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정치·법적 불확실성 지적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차세대 에너지 보고(寶庫)'로 점찍고 미국 석유기업들의 대규모 진출을 촉구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투자자들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이어질 정치·법적 불확실성과 막대한 초기 비용을 이유로 "대박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7일(현지시각) 투자전문매체 배런스(Barron's)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대박'을 노리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거대한 위험을 본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재투자에 따른 위험을 함께 떠안지 않는 한 기업들이 해당 국가에 발을 들이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게 그들의 일관된 의견이다.

◆ 트럼프의 석유 전략…"베네수는 미국의 에너지 카드"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명확하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이후 미군 주도의 잠정 통치와 치안 확보를 통해 베네수엘라를 안정화하고, 미국 석유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 노후화된 원유 인프라를 전면 재건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미주 대륙 내에서 에너지 자립과 공급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계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NBC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최대 5,000만 배럴의 원유를 제공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해당 원유 판매 수익을 미국과 베네수엘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으로는 베네수엘라 원유를 끌어와 유가를 안정시키고, 이를 통한 생활비 및 물가 부담 완화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 성과'를 부각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 투자자들이 "높은 비용·불확실성에 수익성 회의적"
하지만 투자자들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배런스와 인터뷰한 복수의 석유 투자자들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정치·사회적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가장 큰 변수로 꼽았다.
스미드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콜 스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 산업에서 자본은 매우 귀하다"며 "미국 정부의 명확한 위험 분담이나 '막대한 당근' 없이는 베네수엘라 투자는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 투자에 자금을 매칭할 경우 장기적으로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적 불확실성도 부담 요인이다. 제재 해제 절차, 자산 소유권 보호, 수익 송금 구조 등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원유 자산을 무기한 통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기업과 정부 간 이해 충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휴스턴의 피커링 에너지 파트너스의 댄 피커링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이 원유 판매를 통제한다면, 그 원유가 기업에 가장 유리한 가격에 팔릴지 의문"이라며 "미국의 국익과 에너지 기업의 이익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제성 역시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점도가 높고 황 함량이 많은 중질유로, 생산 비용은 높은 반면 판매 가격은 낮다. 과거 S&P 글로벌 에너지는 베네수엘라 원유의 손익분기 생산 비용을 배럴당 70~80달러로 추정했는데, 이는 현재 국제유가 수준을 웃도는 수치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90만 배럴로, 1990년대 후반 300만 배럴을 넘던 시기와 비교하면 크게 감소했다. 인프라가 극도로 노후화돼,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수백억 달러 규모의 초기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원유가 장기적으로는 매력적인 자산이 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정치·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을 피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콜롬비아·멕시코로 군사 개입이 확대될 경우 지정학 리스크가 급증할 수 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국으로 구성된 협의체 OPEC플러스(+) 및 중국과의 에너지 외교 마찰 가능성도 변수다. 여기에 향후 정권 교체 시 정책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투자 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글로벌 에너지 투자 전문가는 "트럼프의 구상은 정책적으로는 야심차지만,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와 재정 구조에 대한 구체적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책 성공과 투자자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