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화재 경보장치 있어야 건축허가..관리도 '깐깐'
한국은 스프링클러 설치규정 등 느슨
시민들도 소화기 작동법 무지..소방관 처우 '열악'
[뉴스핌=김세혁 기자] “한국선 불나면 원래 많은 사람이 죽는가?”
지난주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기사로 접한 일본 네티즌의 댓글이다. 주거시설이나 병원, 백화점 등 대형시설은 물론 문화재에 이르기까지 첨단소방시설을 갖춘 일본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 병원 응급실에서 시작된 불로 무려 4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일본이나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왜일까.
◆갈길 먼 한국 방재시스템
스프링클러로 물을 보내는 설비를 점검하는 소방관 <사진=뉴시스> |
일본이나 미국은 건물을 지을 때 적용되는 소방법이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불을 끄는 시설은 물론 화재를 알리는 경보장치가 기본적으로 설치돼야 허가가 난다.
평소 실시되는 소방점검 역시 깐깐하다. 일본 총무성 산하 소방청 또는 도쿄소방청 등 관련 기관이 대규모 정기점검을 실시한다. 규정을 어길 경우 벌금이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셀프점검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종로여관 방화처럼 비상벨이 울리지 않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 없다. 화재와 동시에 분수 같은 물길이 건물 전체를 감싸는 일본 문화재 방재시스템은 소방법 내 문화재보호법에 명기된 사안이다. 호주나 독일 등도 소방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한국은 어떨까. 제천참사나 종로여관 방화, 밀양세종병원화재만 봐도 소방시설은 물론 관리가 취약하단 사실을 알게 된다. 소방법 역시 느슨하다. 노인이나 중증환자가 대부분인 요양병원의 스프링클러 설치규정에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소방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이나 정신의료기관, 노인요양시설 가운데 바닥면적 합계가 600㎡ 이상인 곳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돼 있다. 39명이 화재로 사망한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설치대상이 아니었다.
참사를 겪고 부랴부랴 제도를 손보는 정치권도 문제다. 국회 법사위는 30일 전체회의를 갖고 소방기본법·도로교통법·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등 소방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에는 지난해 3월 발의, 10개월간 낮잠을 잔 법안도 포함됐다. 대형참사를 겪고서야 이뤄지는 전형적인 뒷북행정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시민 관심 절실...교육 참여는 필요 아닌 필수
화재에 대한 시민의식도 외국과 차이가 난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를 바라보는 해외 시각은 충격 자체였다. 지하철 화재로 2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난 사례를 본 적이 없어서다.
완강기 체험시설. 완강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사진=뉴시스> |
아쉽지만 이런 상황은 15년이 지난 현재도 변하지 않았다. 거주지 어디에 소화기가 설치돼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소화기 종류나 작동법을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소화기 역시 규정에 따라 보관되는 경우가 드물다. 3층(근린시설) 및 4층(의료시설) 이상 건물에 적용되는 완강기는 반드시 눈에 띄는 장소에 설치하고 사용법도 숙지해야 한다. 하지만, 완강기가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걸을 때부터 안전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워낙 지진 등 재난이 많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난에 대한 시민의식이 앞서있다. 불이 나면 체계적인 ‘매뉴얼’에 따라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상황전파를 포함한 초동대처 역시 빠르고 단호하다. 평소 이런 교육은 재난이 벌어질 때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요즘 화재가 많아 소화기나 화재경보기를 많이 구입, 품절상태더라. 아주 좋은 현상”이라면서도 “정작 사용법이나 설치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정부나 지자체가 SNS를 활용,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9% 지방직 소방관에 장비도 열악
경찰 등 다른 공무원과 달리 소방관들은 99%가 지방직이다. 소방관에 대한 인사나 재정 등 권한이 정부가 아닌 지자체에 머물다 보니 처우나 장비 등에 한계가 따른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이 돼 정부에 속해야 신속하고 현실적인 지원 및 운용이 가능하다는 건 숱한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다.
소방청도 제 기능을 해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소방관 처우개선을 위해 42년 만에 소방청을 독립시켰지만, 아직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30일 국무회의에 제출된 ‘2017년 정부업무평가 결과’에서 소방청은 행복청, 방사청, 해양경찰청과 함께 낙제점인 ‘미흡’ 평가를 받았다.
현장에서 발휘하는 소방관들의 권리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화재현장 진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먼저 제거하는 소방선진국이다. 불법주차하거나 도로 위 소방차 출동을 방해하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소화전을 막은 차량 창문을 깨부수는 영화 ‘분노의 역류’(1991)만 봐도 우리와 차이가 와닿는다.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