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여건 돼야" 조건부 수용..美 사전조율 관건
외교가 "남북정상회담, 비핵화 이끄는 계기로"
"단순히 남북관계만 떼내 평양 갈 수 없는 상황"
[뉴스핌=정경환 기자]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의와 관련, 전문가들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비핵화에 있어 진전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놨다.
10일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지 여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있어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가에 달려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화와 관련해서 진전된 가능성들이 보여야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며 "전적으로 그냥 남북 관계만 떼내서 (평양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했다. <사진=청와대> |
앞서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한 시간에 북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는 일단 '포스트(post) 평창', '애프터(after) 평창'을 대비하는 것"이라며 "평창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남북공조 없으면 바로 또 미국이 압박해 올텐데,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해야 민족공조 계속 이어갈 수 있고, 그래야 제재를 피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문 대통령은 외형상 수락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조건을 달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조건부 수용"이라며 "그런데 그 조건이 굉장히 강한 조건은 아니고, 일단 '여건'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것 같다. '바로 가겠다' 그러면 미국의 반발이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답변에 "김 위원장의 요청을 수락한 것"이라고 했다가, 이후 "대통령 발언 그대로 해석해 주면 좋겠다"며 톤을 낮췄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관계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며 "10년이 넘어 이뤄지는 정상회담인데 성과 있고 의미 있게 되려면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 여건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의미인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핵 진전'을 시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네, 그러길 바라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남 교수는 "문 대통령의 '여건' 조건은 국제사회와 협력한다는 것인데, 북한이 변해야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남북은 연내 (정상회담을) 해보려고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말하는 여건 조성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 등 이날 접견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향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당부했다.
고 교수는 "비핵화에 대해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북·미 대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런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만약 그게 안 된 상태에서 우리가 정상회담에 가게 되면 북한 핵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는 "비핵화 입장 변화가 없는데 평양에 간다 그러면, 향후 워싱턴과의 협상 구도가 잡히지 않는다"고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부터) <사진=뉴스핌 DB> |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제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무엇보다 미국의 입장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최대한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이상 북·미 간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 만찬에서 김 상임위원장과는 악수도 하지 않는 등 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다.
남 교수는 "미국은, 제재를 하니까 북한이 남북대화도 하고 그렇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제재를 풀지 않으려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그럼 북한은 언젠가 또 미사일을 쏴서 미국을 바로 타격할 수 있다는 거 보여줘야 하니까, 서로 간에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압박을 풀지 않는데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들고 나올 리도 만무하다.
김 교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해선 결국 북·미 대화로 가야 하는데,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선 그게 안 된다"면서도 "북한으로선 손해볼 게 없다.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핵을 가지는 쪽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봤다.
그렇다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끝내 불발되고 마는 것인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성사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중론이다.
남 교수는 "(비핵화 진전 없으면) 우여곡절 겪으면서 단기에 이뤄지진 못할 수 있다"고 했고, 고 교수는 "(우리 입장에선) 우선 핵 동결이라도 되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성사 가능성을 좀 더 크게 봤다. 그는 "한·미 간에만 이야기가 잘 된다면, 지방선거 때는 힘들겠지만 올 하반기 정도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