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밥주기' 고사의례 치르자 경자년 첫 해 '불끈'...풍어 대박 예고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자년(庚子年) '하얀 쥐의 해'를 밝히는 붉은 해가 떠오르기 직전인 1일 오전 7시. 미명에 싸인 경북 울진군 죽변항 위판장이 바다를 생명줄로 희망을 일궈 온 어민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경자년 새 해 풍어를 기원하고, 어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초매식(初賣式)'을 치루기위해서다.
[울진= 뉴스핌] 남효선 기자 = 1일 오전 7시, 경북 울진 죽변수산업협동조합이 죽변항 수협위판장에서 '초매식'을 치루며 풍어와 어민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2020.01.01 nulcheon@newspim.com |
초매식은 어민들의 집합체인 죽변수협이 중매인협회와 함께 치루는 유통의례이다.
죽변항을 무대로 치열한 삶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죽변수렵 위판장에 잘생긴 돼지머리와 싱싱한 어물로 고사상이 차려졌다.
2020년 첫 날 경자년 '하얀 쥐'가 선사하는 붉은 장엄을 가슴에 담기위해 울진 등 동해연안을 찾은 인파는 줄잡아 200여만명.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인 울진 죽변항에는 새해 붉은 기상을 가슴에 담고 잘생긴 '울진대게' 맛을 보기 위해 경향각지에서 달려 온 해돋이 겨울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새벽 7시. 검푸른 바다가 여명으로 열리자 어민들이 초매식에 참석하기 위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모여들었다. 모두들 죽변항을 무대로 삶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온 어민들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1일 오전 7시, 경북 울진 죽변항의 죽변수협 위판장에서 진행된 초매식에서 조학형 수협장이 초헌례를 치르고 있다. 2020.1.1.nulcheon@newspim.com |
◆ 초매식은 풍어와 안전조업을 기원하는 '유통의례'
초매식은 의미 그대로 '그 해 첫날에 잡은 고기를 처음 공개위판(경매)에 붙이는 의식'이다.
죽변항을 관장하고 죽변항을 생명의 터전으로 삶을 일궈 온 어민들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산물 유통의례'인 셈이다.
동해 연안 죽변 지방에는 풍어를 기원하는 의례가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동해안 별신굿과 영등제, 뱃고사, 초매식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별신굿과 영등은 죽변 지방을 비롯한 동해연안의 대표적 민속이자 해사(海事, 바다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풍어제의(豊漁祭儀)이다.
별신굿은 전문연희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집단제의인 까닭에 이는 축제 양식으로 펼쳐진다. 이들 제의의 주체는 어민들이다.
제의의 양상은 지역별로 조금씩 상이하나 별신제의 경우 무격(巫覡)에 의해 주도되는 오신(娛神) 굿의 형태를 띠고 전개된다.
바다를 관장한다고 여기는 '바다의 신'인 용을 즐겁게 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어민들의 소망이 담긴 엄숙한 제의이자 축제이다.
별신과 영등, 뱃고사가 1차적 생산담당자인 어민들이 주도하는 것이라면 초매식은 '관 주도 의례'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초매식은 수산물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수협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매인'들이 주도적으로 치르는 '수산물 유통의례'이다.
물론 한 해의 풍어와 안전조업을 기원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1일 오전 7시, 조학형 경북 울진 죽변수협장이 직원들과 함께 '초매식'의 마지마 절차인 '용왕밥주기' 고사의례를 치루고 있다. 2020.01.01 nulcheon@newspim.com |
초매식은 죽변수협 조학형 조합장의 초헌(初獻)으로 시작됐다. 초매식의 절차는 유교제의와 민간제의가 섞여 있는 형태다.
초헌, 아헌, 종헌이 선정되고 상차림 또한 유교식 진설에 따른다는 점에서 다분히 유교제의에 가까우며, 상 위에 돼지머리가 오른다는 점에서는 다분히 무속적이다.
수협직원과, 중매인들과, 선주들과, 울진군청 수산과 직원, 어민들이 차례로 재배를 하며 풍어와 어민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수협 직원들이 고사상에 차려진 제물(祭物)을 한지에 싸서 죽변 앞바다에 던지는 '고사의례'로 마무리된다.
이어 '초매식'의 하일라이트인 첫 위판식이 펼쳐진다.
1일 오전 7시, 경북 울진 죽변항의 죽변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초매식'의 하일라이트인 첫 공개위판 모습.[사진=남효선 기자] |
◆ 초매식 잘 치러야 "바다 풍년 든다"고 인식
초매식 첫 경매가 순조로워야 풍어가 든다고 어부들은 믿는다.
이 날 초매식 첫 경매에는 울진대게와 문어, 오징어, 대구가 올랐다. 모두 죽변항을 살찌우고 어부들의 생계를 꾸려주는 주요 어종들이다.
초매식 의례가 끝나자 조학형 수협장이 초매식의 하이라이트인 첫 경매를 알리는 종을 세 번 쳤다.
중매인들이 앞 다투어 경매장 앞으로 달려왔다.
초매식 첫 경매에서 대구는 30만원에, 울진대게는 20만원, 오징어 20만원, 문어 2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울진대게' 다섯 마리가 20만원에 낙찰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날 초매식 경매에서 대구, 대게, 오징어가 고가로 낙찰되자 어부들은 올해도 대풍이 들것이라는 기대로 한껏 기분이 고조되는 표정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1일 오전 7시, 경북 울진 죽변항의 죽변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초매식'에서 오성규 울진군청 해양수산과장이 첫 위판을 주도하고 있다. 2020.01.01 nulcheon@newspim.com |
오전 7시 40분. 초매식 의례가 '첫 경매' 의식을 마무리하고 조학형 수협장과 중매인, 수협직원들이 바다의 신이자 해사를 관장하는 것으로 믿는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는 '용왕밥주기' 의례를 치루는 순간, 풍어를 예고하듯 경자년 첫 해가 죽변항을 박차고 떠올랐다.
죽변항을 지키는 어민들의 그물을 당기는 힘찬 팔뚝 위로, 어민들의 가슴을 데우는 화톳불 위로 경자년 붉은 장엄이 만선의 꿈을 꾸며 출항을 서두르는 죽변항 대게 자망어선 위로 여명을 밀며 둥실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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