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특위법과 농지개혁법을 격론 끝에 통과했다.
- 당시 거친 발언과 소란에도 의장은 토론 질서를 유지했다.
- 그러나 이후 의회 제도는 권력 남용과 폭력적 언어에 무너졌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1편: 제1공화국 속기록으로 본 절차적 규범의 해체와 공론장의 붕괴
1948~1960 속기록으로 본 대한민국 의회 언어의 붕괴: 대의의 좌절과 폭력의 일상화
대한민국 제헌헌법 역시 출발선에서는 서구 민주주의가 수백 년에 걸쳐 확립한 제도적 장치들을 완벽하게 이식받았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 제49조는 "국회의원은 국회 내에서 행한 직무상의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는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며 면책특권을, 제50조는 "국회의원은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며 불체포특권을 헌법적 주춧돌로 삼았다.

동시에 동년 10월 2일 제정된 국회법 제18조는 국회의장에게 "국회의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할 포괄적 책무를 부여했고, 제85조부터 제91조는 의원의 경고, 발언 금지, 회의 중지, 그리고 본회의 경고·사과·30일 출석정지 및 제명에 이르는 엄격한 징계 시스템을 명시했다.
제도의 겉모습만 본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외향적 방패와 내향적 규율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근대 의회주의의 외피를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 속에서 이 제도적 쌍두마차는 처참하게 해체되었다. 탈식민의 혼란과 건국의 진통, 그리고 6·25 전쟁이라는 절멸의 위기 속에서 외향적 방패여야 할 불체포·면책특권은 권력의 군홧발에 유린당했고, 내향적 칼이어야 할 의장의 질서유지권은 다수당의 불법 날치기를 비호하는 도구로 전락했다(Reinhard Bendix, 1964; Ernst Fraenkel, 1941).
당시 국회 공식 속기록의 원문은 국한문 혼용체(國漢文混用體)의 거친 숨결 속에, 건국의 대의가 어떻게 권력의 야욕과 적대적 언어폭력 앞에 무너져 내렸는지를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1) 반민특위법 제정(1948)과 농지개혁(1948/1949)을 둘러싼 설전
제헌국회 초기, 회의록의 행간은 식민 지배의 상흔을 걷어내고 신생 독립국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대의의 언어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1948년 8월 하순부터 이어진 「반민족행위처벌법」 초안 심의는 민족적 도덕성을 바로 세우려는 소장파 의원들과 치안 공백을 내세운 정부 및 보수 관료층 간의 타협 없는 격돌이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이었던 김웅권 의원은 1948년 8월 27일 제헌국회 제52차 본회의 단상에 올라 일제 부역자 처벌을 주저하는 타협론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1948년 8월 27일 (제헌국회 제52차 본회의) | 발언자: 金雄權 (김웅권, 大韓獨立促成國民會)
발언 원문: "…日帝下에서 惡質的으로 同胞를 壓迫하고 獨立運動을 妨害한 反逆者들을 處罰치 않고서 어떻게 新國家의 기틀을 잡는단 말이오! 이를 躊躇하거나 寬大히 하자는 者는 그 自身이 親日派이거나 親日派의 走狗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일제하에서 악질적으로 동포를 압박하고 독립운동을 방해한 반역자들을 처벌치 않고서 어떻게 신국가의 기틀을 잡는단 말이오! 이를 주저하거나 관대히 하자는 자는 그 자신이 친일파이거나 친일파의 주구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장내 반응: [場內 "옳소", 拍手, 一部 席에서 "妄發이다!", "言論을 愼重히 하시오!", 騷亂 / 장내 "옳소", 박수, 일부 석에서 "망발이다!", "언론을 신중히 하시오!", 소란]
의장의 질서유지 반응: 議長 申翼熙: "議員 여러분, 會議場의 秩序를 維持해 주시오. 發言者의 發言이 끝날 때까지 靜肅을 維持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덕적 훈계형 계도)
김웅권 의원의 발언은 날카롭고 격렬했으나 이는 사적 권력욕이나 상대의 절멸을 꾀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도덕적 정통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다툰 건국의 대의였기에 신익희 의장의 절제된 중재 속에 장내는 가라앉았고, 격론 끝에 반민특위법 제정과 이듬해 조봉암 농림부 장관 주도의 농지개혁법 통과라는 역사적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회 언어의 자정 능력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농지개혁법 설전(1948/1949): 조봉암 농림부 장관과 지주 계급 한민당의 정면충돌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를 닦고 공산화를 저지한 일등공신인 농지개혁은 결코 순탄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1948년 12월 23일, 1949년 3월과 4월, 국회 본회의장은 유상매수·유상분배, 지가상환율 150%를 밀어붙이려는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과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던 한국민주당(한민당) 의원들 간의 혈투에 가까운 공방전으로 뒤덮였다.
1948년 12월 23일 ( 제헌국회 제1회 제118차 본회의) | 발언자: 농림부장관 국무위원 조봉암 (農林部長官 國務委員 曺奉岩)
발언 원문: 農林部長官(曺奉岩): "…政府가 樹立된 以後에 우리 全體 國民이 가장 渴望하고, 또 世界 모든 國家가 우리 大韓民國의 民主的 發展을 期待하는 가운데 가장 큰 關心을 가지고 있는 것은 農地改革에 關한 問題입니다.
農地改革을 實施하지 않고서는 우리 農民의 生活을 向上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國家 經濟의 健全한 基礎를 確立할 수 없다는 것은 誰何를 莫論하고 다 是認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近來에 一部 地主들이 農地改革法이 制定되기 前에 農地를 買買하거나 小作權을 移動·剝奪함으로써 農村의 秩序를 紊亂케 하고 農民의 怨聲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本法은 本格的인 農地改革이 完了될 때까지 農民의 權利를 保護하고 社會的 混亂을 防止하고자 하는 目的에서 提出된 것이니, 議員 여러분께서는 國家의 大計를 爲하여 迅速히 通過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농림부장관(조봉암):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 우리 전체 국민이 가장 갈망하고, 또 세계 모든 국가가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을 기대하는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농지개혁에 관한 문제입니다.
농지개혁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우리 농민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가 경제의 건전한 기초를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일부 지주들이 농지개혁법이 제정되기 전에 농지를 매매하거나 소작권을 이동·박탈함으로써 농촌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농민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법은 본격적인 농지개혁이 완료될 때까지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출된 것이니, 의원 여러분께서는 국가의 대계를 위하여 신속히 통과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議員 議席 一部에서 "옳소", 拍手, 一部 席에서 騷然) (의원 의석 일부에서 "옳소", 박수, 일부 석에서 소연)

1949년 4월 28일 (제헌국회 제2회 제83차 본회의 농지개혁법 축조 심의)
曺奉岩 議員: "…農地改革의 根本 精神은 耕者有其田의 原則에 依하여 農民에게 農地를 分配함으로써 農民의 經濟的 自立을 圖謀하자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産業委員會의 修正案과 같이 地價를 지나치게 높게 策定하고 補償을 過多하게 규정한다면, 가난한 農民들은 그 代價를 償還할 길이 없어 結局 다시 負債의 노예로 轉落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眞正한 農地改革이라 하겠습니까! 地主의 利益만을 옹호하고 農民의 生存을 외면하는 修正은 憲法의 精神을 根本的으로 毁損하는 것입니다!"
조봉암 의원: "…농지개혁의 근본정신은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한다)의 원칙에 따라 농민에게 농지를 분배함으로써 농민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자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 산업위원회의 수정안처럼 땅값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고 지주에 대한 보상을 과도하게 규정한다면, 가난한 농민들은 그 땅값을 갚아나갈 길이 없어 결국 다시 빚더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진정한 농지개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주의 이익만을 옹호하고 농민의 생존을 외면하는 법안 수정은 헌법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처사입니다!"
(場內 騷然, 韓民黨 議員 議席에서 "言論을 愼重히 하시오!", "妄發이다!" 呼喊, 一部 席에서 "曺議員 말이 옳소!" 拍手 뒤엉킴) (회의장 안이 소란해지며, 한민당 의원 의석에서 "발언을 신중히 하시오!", "망발이다!"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조봉암 의원의 말이 옳다!"라며 박수가 뒤엉킴)
議長 申翼熙: "議員 여러분, 靜肅을 維持해 주시오. 發言者의 發言을 妨害하지 마시오."
(의장 신익희: "의원 여러분, 조용히 해주시오. 발언하고 있는 의원의 발언을 방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봉암 의원의 이 발언은 타협을 모르는 듯 거칠고 서슬 퍼런 질타였으나, 이는 사적 권력욕이나 특정 계급을 절멸시키기 위한 적대적 선동이 아니었다. 수백 년 봉건적 예속에 묶여 있던 대다수 농민에게 제 땅을 쥐여주지 않고서는 갓 태어난 민주공화국의 물적 토대를 세울 수 없다는 절박한 구국의 대의였다.
비록 상대 의석에서 "망발이다", "발언을 신중히 하라"는 격앙된 고함이 터져 나오고 회의장이 소연해졌으나, 의사당 안의 격론을 국회법이 정한 규칙 안으로 묶어 세운 신익희 의장의 절제된 중재 속에 의회는 파탄의 선을 넘지 않았다.
격앙된 언어의 파고 속에서도 서로의 발언권을 인정하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숙의했던 이 치열한 설전은, 결국 1949년 농지개혁법 통과라는 위대한 제도적 결실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의회에는 날카로운 이해관계의 충돌마저 상호존중과 토론을 통해 합의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내는 공론장의 자정 능력이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