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 방위비, 아파트 월세보다 받기 쉬워”
문성묵 "재선 국면서 유리한 고지 점하려는 의도“
박인휘 "트럼프가 北 비난하면 우리에게도 악영향"
신범철 "북미대화·분담금인상 모두 국내정치에 유리"
[서울=뉴스핌] 허고운 노민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돈이 많이 드는 훈련”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쉽게 올려 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농담 수준의 발언이었으나 내년 우리 측이 지불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정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을 앞둔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자 북한은 신형 무기체계 시험발사를 계속하며 “대화를 해도 미국과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미관계 와해를 노리며 남북 대화를 중시하지 않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맞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태도는 미국 국내정치용 목적이 강하며 한미 동맹을 등한시 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트럼프 "김정은, 나를 볼 떄 미소 짓는다고"
11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대선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수금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뉴욕 브루클린 임대 아파트에서 임대료 114달러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약1조2000억원)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대단한 TV를 만들고 경제도 번성하고 있다. 왜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돈을 내야 하느냐”며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리는 친구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만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며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0억달러는 올해 초 제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 당시 미국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던 금액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쉬운 협상은 아니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협상을 시작했으나 10차례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올해 3월에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9602억원)보다 8.2% 인상된 1조389억원으로 조정하는 협정을 가까스로 맺었다. 이 금액은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비용 언급하며 외교문제 제기하는 건 트럼프 특징"
외교 전문가들은 10억달러를 쉽게 받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에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라는 압박임과 동시에 국내 정치를 위한 보여주기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과장된 발언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미국 국민들 중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라면서 “자신의 성과와 역량을 부각시켜 (대선)재선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비용을 언급하며 외교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만의 특징”이라며 “미국은 우리 뿐 아니라 일본, 캐나다, 독일 등 여러 우방국들에게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특별히 한미 동맹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나 트윗 중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있었던 게 한 두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한미관계에 영향이 있다고 보면 안된다”며 “북한에 우호적인 듯한 모습도 판을 깨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오히려 북한을 비난하고 협상이 늦어진다면 우리에게도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려는 것이고 동맹국을 소외시킬 의도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센터장은 “우려되는 발언이 나온 것은 맞지만 결국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우호적 발언을 하는 것이고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는 것이 미국 국내 정치에 유리하기 때문에 압박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8.09 leehs@newspim.com |
◆48억달러 요구에 흔들리면 안돼
2020년 이후 한국이 지불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미국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말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위비 분담금 48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요구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전혀 근거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방위비 분담금 48억달러 요구에 대해 “이 금액을 지금 달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금액을 말한 것 같다”며 “미국 입장에선 분담금 뿐 아니라 분담률도 중요한데 한국은 50% 미만을 내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은 액면상으론 올해 1조 389억원이지만 직간접적으로 내는 돈이 더 많아 분담률이 높다는 주장을 지난번 협상 때도 설명했고 '2018 국방백서'에도 넣었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계산법을 제시한 것으로, 48억달러라는 금액에 우리가 말려드는 순간 엄청난 인상률이 실현될 수 있어 말려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미국은 계속해서 더 많이 달라고 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가 없고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며 경제 여력에 맞춰 신중하게 결정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문 센터장은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은 결국 동맹을 유지하자는 것인데, 이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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