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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기업 라오쯔하오] 세월을 거슬러 빛나는 중국 3대 전통 브랜드

기사입력 : 2018년07월02일 17:01

최종수정 : 2018년07월04일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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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계보다 더 인기있는 상하이 파이
'메이드 인 차이나' 에 대한 세계 편견 불식

[서울=뉴스핌] 이동현기자=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의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상하이파이(上海牌), 페이웨(飛躍),솽메이(雙妹)는 유서 깊은 중국 브랜드로서 뛰어난 품질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제품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중국 소비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중국의 1세대 소비재 제품으로,싸구려라는 중국산 상품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데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중 토종 운동화 브랜드 페이웨(飛躍)는 2005년 프랑스 사업가에게 해외 판권을 매각했다. 그 후 페이웨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더한 ‘브랜드 리뉴얼(Brand Renewal)’ 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상하이파이 손목시계<사진=바이두>

◆중국인들의 선망의 대상, 상하이파이 시계

1955년에 설립된 상하이파이(上海牌)의 시계는 중국의 ‘1세대 명품’으로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애용한 손목 시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중국에서 손목시계는 재봉틀, 라디오,자전거와 더불어 중국인들의 ‘4대 귀중품’이자 ‘필수 혼수품’으로 불렸다. 신중국(新中國) 성립 얼마 후 탄생한 상하이파이 시계는 당시 중국인들에게 부의 상징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상하이파이 손목시계는 융주파이(永久牌) 자전거와 함께 상하이를 대표하는 지역상품으로 중국 전역에 알려진 ‘전국구 브랜드’로 꼽힌다.  

1954년 국가경제위원회(國家經委) 이푸춘(李富春) 주임이 상하이를 시찰하면서 “ 6억 인민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토종 손목 시계를 상하이에서 생산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히면서 관련 당국은 본격적으로 시계 제조공장 설립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1955년 상하이 당국 및 시계 협회 등 유관단체들이 시제품 생산에 착수하게 되면서 ‘시계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 마침내 1958년 상하이파이의 첫 상품인 A581형(型) 제품이 개발되면서 중국 자체 기술로 만든 토종 손목시계가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상하이파이 시계를 착용한 저우언라이 총리<사진=바이두>

특히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국내 제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직접 상하이파이 제품을 구입한 후 공식 석상에서 A581형(型) 손목 시계를 착용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저우 총리는 세상을 뜰 때까지 이 손목시계를 착용한 것으로 전해질 정도로 이 브랜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상하이파이 손목시계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결혼 예물로 각광을 받으면서 고급 제품으로 인식됐다.

다만 중국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는 제한된 분량의 시계 배급쿠폰(手表券)을 통해서 상하이파이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상하이 파이 시계가 없으면 결혼을 할 수도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개혁 개방 이후 상하이파이는 해외 브랜드의 진출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품질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고급 토종시계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갔다. 특히 매출의 5%를 R&D에 투입하는 등 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하면서 중국 시계 업계를 선도해 나갔다. 2010년 중국 상무부(商務部)는 상하이파이(上海牌)를 라오쯔하오(中華老字號)로 지정하면서 이 업체의 브랜드 가치는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페이웨 매장<사진=바이두>

◆’어머 이건 꼭 사야해’,  ‘잇템’  페이웨 스니커즈

페이웨(飛躍) 운동화는 감각적인 디자인에 높은 가성비로 해외 직구족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산 ‘잇템’으로 꼽힌다.

페이웨의 전신은 1920년대 상하이에서 설립된 스니커즈 공장이었다. 당시 이 공장에서 생산된 고무 밑창이 달린 신발은 편한 착용감으로 큰 인기를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0년대~80년대까지 페이웨는 또다른 토종 신발브랜드 쐉싱(雙星)의 워리어(Warrior 回力)와 함께 ‘국민 브랜드’로 중국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게 된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굴지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토종 브랜드의 인기는 서서히 식게 된다.

그후 2005년 페이웨는 프랑스 사업가 파트리스 바스티안(Patrice Bastian)에 눈에 띄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프랑스 경영인은 페이웨의 브랜드 판권을 구매한 이후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면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한 후 프랑스에서 페이웨 브랜드를 재출시한다. 그 후 세계 최대 패션잡지 엘르(ELLE)는 페이웨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게 되면서 이 브랜드는 패션업계의 이목을 끌게 된다.

특히 페이웨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 셀린(Céline)과 콜라보를 통해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다. 저렴한 스니커즈 브랜드를 프랑스 감성의 디자인과 결합시켜 세련된 스니커즈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것.  2010년 미국의 타임지는 페이웨를 가장 성공한 ‘브랜드 리뉴얼’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올랜드 불룸이 페이웨 스니커즈를 착용한 모습<사진=바이두>

◆'국산화장품 1호' 솽메이(雙妹), 2010년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탄생

1898년 광둥성의 사업가 펑푸톈(馮福田)은 상하이자화(上海家化)의 전신인 광성항(廣生行)을 홍콩에 설립해 솽메이(雙妹)라는 이름으로 화장수 제품을 출시했다. 이때 출시된 솽메이(雙妹)는 중국 최초의 토종화장품 브랜드로 꼽힌다.

당시 솽메이(雙妹)의 화장수는 기존의 전통 화장품과 달리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장점으로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 후 펑푸톈(馮福田)은 1903년 상하이에도 광성항 공장을 건립하며 본격적으로 대륙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광성항은 상하이에 진출한 이후 화장수 외에도 머릿기름, 영양크림, 땀띠 파우더 등의 제품을 출시하며 수입 화장품에 의존하던 중국여성들의 화장품 선택의 폭을 넓혔다. 광성항이 출시한 제품들은 기존 제품과 달리 해외에서 수입한 원료와 중국 전통 제조방식을 결합시켜 당시로는 획기적인 상품으로 평가 받았다. 

신중국(新中國) 성립 후 광성항은 국유기업으로 편입된 이후 솽메이는 한때 자취를 감쳤다. 그 후 2010년 상하이 국제 박람회 기간에 상하이자화는 솽메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하며 브랜드 부활을 선포했다.

상하이자화(上海家化)는 향후 솽메이를 급격히 성장하는 고급 화장품 시장에 대응해 향수 및 색조 화장품에 특화된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솽메이는 상하이자화의 또다른 고급 브랜드 바이차오지(佰草集)보다 한단계 높은 브랜드로 리포지셔닝 됐다.

솽메이 포스터<사진=바이두>

dongxu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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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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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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