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유산 소실에 유명기업 기부 러시
유럽 등 외국은 지자체·한국은 정부 관리
기부=준조세 시각…기업도 간접적 지원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틀 만에 기부금이 1조원을 넘어서는 등 복구를 위한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화재 직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부를 호소한 이래, 유럽 기업들이 앞다퉈 기부금을 내면서 노트르담 대성당 기부 릴레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런 분위기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당시 우리가 겪은 상황과 매우 대조적이다.
◆ 노트르담 대성당 화제에 글로벌 기업 기부 릴레이
이번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96m 높이의 첨탑과 본관 지붕, 내부 석조 천장이 소실됐다. 800년 전 세워진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화염에 휩싸인 세계문화유산을 지켜본 지구촌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16일(현지시간) 공개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이후 처참한 내부 모습. 전날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모두 전소되며 잿더미로 무너져 내렸지만 성당 내부의 십자가와 제대, 피에타 상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2019.04.16. [사진= 로이터 뉴스핌] |
화재 직후 기업들의 기부 러시가 시작됐다. 구찌와 이브 생로랑 등 명품 패션 브랜드를 거느린 케링 그룹은 화재 하루 만에 1억유로(약 128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케링 그룹의 경쟁사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은 2억유로(약 2557억원)를 쾌척한다고 발표했다.
정유사 토탈과 화장품 기업 로레알도 1억유로를, 로레알의 대주주인 베팅쿠르 가문도 1억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미국 애플 최고경영자 팀쿡은 트위터를 통해 노트르담의 소중한 유산을 복원하기 위해 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월트디즈니도 500만달러(약 57억원) 기부를 약속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최종덕 소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부 소식에 “빠르게 많은 성금이 모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무래도 800년 넘은 종교 건물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카톨릭 문화권이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을 것이고 공감대가 형성돼 기부가 확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재 복원‧수리과정을 국가가 주도하는 한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한다. 때문에 기업의 후원이 활발하다는 시선도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조상순 학예연구관은 “유럽 국가들은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문화재도 많고 펀드 형태로 예산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기업 후원이 대규모로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문화재 복원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한계는
기업들의 기부 러시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재 복원사업을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조상순 학예연구관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은 문화재 관리에 ‘국가’가 강조되고 주도적으로 관리를 맡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지정문화재 복원‧보수에 대한 예산을 중앙정부가 70%, 지방자치단체가 30% 부담한다. 등록문화재의 경우 5:5 비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숭례문 화재 복구 때도 국가 예산이 들어갔다. 숭례문복구단 단장을 맡았던 최종덕 소장은 당시 숭례문 복원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부담했다고 밝혔다. 방화범이 불을 지른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250억원과 5년 2개월이란 시간이 투입됐다.
최 소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 복원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가 역풍을 맞았다”며 “정부는 민간의 기부금을 받지 않는다. 기부금지법이란 것이 있다. 민간 기부금은 준조세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인근 가판대 위에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문화재청 대외협력팀 장영기 주무관에 따르면 당시 기업 후원은 직접적인 성금이 아니라 기술 협력으로 이뤄졌다. 장 주무관은 “기업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기부를 재단을 통해 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숭례문 복구 당시 기업들은 간접적으로 기부했다. 신한은행은 전통기와를 만드는 가마 제작을 지원했고, 포스코는 철강 재료를 제공했다. 이를 제외한 비용은 국비 250억원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물론 문화유산신탁으로부터 후원도 있었다. 신탁 관계자는 “당시 해외거주자의 자발적 기부금 7억700만원이 모였고 숭례문 복구 작업에 쓰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장영기 주무관은 “국내 성금도 모였으나 다시 돌려줬다. 해외 거주자들에게는 돌려줄 방도가 없어 신탁 기금이 숭례문 복구 사업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주무관에 따르면 문화재 사업에 대한 기업 후원은 주로 신탁을 통해 진행된다. 그는 “문화재청은 기업의 후원을 직접 받기보다 재단이나 신탁을 통해 받는다. 기업 후원이 있으면 해외 문화재를 환수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나 문화유산국민신탁 등에 연결한다”며 “국민신탁 기부금을 통한 운영이 더욱 원활하게 진행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부에는 일반기부와 지정기부가 있다.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면 사용될 수는 있다. 또 공공목적이 확인되면 기부금 심사위원회가 열리고 이를 거쳐 후원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4일 숭례문 복원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
전문가들은 문화재 손실에 따른 복원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잘 보호하는 게 최선이라는 의견도 전했다. 장영기 주무관은 “숭례문도 그렇고 노트르담도 마찬가지다. 문화재는 공적 자산이다. 공공의 가치를 담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할 대상인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번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내부 보수 공사 중 전기 합선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화재 보호 등의 제약으로 초기 진압에 실패해 탑과 지붕이 내려앉았지만 성당 내부에 있던 유물들은 빠르게 옮겨져 무사했다. 13세기에 제작돼 가톨릭 미술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과 가시면류관, 첨탐 끝의 ‘청동 수탁’ 등은 인근 루브르 박물관에 옮겨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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