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중개업체서 전문가로 활동...가명에 신분증 위조까지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LG에너지솔루션의 2차 전지 제조 및 공정 관련 기술을 빼내고 영업비밀을 누설해 약 10억원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간부가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강규태 부장판사)는 24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모 씨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누설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서를 촬영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사진을 찍었다는 것만으로 영업비밀을 유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피고인이 담당 업무가 아닌 부분을 촬영한 이유에 대해 추궁하는데 당시 피고인은 업무상 필요에 의해 촬영을 한 것이다. 피해회사의 CEO가 피고인에게 해당 부분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문자메시지 증거 등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변호인은 "이런 첨단산업의 경우 어떤 회사가 기술을 개발했다고 다른 회사랑 일절 공유를 안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계 정보들을 서로 공유해서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며 "실제로 피해회사도 수백억원을 들여 외부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피고인의 자문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자문을 요구하는 회사들은 동종업계나 경쟁사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산업계 정보를 거액의 돈을 주고 구할 필요는 없다. 거액의 자문료를 대가로 받는 것은 피해회사만 알고 있는 정보"라고 반박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pangbin@newspim.com |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2021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국가핵심기술 1건을 포함해 LG에너지솔루션의 2차 전지 관련 영업비밀 16건을 촬영·부정취득한 뒤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자문중개업체인 가이드포인트를 통해 영업비밀 24건을 누설한 혐의를 받는다.
그가 누설한 내용은 LG에너지솔루션의 2차 전지 연구개발(소재, 배터리, 공정) 동향 및 로드맵, 생산라인 현황, 위탁생산(OEM) 업체와의 계약 내용 등이었다.
정씨는 약 2년 동안 부정 취득한 영업비밀을 누설해 시간당 평균 1000달러의 구두자문, 1건당 최소 3000달러의 서면자문 등 최소 320여건의 자문을 하고 자문료 약 9억8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LG에너지솔루션이 영리 목적 자문행위를 금지하는 내부 공지를 하고 가이드포인트에 '자사직원 DNC(Do Not Contact)' 공문을 보내자 정씨는 여러 가명을 만들어 자문을 수행하고, 자문중개업체로부터 실명 인증을 요구받자 동생의 주민등록증을 촬영하고 동생의 이름을 위조한 공문서변조 혐의도 받는다.
또한 검찰은 정씨가 유료자문 형태로 LG에너지솔루션의 2차 전지 관련 영업 비밀을 누설하도록 방조한 혐의로 가이드포인트 전 이사 최모 씨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최씨 측 변호인은 "정범의 고의와 방조의 고의 모두 부인하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행위는 고객사와 자문을 제공할 전문가를 단순히 연결해주는 것이고 피고인은 고객사와 전문가 사이의 소통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에게 영업비밀 누설에 따른 방조책임을 지우는 것은 검찰의 과한 공소제기"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는 구속기소된 정씨의 보석 심문기일도 함께 진행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증거인멸 우려가 없으며, 이 사건 기록이 복잡하고 방대한데 구속 상태에 있는 피고인과 재판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보석을 인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오는 11월 23일 재판을 속행하고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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