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광복 80주년기념 '삼청도도-메죽난'전 개최
-우리 민족 정신적 문화적 힘을 '삼청'그림이라는 예술로 조명,추석당일 제외 관람가능 12월21일까지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쓰던 '삼청(三淸)'이란 말은 군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을 나타내는 식물인 매화·대나무·난초를 가리킨다. 옛부터 우리 선비들은 매화, 대나무, 난초를 치며 마음수양을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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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대구간송미술관이 광복 80주년기념전으로 마련한 삼청도도 전시에 출품된 삼청첩. 전면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9.30 art29@newspim.com |
대구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은 이 삼청을 중심에 둔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삼청도도 – 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개막했다. 이번 광복 80주년 특별전은 추석연휴를 이어 오는 12월 21일까지 대구간송미술관 4전시실서 열린다.
전시는 광복을 맞기까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어두운 시기에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정신적·문화적 힘을 삼청(三淸)을 통해 새롭게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가 광복의 기쁨을 맞은 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민족의 자존의식과 끊임없는 노력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삼청 그림'이라는 예술 형식을 통해 살펴보고, 이를 오늘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망하는 자리다.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올곧은 의지와 마음을 표현한 매화·대나무·난초 작품 35건 100점을 선보인다. 미술관은 이를 4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전쟁과 변란, 일제강점기 등 역사의 고비마다 자신의 신념과 나라의 정신을 수호하고자 했던 절의지사들의 절개와 우국의 정신을 반듯한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세종대왕의 고손자로 한국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문인화가 탄은 이정(1554~1626)의 작품이 중심을 이룬다. 탄은과 함께 우리 회화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거장들의 걸작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면이 최초로 공개되는 시대의 보물 삼청첩
1부에서는 왕실 출신의 문인화가 탄은 이정의 그림과 시를 함께 엮은 시화첩으로 한국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작품 '삼청첩' 전면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정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 칼을 맞은 후, 부상에서 회복되자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무너진 조선의 자존과 사기를 북돋우고자 1594년 '삼청첩'을 완성했다. 이정이 그린 매‧죽‧난에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최립, 한호, 차천로가 글을 더하며 '삼청첩'은 '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보물(一世之寶)'로 가치를 더하게 된다. 병자호란 때 이 귀한 화첩은 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겪었고, 19세기 일제 침탈을 겪으며 한 때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다행히 1935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이를 수집하여 조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미술관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삼청첩을 2015년 전면 수리했고 이반에 그 모습을 공개했다. 이처럼 '삼청첩'에는 조선의 국란과 극복의 서사가 켜켜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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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탄은 이정 신죽. [사진=대구간송미술관] 2025.09.30 art29@newspim.com |
검은 비단에 금니로 힘차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삼청(매‧죽‧난)은 그 자체로 우아하고 정교한 필치로 구현된 압도적인 조형미를 품고 있다. 화법(畫法)과 서법(書法)의 예술적 조화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보물로 지정됐다. 이번 전시에는 56면(그림 20면, 글 29면, 공면 5면, 표지 2면) 전면을 특별공간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탄은의 빼어난 역량과 함께 우암 송시열 등 후대 선비들이 삼청첩을 직관한 후 남긴 글들이 더해져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조선 최고의 묵죽화가 탄은의 묵죽화
2부에서는 탄은의 다양한 묵죽화를 보여준다. 세종대왕의 고손자인 탄은 이정은 조선 묵죽화의 기준을 정립하여 한국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거장이다. 내년 이정 서거 400주년을 앞두고 그의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마련됐다. '삼청첩' 제작을 계기로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한 40대 작품부터 70대에 남긴 절명작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던 탄은 이정의 대표작 13건 15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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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간송미술관 광복80주년기념전 중 2부 '탄은, 대나무로 세상을 울린 한 사람' 전시장에 설치된 탄은 이정의 '풍죽' [사진=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9.30 art29@newspim.com |
당시 해동삼절(海東三絶)로 평가받던 최립의 글, 한호의 글씨, 이정의 묵죽을 모아 제작한 '유금강산권', 이정의 작품과 문인들의 글을 엮어 제작한 '탄은삼청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비롯 이정 묵죽화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한국 묵죽화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풍죽', 이정이 남긴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를 통해 이정의 작품세계를 가늠해봏 수 있다. 회오리바람에도 꼿꼿함을 간직한 대나무의 기개를 유려하게 그린 '풍죽'은 특별전시실에서 바람소리로 가득한 영상과 함께 전시돼 그 아름다움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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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3부] '절의, 먹빛에 스민 선비정신' ⓒ대구간송미술관 2025.09.30 art29@newspim.com |
3부에서는 국란과 역사적 위기에 기개와 결기를 지켜나간 조선의 절의지사들이 남긴 삼청 작품 10건 16점을 만날 수 있다. 절의지사는 전쟁과 변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절개와 의리를 지킨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난세를 맞은 문인들에게 삼청은 자기 수양과 실천을 위해 활용한 도구이자 이상과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또다른 자아의 모습이기도 했다. 국난 속에서 삶과 죽음으로 나라의 존엄을 지킨 이덕형, 오달제의 우국과 충절의 정신, 높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한 조속의 청백리 정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 이인상의 고결한 선비정신을 나타낸 작품들이 3부의 핵심작들이다. 이를 통해 삼청이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과 더불어 작품에 깃든 조선 선비의 이상과 정신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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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4부] '불굴, 붓 끝에 서린 항일의 결기' ⓒ대구간송미술관 2025.09.30 art29@newspim.com |
일제강점기, 가혹한 억압 속에서도 선조들의 삼청의 정신은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4부에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시기인 만큼, 독립과 광복에 대한 염원을 생에 담아 실천했던 항일지사의 삼청 작품 11건 13점이 한데 모얐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진우의 창칼을 닮은 묵죽화와 항일독립군의 초석이 된 이회영, 을미의병 출신 박기정,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은거했던 윤용구,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던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진만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 작품은 엄혹한 시기에서도 시대적 고통을 이겨낸 항일지사들의 굳은 의지와 저항정신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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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대구간송미술관의 상설전시실인 '간송의 방' 전시전경. 간송 전형필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귀한 명품 도자기들과 혜원전신첩 등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 이영란 미술전문기자] 2025.09.30 art29@newspim.com |
대구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시대에 따라 절의지사들이 남긴 그림과 글씨 안에 담긴 마음을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가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근현대사 속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고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한 대구에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전시를 선보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광복 80주년 기념 대구간송미술관의 이번 기획 전시는 오는 12월 21일까지 열리며, 기획전 관람료는 성인 11000원, 어린이·청소년 5500원이다.(상설전시만 관람할 경우 성인 6000원 어린이·청소년 3000원).
배우 임수정과 방송인겸 사업가인 마크 테토가 국영문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추석연휴(10월3~9일) 기간 중 추석당일(10월6일)을 제외하고는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