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철환 무역협회 자문위원
[뉴스핌] 2003년에 일어난 ‘부안 방폐장’ 사태는 우리나라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인적· 물적 피해를 야기한 사건으로 님비현상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후보지 선정에는 여러 가지 지원책과 함께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의 도입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게 되었다.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는 산업폐기물, 분뇨처리장, 납골당, 마약중독자· AIDS 환자 시설 설치 등 공익시설이지만, 혐오스럽거나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 마을에 지을 수 없다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님비현상은 지역 이기주의로 인한 공공정신의 약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이런 전형적인 님비현상이 일어났다. 통상 ‘사드’로 불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부지 확보 과정에서도 극도로 심각한 님비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처음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가 대두되었을 당시 일부 반대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들처럼 경북지역 주민들도 사드배치는 대한민국 생존 차원에서 피할 수 없는 중차대한 국가 안보전략 과제로 받아들이고 이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사드배치 지역이 경북지역으로 검토되자 경북지역 주민들은 극렬한 반대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이철환 무역협회 자문위원 |
정부가 사드를 경북 성주에 설치한다고 발표하자마자 성주 주민들은 결사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성주 주민들은 사드배치 계획에 대한 설명을 위해 방문한 국무총리에게 물병을 던지고, 성주 군수는 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후 성주군은 한발 물러서 사드배치 지역을 기존에 발표된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군 내 다른 곳으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데 이른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른 후보지 3곳에 대한 평가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최종 후보지로 성주군 초전면의 성주골프장(롯데스카이힐 성주CC)이 확정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골프장 인근에 위치한 김천시민들이 거세게 반발을 하였다.
일부에서는 사드 배치지역 논의 과정과 배치기준, 안전성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불신과 반발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국민이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김천시민은 성주에서 사드설치를 반대하자 애꿎게 자신들이 파편을 맞게 되었다며 정부를 비난하였다. 처음부터 좀 더 신중한 검토가 있었더라면 이런 불필요한 과정은 거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왜 사드를 그곳에 배치해야 하고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솔직히 공개하고 주민을 적극 설득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이 님비 현상으로 인해 혐오 공익시설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또 지자체 상호간에도 이 님비로 인한 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객관적으로 좀 더 나은 위치에 거주하는 특정지역 주민들이 이웃지역을 잇는 연계도로공사를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는 경우가 그 예이다.
이들은 연계도로가 만들어지면 이웃 지역주민들이 자기 동네를 왕래하면서 소음과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며 방해공작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연계도로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회하거나 당초보다 축소· 조정되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고 있다.
꼭 필요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에 대해서도 이 님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로원, 고아원, 장애인 복지시설, 탈북자 교육시설이 내가 사는 지역에 설치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심지어 저소득층 임대주택 건립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나와 관계가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한없는 동정심과 연민을 느끼지만, 일단 그들이 나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면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리는 공통된 공간에서 상호작용하며 연대를 이루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일원이다. 인간의 속성이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이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서적 유대감, 공동체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을 조절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편 님비와는 반대 개념으로‘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가 있다. 이는 자기 지역에 이익이 되는 시설이나 사업을 유치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말 그대로 제발 자기 집 앞뜰에 놓아달라는 것이다. 이 현상 또한 집단이기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한 영남지방 지역 상호간의 분열사례는 핌피현상의 대표적인 예이다. 부산과 밀양은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가덕도 유치를 원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에 유치되기를 바라는 경남· 울산· 대구· 경북 등 5개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바라는 지역민들의 기대심리와 정치권의 정치적 의도 등이 맞물리면서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열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어느 한쪽만을 편들기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원천적으로 사업을 백지화하는 방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국 양측 당사자들의 이기주의가 꼭 필요한 국책사업의 수행을 좌절시키는, 즉 국익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정부는 국가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관철시키거나, 아니면 애당초 사업의 당위성과 추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한 이후 사업계획을 발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에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사업이 당초계획보다 훨씬 늦어지고 있는 사례,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공모 사업에 20여개 지자체가 과열경쟁을 벌여 잠정중단 사태를 빚은 사례 등에서 보듯이 이익이 따르는 시설이나 사업을 자기 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지자체들 간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 또한 핌피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국책사업임에도 반대 세력의 방해공작, 불법 과격시위 등으로 인해 추진이 불가능해져서 지역경제가 얼어붙고 사회적 불신의 벽이 높아지는 부작용을 수없이 보아왔다. 이로 인한 사회적 직· 간접 손실은 수천억 원을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에 달하며, 국민들 상호간에 갈등의 골 또한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회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님비나 핌피현상도 그렇다. 내가 사는 지역에 좋고 이로운 일만 주장하지만, 사실 넓게 본다면 다른 지역이나 도시들 역시 내가 사는 우리나라의 일부가 아니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제라도 타인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의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는 이 공동체가 유지되고 존속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철환 한국무역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