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지자체 심의 통과 후 시공사선정까지 1년 쓸 자금 빌릴 수 있어
실질적 초기 단계 추진위 사업장은 사업비 대출 '그림의 떡'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사업 활성화를 위해 초기 재정비 사업장에 사업비를 대여해주기로 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사업비 대출 지원 대상인 조합설립을 마친 사업장은 늦어도 지자체 통합심의 이후에는 사업자금 대여를 보증해 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설립 후 지자체 통합심의를 받을 때까지 쓸 자금을 빌려주는 셈이 됐다. 재정비사업장은 현재 정비사업 관리자나 시공사 등에 높은 이자로 사업자금을 빌려 쓰고 있다.
더욱이 사업 자금 마련이 어려운 실질적인 초기 단계인 추진위 단계 사업장은 사업비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로 재건축·재개발 사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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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뉴스핌DB] |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작될 재건축 초기사업장 사업자금 대출사업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조합설립인가 이후 단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는 적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정작 사업자금 마련이 어려운 사업 초기 추진위단계 사업장엔 '그림의 떡'이 된 상황이다.
이번 제도는 지난해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후속조치로 비인기 주거지역에서도 재건축·재개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는 올해 400억원의 예산으로 구역별 건축 연면적에 따라 최대 5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사업장당 평균 20억원 정도가 실질 대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올 한해 동안 약 20개 사업장이 사업자금을 빌릴 수 있다. 이자는 만기인 사업시행승인 이후 1년 이내에 일시상환하면 된다.
국토부는 이번 '초기 단계' 재정비 사업장 사업자금 대출이 실효성을 얻을 수 있도록 사업성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구역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서울의 비인기지역이나 수도권 도시,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질 전망이다.
대출자금은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한 용역비를 비롯해 조합 운영비, 기존 대출상환 등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이자율은 지역별 시장상황, 사업성 등을 고려해 사업장 소재지와 사업유형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서울 외 지역의 경우 재개발은 연 2.2%, 재건축은 연 2.6%를 적용하고 조정대상지역을 제외한 서울에선 재개발은 연 2.6%, 재건축은 3.0%를 적용한다. 다만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료로 1%포인트가 가산되기 때문에 실질 대출금리는 연 3.2~4.0%가 될 전망이다.
지금은 조합설립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기 이전까지 필요한 사업자금은 민간 '정비사업 관리자' 업체가 맡고 있다. 이들은 사업장에 사업자금을 높은 이자에 대출해주고 이후 시공사가 선정되면 시공사 연대 보증으로 자금 대출을 갚는다. 국토부는 이 과정에서 저리 사업비 대출을 해줘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탄력을 받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가장 돈이 필요한 때가 조합설립 후 건축심의를 받고 사업시행 인가를 받는 단계"라며 "이 기간 사업자금 대출이 어려운 사업장을 대상으로 자금을 대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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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토부] |
다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조합이 설립된 사업장은 오래지 않아 사업자금 대출을 보증해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어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규정하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조합설립은 사업의 중간 단계로 초기 단계가 아니다. 현행 도정법과 각 지자체 조례에 따라 재정비사업장은 조합설립 이후 곧바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서울에선 조합설립 이후 시 건축심의 통과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이 관행이다. 박원순 시장 시절 뉴타운사업 출구전략의 하나로 사업시행 승인 후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했던 서울시는 2023년 7월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를 개정해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업 장기화 리스크를 줄이려는 건설사들의 입장을 반영해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한 후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이같은 시공사 선정 관행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비업계의 이야기다. 이에 따라 서울시 건축심의 통과는 사업의 7부 능선으로 불린다.
결국 이번 조치의 혜택은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후 건축심의까지 저리 사업자금이 필요한 사업장에 집중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정비사업 관리자에 고리 대출을 받았던 구역이 정부 지원제도로 이자를 줄이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조합설립 인가 이후 단지에 사업비를 대출해주는 정부 지원제도는 추진위 단계 사업장에 자금을 대여해줄 경우 자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추진위 단계 사업장은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국토부 관계자는 "추진위 단계는 언제라도 사업이 매몰될 수도 있는 만큼 공적자금 보전 의무가 있어 사업비를 대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지원 대상인 조합설립 인가 단지는 큰 효과를 볼 수 없고 정작 사업비 마련이 어려운 초기 추진위 단계 사업장은 정부 지원이 '그림의 떡'이 되는 셈이다. 결국 조합설립 후 시공사 선정까지 필요한 사업자금을 지금보다 낮은 이자에 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 사업 활성화에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초기단계 사업장이라 해놓고 중간단계인 조합설립 인가 이후 단지를 대상으로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과장광고'인 셈"이라며 "결국 조합설립 인가부터 실질적으로 지자체 심의 통과 때까지 쓸 자금을 빌릴 수 있는 것인데 이자를 낮춰주는 효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정부는 정비사업관리자의 고리 대출과 암묵적으로 시공사에 돈을 빌리는 사업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검토하고 있다. 단속이 실제로 이뤄지게 되면 정부 자금 대출지원을 받지 못하는 구역의 사업자금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조치는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사업 활성화보다 재정비사업의 공적 기능 강화로 읽힌다"고 말했다.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