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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문화의 향기<6> ‘왕과 귀족의 문화’에서 ‘대중문화’의 시대로

기사입력 : 2015년03월17일 17:00

최종수정 : 2015년03월25일 09:49

이철환의 문화의 향기<6> ‘왕과 귀족의 문화’에서 ‘대중문화’의 시대로
 
르네상스시대는 신으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해나간 시대이다. 즉 인간중심의 문화예술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고와 표현의 지향점이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지만, 모든 인간들에게 옮겨진 것은 아니었다. 르네상스가 태동하던 시대는 십자군전쟁이후 교황의 위세가 많이 꺾이는 대신 절대왕권이 확립되어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문화적 가치도 절대 권력자가 독점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절대자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문화예술인들은 그의 하수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지난 16~17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나타난 문화사조가 바로크문화이다. 이 바로크풍은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달리 불규칙함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다. 바로크는 대략 16세기 중반 종교개혁과 함께 시작되어 1700년 직후 루이 14세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과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을 들 수 있으며, 대표적인 화가로는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바로크시대에 와서는 그동안 잠만 자고 있던 음악분야도 드디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비발디, 헨델, 바흐 등의 음악가들이 활약하면서 음악도 주요한 문화의 장르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음악, 궁정음악, 성악위주이던 음악의 세계를 넓혀나갔다. 기악과 오페라가 등장했고 세속음악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루이 14세 이후 절대왕권이 쇠퇴하면서 바로크문화도 쇠퇴하고 대신 귀족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내세우며 새로운 문화사조를 창출시키는데, 이것이 로코코 문화이다. 이 로코코는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즉위한 직후인 1720년 무렵부터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1789년까지 유행했던 유럽의 예술양식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성행했다. 특히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유행의 중심에 서있었다. 이와 같이 로코코는 한마디로 귀족들의 우아하고 세련된 실내장식문화였다. 따라서 이때까지도 대중들의 문화에 대한 접근은 어려웠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후 점차 일반대중들의 힘이 강화되어나갔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정신이 일반대중들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19세기에는 문화사조도 개인의 자유정신을 표현하는 경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는 점차 대중들이 문화의 주변지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문화예술사조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로 이어져 왔다.
특히, 미술의 세계에서는 빛과 색채를 중시하여 사물을 다각도로 관찰· 표현한 인상파와 이후의 후기 인상파 예술가들이 미술사의 새 지평을 열어갔다.  이 인상파 기법은 모네, 드가, 고갱, 르누아르 등으로 대표되는 전기 인상파를 거쳐, 세잔, 고갱, 고흐와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까지도 문화의 본류는 여전히 미술계가 장악하고 있었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는 동안 미술은 언제나 문화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비해 음악은 뒷전이었다. 음악의 세계란 소년합창단의 성가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로크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지배층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음악계도 커다란 발전이 있게 된다. 그래서 당대의 음악가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3대 고전파 음악가들이 활약하면서 최고의 음악전성기를 맞이했다. 또한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등과 같은 명장이 나타나 바이올린 등 연주에 필요한 악기를 공급했다.
 
한편, 19세기 말에는 종말론적사상과 염세적사상의 문화사조가 풍미하였다. 그리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발발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인간들의 내면을 더욱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천착하게 하는 계기와 오브제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화세계의 표현방식도 단순한 인간외적인 면보다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이 시대에 형성· 발전되고 있던 미술계의 문화사조는 야수파(Fauvism), 입체파(Cubism), 다다이즘(Dadaism) 등이다. 마티스를 대표로 하고 강렬한 색채를 특성으로 하는 야수파, 피카소를 대표로 하고 20세기 현대회화의 포문을 연 입체파는 모두 19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한 세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나타난 미술사조이다. 그리고 다다이즘이란 1920년대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전위적인 미술가와 작가들이 본능이나 자발성, 불합리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체계와 관습적인 예술에 반발한 문화운동을 뜻한다. 또 이러한 세기말적 사상은 미술세계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비슷한 시기에 말러와 같은 염세적인 작곡가들이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자유정신이 함양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대중들의 힘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반전운동이 심화되었고, 이를 통한 저항정신이 문화사조에 반영되고 있었다. 이시대의 문화사조는 미래주의, 아르누보(Art Nouveau), 초현실주의(surrealism), 추상주의,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 팝아트(Pop Art) 등이다. 특히 20세기 후반 들면서는 미국의 현대미술이 강력하게 활기를 띠게 된다. 1960년대 등장한 팝아트는 주로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이미지를 그대로 화면에 도입하는 것으로 가장 미국적인 회화라고 평가되고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이 있다.
 
한편, 고전낭만파 이후의 음악세계는 독일의 정통 기악음악과 이탈리아의 오페라 음악으로 크게 이원화되었다. 다만,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와 같은 러시아 국민음악가들도 공산정권에 저항하면서 현대음악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20세기 후반에는 카라얀이라는 걸출한 지휘자가 나타나 클래식음악이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더욱이 반전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밥 딜런, 존 바에즈와 같은 통기타세대들의 대중음악이 새로운 대중문화시대를 열어나가게 되었다.
 
여기에다 20세기에 등장한 영화는 대중문화의 장을 한층 더 본격적으로 열어 나갔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영화가 제작· 상영되면서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그 뒤 20세기말에 이르러 기존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시대를 열어갔다. 한편 유럽에서도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탐구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평범한 소시민들의 소박한 이야기와 스튜디오가 아닌 현지촬영 등을 특징으로 하는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즉흥 연출과 장면의 비약적 전개 그리고 영상의 감각적 표현을 추구하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영화 등 다양한 형태의 영화와 영화기법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대중문화를 한층 더 빠른 속도로 확산시켜 나갔다. 이제 상류층이 아니어도, 또 예술에 대한 특별한 조예가 없더라도 집에서 라디오나 TV를 보면서 문화를 즐기고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기존의 전통문화도 상업성을 추구하고, 또 문화의 융합현상이 나타나면서 전통문화와 대중문화가 서로의 벽을 헐고 간극(間隙)을 좁혀가고 있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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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선사시대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바위그림인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신청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010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 15년 만의 결실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총 17건(문화유산 15건·자연유산 2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의 암각화' [사진=국가유산청] 2025.07.12 alice09@newspim.com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로 지정된 울산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하는 유산이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등이 생동감 있게 표현돼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화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010년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 지난해 1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이후 서류 및 현장실사 등 심사를 거쳤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했다. 이어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해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사진=국가유산청] 2025.07.12 alice09@newspim.com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정과 함께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보고할 것과 더불어 반구천 세계 암각화센터의 효과적 운영을 보장하고, 관리 체계에서 지역 공동체와 줌니들의 역할을 공식화하고,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주요 개발 계획에 대해 알릴 것을 권고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번 '반구천의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국가유산청과 외교부,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해당 지자체가 모두 힘을 합쳐 이뤄낸 값진 결과"라며 "이번 등재롤 계기로 '반구천의 암각화'가 가진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실히 보존하는 한편, 지역주민과의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는 적극행정으로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세계유산 등재까지는 쉽지 않은 긴 여정이었다"며 "앞으로도 국가유산청은 '반구천의 암각화'를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키고 잘 보존·활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alice09@newspim.com 2025-07-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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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네르, 생애 첫 윔블던 단식 우승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세계 1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가 생애 첫 윔블던 남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신네르는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2025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2위)를 3시간 4분 만에 3-1(4-6 6-4 6-4 6-4)로 꺾었다. 올해 1월 호주오픈에 이은 시즌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품에 안고 상금은 300만 파운드(약 55억8000만원)를 거머쥐었다. 이탈리아 선수가 윔블던 단식 정상을 밟은 것은 남녀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 남자 단식 마테오 베레티니, 2024년 여자 단식 자스민 파올리니가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카라스를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이번 결승은 지난 프랑스오픈 결승에 이은 두 선수의 메이저 결승 리턴 매치. 당시 신네르는 알카라스에게 2-3(6-4 7-6<7-4> 4-6 6-7<3-7> 6-7<2-10>)으로 패해 우승을 놓쳤다. 당시 트리플 매치 포인트를 날린 신네르는 경기 후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기'라며 절치부심했고 한 달 만에 완벽하게 되갚았다. 신네르는 알카라스에게 당하던 5연패 사슬을 끊었다. 둘의 상대 전적은 여전히 알카라스가 8승 5패로 앞선다. 신네르는 이날 알카라스 특유의 드롭샷과 로브, 변칙 플레이에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3세트 게임스코어 4-4에서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4세트에서도 다시 한 번 브레이크로 균형을 깼다. 게임스코어 5-4, 자신의 마지막 서브 게임에서 신네르는 평균 200km/h에 가까운 강서브로 트리플 챔피언십 포인트를 만들었고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카라스를 꺾고 우승한 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자빈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경기 후 신네르는 "파리에서 정말 힘든 패배를 겪었기 때문에 감정이 북받친다"며 "결국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다. 우리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계속 노력했고, 그 결과 이렇게 트로피를 들게 됐다"고 말했다. 하드 코트 메이저에서만 세 차례(2023 US오픈, 2024 호주오픈 포함) 우승했던 그는 이번 잔디 코트에서 처음 정상에 올라 메이저 전천후 강자임을 입증했다. 유일하게 우승이 없는 클레이코트 메이저 프랑스오픈까지 제패할 경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지난해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던 신네르는 도핑 사실이 알려진 뒤로는 올해 호주오픈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따냈고 도핑으로 인한 3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마친 올해 5월 초 이후로는 이번이 첫 메이저 우승이다. 반면 알카라스는 윔블던 3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통산 6번째 메이저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당했고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선 여전히 호주오픈 우승이 필요하다. [런던 로이터 =뉴스핌] 박상욱 기자 = 신네르(왼쪽)와 알카라스가 13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을 마치고 축하와 위로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7.13 psoq1337@newspim.com 그는 "결승에서 지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오늘은 야닉의 날이다. 훌륭한 테니스를 한 그에게 축하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네르와 알카라스는 지난해 호주오픈부터 치러진 7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타이틀을 전부 나눠 가졌다. 2023년엔 알카라스가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신네르가 호주오픈과 US오픈을 차지했고, 올해는 다시 신네르가 호주오픈과 윔블던을, 알카라스가 프랑스오픈을 가져갔다. 이제 두 선수는 메이저를 양분하는 확실한 '빅2'로 자리매김했다. psoq1337@newspim.com 2025-07-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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