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일시 유예
단기간 내 대출 수요 집중 가능성 ↑
수요자 반발 거세…"정부가 주거사다리 끊는 격"
[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 "사실 집값도 떨어질 거라고 하고 가계 사정이 나아지는 내년 봄 쯤 집을 살까했는데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그냥 올해 내 집을 사려고 하네요.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이자율도 높고 정부 규제가 시작돼 빌리기 어려운데 금리도 낮고 대출 금액도 많은 디딤돌 대출을 포기할 이유가 없죠" 지난 주 정부의 디딤돌 대출 규제 관련 발언이 나오자 곧장 대출을 타진하고 있는 올해 35세 결혼 2년차 남편 김 모씨의 이야기다.
정부가 정책 대출인 디딤돌의 대출 한도를 축소하기 전 유예 기간을 두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단기간에 2030 젊은 층의 '밀어내기' 매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규제 전 저금리의 대출을 충분히 확보해야한다는 의식이 커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로 대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앞당겨 대출을 받으려던 경향이 나타났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역시 수요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출을 이용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사정상 이사 계획을 수정하기 어려운 수요자들도 있어 대출 한도 축소를 두고 불만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오히려 정책 대출 규제로 단기간에 가계 대출이 급증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전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방침이 나오자 각 은행과 중개업소에 대출과 집 구매에 대한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국정감사 과정에서 정부의 디딤돌 대출 규제 유예 기간 방침이 나오자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와 이자율을 묻는 문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을 구매하려는데 LTV 70% 적용시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늘고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중개 업소 모습 [사진=뉴스핌 DB] |
◆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일시 유예…단기간 대출 수요 집중 가능성 높아
정부가 정책 대출인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일자 시행을 일시 유예하고 맞춤형 개선 방안을 빠른 시일 내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대출이 신청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조치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추후 보완 방안을 시행할 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안내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디딤돌 대출은 연 소득 6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들이 5억 원 이하의 주택을 살 때 최대 2억5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정책 금융 상품이다. 한도 내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최대 70%(생애 최초 구입은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연 소득 8500만원 이하 신혼부부가 6억원 이하 주택을 살 경우에는 최대 4억원을 빌려준다.
하지만 LTV 축소와 최우선변제금 공제 적용 등으로 대출 금액이 줄어들 전망이다. 디딤돌 대출은 담보의 7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생애 최초 구입의 경우 80%까지 가능하다. 이를 낮출 경우 대출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최우선변제금인 이른바 '방 공제'(서울 5500만원)를 대출 금액에서 제외해야 하지만, 현재는 보증 상품에 가입하면 대출금으로 포함해 지급했다. 앞으로는 대출 금액에서 방 공제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이후 주택 구매를 계획하고 있던 수요자들이 매수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으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대출을 받으려던 수요자들이 대거 몰렸던 점을 감안하면 역시 대출을 앞당겨 받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2030 젊은 층의 경우 1000만~2000만원 차이에도 매수할 수 있는 지역과 주택 유형이 달라질 수 있다. 서울의 경우 평수는 좁더라도 직주 근접을 선호하는 수요자들이, 경기도의 경우는 출산 계획으로 넓은 평수나 신도시를 선호하는 수요자들이 몰린다. 하지만 수천만 원에 따라 집의 '컨디션'이나 교통 인프라와의 거리 등이 결정된다.
일각에선 오히려 가계 대출 증가의 주 요인으로 꼽히는 정책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 단기간 내 수요자들을 몰리게 해 오히려 가계 대출이 급증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우리은행] |
◆ 수요자들 디딤돌 대출 규제 반발 거세…"정부가 주거 사다리 끊는 격"
상황이 이렇자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만기일이 아직 남아 있는 등 사정상 매수 시기를 옮기기 어려운 수요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대출이 나올 것이란 생각에 대출의 최대치 한도에 금액을 맞춰 이사 계획을 세우고 계약금을 지불한 상황에서 대출 한도를 줄여버린다면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내년 중 매수를 고민하고 있던 오모(41) 씨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정책 대출마저 한도를 줄여버리면 서울에는 살지 말라는 것 아닌가"라며 "애초에 정해놓은 소득과 자산 기준을 맞춰놓고 대출 금액까지 뽑아놨는데 다 소용없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오히려 주거 사다리를 끊어버리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연말 결혼을 앞두고 일산에 신혼집을 매수하기 위해 최근에 대출을 받은 김모(39) 씨는 "디딤돌 대출 신청을 하고 왔는데 한도를 줄인다는 뉴스를 보고 불안해서 며칠간 잠을 설쳤다"면서 "현재 신청된 대출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한결 마음이 놓였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신혼집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정책 대출을 이용해 매수할 수 있는 지역이 부동산 시장을 선도하는 상급지가 아닌 만큼,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앞서 스트레스 DSR 도입 때도 규제가 강해지기 전에 앞당겨 대출을 받으려는 경향들이 나타났다"면서 "이미 정부에서 유예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향후 규제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셈이기 때문에 매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늘어난다면 집값에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면서도 "다만 2030 젊은 층이 매수하는 주택 유형 자체가 시장을 견인하고 선도하는 유형은 아니라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