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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솔리드 "모든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음악 만들고 싶어요"

기사입력 : 2018년04월26일 11:33

최종수정 : 2018년04월26일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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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만에 재결합…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 발매

[사진=솔리드]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1993년 ‘이젠 나를(Give Me A Chance)’를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솔리드’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밤의 끝을 잡고’로 가요계에 리듬 앤 블루스인 R&B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던 이들이 ‘천생연분’에 이어 1997년 발매된 ‘끝이 아니기를’ 활동을 끝으로 잠정 해체에 돌입했다.

21년이 지난 현재, 정재윤과 김조한, 이준이 솔리드로 재결합했다. 그리고 최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새 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를 발매하고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희가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점차 방향성을 잡고 있는 것 같아요. 21년의 공백기를 음악에 담아 얘기로 풀고 싶었어요.” (정재윤)

“이번 프로젝트를 하기위해 재작년부터 구성하고 작년부터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돌입했어요. 정재윤 씨의 곡이 너무 듣고 싶었거든요. 같이 호흡을 맞춘 것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손발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맞았어요. 첫 곡을 녹음하자마자 소름이 돋았거든요.” (김조한)

[사진=솔리드]

“저는 정말 어색했어요. 처음 앨범 발매하고 쇼케이스 기자간담회 했을 때도 너무 어색했고요. 정말 오랜 시간을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었잖아요. 지금은 약간 익숙해진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제가 연예인이라는 게 적응되진 않네요.”(이준)

1996년 ‘이 밤의 끝을 잡고’에 이어 ‘천생연분’으로 인기구도로 정점을 찍었을 때 이들은 콘서트를 진행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 공연은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이제야 다시금 공연을 준비 중이다.

“저희가 1996년에 공연을 마지막으로 했어요. 공연은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곳인데, 이번 콘서트를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구상 중이에요.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주변에 저희 노래 중 좋았던 곡들을 물어보고 있어요. 관객 분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곡들로 준비하려고 해요.”(김조한)

“이번 재결합 후 목표가 있다면 공연을 계속 하는 거예요. 5월 달에 공연이 끝나면 해외 공연도 준비 중이에요. 최대한 좋은 음악으로 기다려주신 팬 분들에게, 대중 분들에게 보답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정재윤)

[사진=솔리드]

세 명이 뜻을 모아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준은 미국에서 사업을 진행중이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음 앨범에 대한 계획도 크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번 앨범은 저희가 정말 자체 제작했어요. 음악을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임했고, 가장 좋은 음악이 나와야 다시 앨범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저희 스케줄은 직접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맞는다면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어요.”(김조한)

“어느 소속사에 속해있는 게 아니라서 편해요. 시간이 맞을 때 곡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다음 앨범에 대한 질문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좋은 곡이 나오면 하겠죠. 아직 솔리드 다음 앨범에 대한 미래 계획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렇게 계속 할 거라는 거예요. 팬들이 원하시면 저희는 계속 해요.”(이준)

“저희는 방송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활동하는 거라서 아이디어가 있으면 계속 앨범을 낼 거예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웃음).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서 앞으로 여러 콘텐츠로 인사드리게 될 것 같아요.”(정재윤)

[사진=솔리드]

김조한은 솔로 가수로, 이준은 미국에서 개인 사업으로, 정재윤은 가수들 프로듀싱으로 각자의 삶을 걸어왔다. 그 누구보다 솔리드의 무대를, 그리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처음에 정말 힘들었어요. 솔로 가수로 전향하고 ‘이 밤의 끝을 잡고’를 혼자 부르는데 혼자선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결국 그 노래는 편집해서 불렀는데 멤버들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립더라고요. 저희가 재결합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 밤의 끝을 잡고’를 불렀는데 너무 떨렸어요. 정말 느낌이 새로웠죠.”(김조한)

“이렇게 하게 된 것도 정말 신기해요. 저희가 뭉쳤지만 어떤 활동을 할지 전혀 예상을 못했거든요. 이제 방향성이 조금씩 잡히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어린 친구들한테 맞춘 음악이 아니라, 저희 색깔을 유지하면서 모든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목적이자, 목표에요.”(정재윤)

alice0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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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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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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