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안철수는 누구…의사가 대선후보로 나서기까지

기사입력 : 2012년09월19일 14:40

최종수정 : 2012년09월19일 23:22

- 4월 총선 야권 패배 후 대선출마 고민…청춘콘서트 등으로 국민과 소통

[뉴스핌=노희준 기자]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 학원장은 여느 정치인과 다르다. 

우선 정치권 '밖'에서 사회적 열망을 등에 업고 출연한 후보다. 정몽준, 문국현 등 '제3 후보'의 출연은 역대 대선에서도 있었지만, 안 원장과 같이 지속적인 지지율을 보여준 이는 없다.

정치와 대권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안 원장은 대선출마에 대해 보통 정치인과 달리 자신의 선택보다는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잠재적 대선후보로서 지지율이 높으면서도 안 원장과 같이 '장고'를 하는 정치인도 드물었다. 대통령직을 생각할 때 신중하고 당연한 행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권력 의지가 약하거나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비판도 있다.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좌절과 분노에 기초한 안철수 현상을 등에 업고 있는 안 원장은 그에 대한 열망에 끝까지 부응할 수 있을까. 장고 끝에 대선 출마에 나서면서 의사·교수·CEO·국민멘토에서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그는 이제 정치신인으로서의 길에 나서게 됐다. 

안 원장은 1962년 경남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은  그의 이력과 달리 평범했다.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한  해 먼저 입학하는 바람에 적응은 느렸다. 성적은 60명  가운데 중간 정도였고, '수'나 '우'는 찾기 어려웠다.  성적은 갈수록 향상됐지만, 중학교 때까지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야 서울대 의대를 갈 실력이 됐다.

하지만 그는 '독서광'이었다. 좋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 으면 꼭 주워서 읽어야 했고 내용뿐만 아니라 페이지수, 저자, 발행 연월일 등까지 읽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매일 학교 도서관의 책을 빌려 다 읽었다. 대학시절 바둑을 두기 위해 바둑서적을 수십권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의사일 뿐이었던 안 원장이 세상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첫번째 계기는 그가 컴퓨터 '앤티바이러스 프로그램' 백신을 만든 일이다. 의사로서 특기를 쌓기 위해 컴퓨터에 관심을 갖던 그는 운명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났다. 마침 전공실험을 위해 배웠던 컴퓨터 언어 공부가 막 끝난 시점이었다.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을 찾던 후배에게 치료 방법을 알려줬지만, 후배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한 백신 프로그램 제작·무료 배포 작업은  의사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7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의사의 길과 백신 개발을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안 원장은 의사의 길을 접고 백신 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다. 1995년 2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백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2005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안 원장이 사회적으로 높은 관심을 갖게 된 시기라 할 수 있다.

CEO로서 안철수는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 4년간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특히 회사를 차린 후 몇년 간은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어음깡'을 하러 다녔고 월급날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기도 하는 보통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하지만 1997년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로부터 회사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받고는 직원의 해고와 실업, 해외 업체의 국내 백신 시장 장악 등을 우려해 단박에 거절하는 '통큰 CEO'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 원장이 본격적인 정치적 인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중순 경부터다. 전국을 누비며 청춘들의 고민과 열망을 들어주는 '청춘콘서트'를 시작하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출마 의사를 내비치면서다. 결국 예상과 달리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안 원장은 일약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며 보유하던 안랩 주식 절반을 사회에 환원, '안철수 재단'을 설립해 국민적 신망을 더욱 받게 됐다.

특히 안 원장은 지난 4·11 총선에서 예상 외로 야권이 패배하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커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열망이 무엇인지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대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선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대학교 특강 등의 강연 정치를 통해 자신의 지지율을 관리하기도 했다. 대선출마설이 끝이지 않았던 그는 지난 7월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내놓고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대권 입장 결정을 위한 '대국민 의견정취'에 나섰다.

안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공대에서 공학 석사, 와트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뒤 유학을 떠난 뒤 2008년 귀국해 카이스트에서 기술경영전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포스코 이사회 의장과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3년 3개월 복무했다.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한덕수, 대선 출마 여부에 "노코멘트"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대행은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원조, 기술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했다. 이는 한국을 외국인에게 매우 편안한 투자 환경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축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2025.03.24.gdlee@newspim.com 한 대행은 "협상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상업용 항공기 구매 등을 포함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조선업 협력 증진도 미국이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FT는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고 한 대행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한 대행은 협상 과정에서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도, 양국 간 무역의 자유가 확대되면 "한국인의 이익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 대행은 6·3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nylee54@newspim.com 2025-04-20 13:43
사진
호미들 중국 한한령 어떻게 뚫었나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중국의 한류 제한령)이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중국에서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8일 베이징 현지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3인조 래퍼 '호미들'이 지난 1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중국인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호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분위기를 만끽했다. 공연장 영상은 중국의 SNS에서도 퍼져나가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가수의 공연은 중국에서 8년 동안 성사되지 못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BTS도 중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때문에 호미들의 공연이 중국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미들 공연이 성사된 데 대해 중국 베이징 현지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이 소규모였다는 점과 공연이 성사된 도시가 우한이었다는 두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호미들이 공연한 우한의 우한칸젠잔옌중신(武漢看見展演中心)은 소규모 공연장이다. 호미들의 공연에도 약 600여 명의 관객이 입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800명 이하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정식 문화공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는 공연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성(省) 지방정부 혹은 시정부가 공연을 허가한다. 지방정부가 허가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경우 중앙정부에 허가 판단을 요청한다. 한한령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의 문화공연은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었다. 호미들의 공연은 '마니하숴러(馬尼哈梭樂)'라는 이름의 중국 공연기획사가 준비했다. 이 기획사는 공연허가가 아닌 청년교류 허가를 받아서 공연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한시의 개방적인 분위기도 공연 성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한에는 대학이 밀집해 있으며 청년 인구 비중이 높다. 때문에 우한에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다. 게다가 젊은 층이 많은 만큼 우한에서는 실험적인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우한시는 중국에서는 최초로 시 전역에서 무인택시를 운영하게끔 허가하기도 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파격적인 정책이 발표되는 우한인 만큼, 한한령 상황임에도 호미들의 공연이 성사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의 한 문화업체 관계자는 "우한시가 개방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호미들의 공연은 소극적인 홍보 활동만이 펼쳐지는 한계를 보였다"며 "공연기획사 역시 한한령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지 문화콘텐츠 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한국의 최정상급 가수가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서 빨리 한한령이 해제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시그널은 아직 중국 내에서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호미들의 중국 우한 공연 모습 [사진=더우인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4-18 13: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