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서정은 기자] "투표의 기본원칙도 안지켜지는거죠. 원칙이 흔들리니 문제점을 말해봤자 입만 아픕니다."
유력 경제신문사들이 주관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Best Analyst)' 선정을 두고 증권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펀드매니저들의 투표(Poll) 시기가 가까워오면 애널리스트들이 본연의 임무인 기업 탐방, 보고서 작성, 설명회 등보다 접대와 선거운동에 더 열을 올리는 실정이다.
특히 주관하는 신문사가 펀드매니저들의 투표 결과를 증권사에게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어느 기관이 누구를 찍었는지 알 수 있어 사실상 '공개투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투표결과가 공개되다보니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은 투표권자들은 대가성 투표를 하고, 이를 확인한 애널리스트들은 또 다시 접대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세태에 이르렀다.
A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센터장들 중에 한 번이라도 투표 결과를 안 사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안 사려 해도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강력하게 요구해 사보지 않을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B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도 "통상 금액이 높을수록 투표 결과가 디테일하게 나온다"며 "특히 소형 운용사는 투표자들이 몇 없기 때문에 해당 운용사로부터 몇 표를 받았는지만 알아도 누가 찍었는지 뻔히 알 수 있다"고 말을 보탰다.
수년 간 투표결과를 구입했다는 C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들어 자존심이 상해 '자체적으로' 사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암묵적인 접대가 오가다 보니 그 사람이 나를 찍었는지 아닌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괜히 자존심만 상해 베스트에 신경 껐더니 그 때부터는 후보 랭킹에도 없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곤혹스럽기는 투표권을 가진 기관투자자도 마찬가지다. D자산운용 주식운용부장은 "모든 애널리스트를 아는 게 아니므로 잘 아는 사람들만 직접 투표하고 후배 매니저에게 (투표를) 맡긴다"며 "내가 투표한 결과를 당사자들이 안다고 생각하니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당초 투표 결과를 공개한 것은 부정없이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렇지만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이 치열해지고, 접대로 얼룩지면서 이제는 복마전이라는 지탄까지 받게 됐다.
이제는 바뀌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병폐를 알고도 방치하는 주관 언론사나 알고도 사들이는 증권사나, 매표(買票)에 목숨거는 애널리스트나 시장을 교란시키는 공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새 '증권업계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위기는 불신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진짜 '베스트'가 되려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을 고민해야 한다.
[뉴스핌 Newspim] 서정은 기자 (love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