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감청만으로 이대준 씨 '월북' 단정은 잘못"

기사입력 : 2022년06월20일 10:33

최종수정 : 2022년06월20일 10:34

전직 대북 요원, "북측 기만·교란 가능성도 따져야"
구조 받기 위해 '월북 의사' 표현 사용했을 수도
"월북 했다면 왜 북한이 사살까지 했을까" 의문점도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2020년 9월 22일 서해 북측 수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 사망과 관련해 당시 대북감청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 안보라인, 군 당국 등이 이 씨가 '월북' 했다고 판단한 근거로 감청을 통해 확보한 사건 정황을 내세우고 있는데다 아직 공개돼야 할 구체적인 사실들이 더 있다는 점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이와 관련해 "국민이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 정부가 이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밝혀 추가 공개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의 주요 군 통신이나 일선 부대의 작전상황, 접경지역의 통신·통화 내용 등은 상당 부분 우리 군 또는 한·미 연합 전력의 대북감청에 의해 파악되고 있다. 북한 측도 통신 현대화나 암호화 작업 등을 통해 감청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여전히 감청은 북한군의 동향이나 주요 인사의 동정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망한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의 배우자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해양경찰이 발표한 최종 수사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06.17 kimkim@newspim.com

특히 서해5도와 인접한 북측 지역은 군사도발이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한·미가 대북감청 역량을 집중하는 곳이다. 2012년 8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평도와 마주한 무도방어대와 장재도 방어대를 작은 목선을 타고 방문했을 당시도 우리 군 당국은 김정은이 평양을 출발해 남포 2함대사령부를 거쳐 함정으로 섬 인근까지 이동한 뒤 다시 쪽배로 갈아타는 장면과 동선을 고스란히 추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상황에 밝은 군 관계자는 "김정은이 집권 직후부터 호전적 대남 발언을 일삼아 경고 차원에서 그의 동선을 우리가 북한이 보도하기 전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방안까지 합동참모본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했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대북 감청이나 첩보위성을 통한 실시간 추적 및 정보 수집에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이대준 씨 피격 사망 사건의 경우도 당시 북한 해군 경비정과 지휘관, 2함대 사령부와 평양 당국의 교신이 비교적 상세하게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부에서 "칠육둘(AK소총의 구경인 7.62mm를 의미)을 사용하라"고 지시하거나 "10여 발의 사격을 가했다"는 등의 내용이 SI자료(Special Intelligence, 출처 노출이 불가한 감청 등이 담긴 특수정보)로 작성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방부와 해양경찰청이 지난 16일 사건 당시의 발표 내용을 뒤집고 "자진 월북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하자 유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인사가 나서 SI자료와 감청 내용 등을 근거로 판단했던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국회 국방위·정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제시된 자료를 열람한 뒤 '월북'이라고 공감했다는 주장이다.  

[서울=뉴스핌]문재인 대통령의 특사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018년 9월 5일 북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청와대]2018.09.05.

하지만 이런 판단이나 주장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사건 당사자인 고 이대준 씨의 당시 절박했던 상황 등을 충분하고 심도 있게 고려하지 않아 정보 판단에 치명적 오류가 따를 수 있다는 게 대북정보 현장에서 오랜기간 종사해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월북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점은 피상적인 행동 양태나 동선, 당사자의 진술 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문제일 수 있다고 한다. 이대준 씨의 경우도 실족으로 바다에 빠져 표류했거나 의도치 않게 북측 수역으로 떠내려갔다해도 북한 경비정과 군인을 만나는 순간 생존 본능에 따라 '월북'의사를 표명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경비정의 군인 입장에서도 침입자에 의해 해상경비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월북자'로 상부에 보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일선 지휘관들이 이런저런 사정이나 의도에 의해 이 씨를 월북자로 둔갑시켜 평양 지휘부에 통보했을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군 전방부대 출신 탈북 1호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최전방 북한군의 경우 지휘관부터 일선 책임자까지 대남 문제에 있어서는 허위 과장또는 은폐·축소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우리 군과 미군 당국의 대북감청 능력을 훤히 알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를 교란하고 기만하기 위한 허위 정보와 교신도 일삼는다고 한다. 대북 감청정보 등을 글자대로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군 정보 당국 출신 베테랑 전직 요원은 "대북정보의 경우 그 자체로 유용하지만 항상 북측의 기만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우리 국민, 그것도 최전방 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대한민국 공무원이 어떤 이유로든 북측 수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비극적으로 피격 사망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는데도 당시 정부와 군·해경 지휘부가 쉽게 '월북'으로 단정하고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비상방역 상황이 있다해도 왜 '월북' 의사를 밝혔는데 사살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북한군이 이 씨 처리를 놓고 지휘부와 교신에 분주하던 시점에 즉각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김정은 위원장과 핫라인을 가동하거나 대북경고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북감청 정보에만 의존해 국민 한 사람을 '월북자'로 몰고 그 가족을 비탄에 빠지게 한 건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일깨우는 한편 대북이슈에 대통령과 정부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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