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서 롯데마트 언급하며 경제 제재 비판
사드배치 자체는 문제, 다만 감정적 대응 곤란
[베이징=뉴스핌 백진규 기자] “중국에서 중국 직원들과 함께 중국 물건을 판매하는 롯데마트에 대한 보복이 과연 중국을 위한 일인가? 방법이 잘못됐다.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3월 23일 오후 4시 반.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석사생을 대상으로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란 주제의 수업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사드 경제보복은 부작용이 커 실효성이 없으며, 안보 문제는 안보로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자는 사드 이후 중국내 한류와 한국기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취재하기 위해 이날 베이징을 찾았고, 자칭궈 교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베이징대에 들렀다가 인터뷰전에 우연히 강의를 듣게 됐다. 이날 강의는 하이덴구의 베이징대학교 2교(教) 202호 강의실에서 있었고, 60여명의 학생들중 상당수가 자 교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학생들 사이사이 한국 유학생과 서양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인터뷰 약속을 한 시간 가량 남겨놓고 우연히 청강을 하게 된 기자 역시 중국 당국의 입장과 사뭇 다른 자 교수의 발언에 갑자기 펜이 멈춰질 정도였다. 자 교수는 롯데마트를 예로 든 뒤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면서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얘기했다.
이날 저녁 6시, 강의가 끝난 뒤 기자와 정식 인터뷰를 가진 자칭궈 교수는 사드 갈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강의 시간에 잠깐 언급했던 입장을 되풀이해 강조하면서 한중 양국 모두 사드 사태에 대해 냉정히 대응하면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자칭궈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원장이 3월 23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주제로 수업하면서 롯데마트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사진=백진규 기자> |
자 교수는 중국이 사드 경제보복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한국의 사드배치 자체에 대해서는 잘못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사드배치는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이며, 한국이 절차적으로도 중국과 제대로 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사드배치를 철회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주장이다. 또한 예전 일본과의 조어도 사태와 사드를 비교하면서 사드 배치는 중국에 ‘현실적인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자칭궈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 및 중미관계 석학으로, 평소에도 중립적이고 소신있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3월 정치협상회의에서 그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중국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며 오히려 다른 국가가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이 내용은 중국 관영지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됐다. 자 교수는 지난 2016년 8월 사드논란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한국이 사드배치를 강행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자칭궈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정협 회의에서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비판했는데, 정확한 발언 취지를 알고 싶다.
▲경제보복으로 중국이 기대한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보복을 외교수단으로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첫째, 중국에 돌아오는 부정적인 영향이 경제보복으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크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제재가 한국에 피해를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한국도 중국 외에 다른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게 된다. 또한 중국에 진출하는 많은 투자자들에게도 안 좋고 중국 경제 자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둘째, 중한 국민들간에 감정적 대립을 야기할 수 있는데 한 번 대립이 생기면 풀기 어렵다. 셋째, 경제보복으로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우호관계가 흔들리면 제 3자가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경제적 보복이 방법론적으로 잘못됐다면, 어떤 식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뜻인가?
▲한국은 사드배치를 통해 중국의 안보(안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경제문제는 경제로, 정치문제는 정치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안보문제는 안보문제로 맞서야 한다.
최악의 상황으로 사드배치가 현실화된다면, 중국은 레이더 교란장치를 통해 한국이 중국 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또는 다른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한국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의견이 다양하다. 또한 중국의 보복이 과하다는 점에서 한국 내에서도 불만이 많다.
▲하지만 한국은 자신들이 먼저 잘못을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드배치는 내 주권이다. 내가 방어용 무기를 개발하는데 중국이 왜 간섭하는가? 중국은 항모 개발할 때 우리한테 사전에 얘기했나?”고 하지만 이건 잘못된 주장이다. 사드는 미국의 군사무기다. 미국 무기를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복잡하고 커진 것 아닌가.
반면, 일부 중국인들은 “예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할 때 미국이 한 것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드배치를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말이다. 당시 쿠바 미사일은 미국 침공을 위한 것이다. 반면 사드는 기본적으로 방어가 목적인데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특성이 있다. 한국은 사드의 레이더 탐측 범위가 600~800km라고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그 범위가 2000km까지 조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사드의 레이더 범위가 좁혀진다면, 예를 들어 저기능 레이더를 통해 관측 범위를 600~800km로 고정한다면 중국도 사드배치에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인가?
▲한국이 단순히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정기적으로 담당자를 사드 시설로 파견해 확인 하거나, 아니면 상시 근무자를 배치해 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일 뿐 나는 군사 전문가는 아니다.
자칭궈 교수 <사진=백진규 기자> |
-하지만 조어도 분쟁을 생각해보면, 당시 영토 문제를 놓고 지금의 사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대립하던 중국도 지금은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조어도는 ‘감정’과 ‘역사’의 문제였지만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상징적인 문제가 더 컸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 분쟁도 그렇지 않나?
하지만 사드문제는 안보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로 그 성격이 다르다. 더군다나 한국과 중국은 오랜 친구였는데 중국이 느끼는 배신감이 어떻겠는가?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건 나름 일리가 있다. 북한의 핵무기가 직접적인 원인이며, 방어수단의 하나로 사드 배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나는 예전에도 같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절차를 보라.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면서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중한관계 회복은 요원하다.
-달라진 한중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당연히 사드문제부터 해결 되야 한다. 하지만 사드와 별개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중한관계는 매우 좋았다. 이렇게 양국 관계가 틀어져 버린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쌍방 모두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 언론들은 더 그렇다. 한국 언론들이 너무 과도하게 중한(中韓)대립을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기사를 쓰면 실시간으로 번역돼 중국인들도 관심을 갖게 된다. 중국에서는 그렇게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정협위원이자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저명한 학자로서 중국의 경제보복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기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내 의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의 경우, 일부는 사드 경제보복으로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것이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이들도 많다. 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의견을 밝힌 것 뿐이다.
[뉴스핌 Newspim] 백진규 기자 (bjgchin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