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미국 거대기업 아마존이 투자나 거래를 명목으로 스타트업의 제품 데이터에 접근한 후 유사한 경쟁 제품을 출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아마존과 거래했던 스타트업 창업가 및 투자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며 아마존의 기술 베끼기 관행을 이같이 폭로했다.
아마존은 투자를 해 놓고도 경쟁 제품을 출시해 투자한 업체를 무너뜨리거나, 투자 약속을 하며 스타트업의 기술 정보를 빼간 후 약속을 번복하고 경쟁 제품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아마존 상자.[사진=로이터 뉴스핌] |
데이터 관리서비스 업체 디파인드크라우드의 창립자 다니엘라 브라가는 아마존의 벤처캐피털이 자사에 투자하면서 재정 및 기밀 정보에 접근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마존의 클라우드컴퓨팅 부문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디파인드크라우드가 개발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인공지능(AI) 제품을 출시했다.
브라가는 "AWS가 출시한 'A21'이라는 데이터 수집 및 분류 서비스 제품은 우리 주력 상품과 정통으로 경쟁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A21 출시를 지켜본 후 아마존 펀드가 자사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고 증자에 나서 아마존이 보유한 자사 지분을 90% 줄였다.
홈비디오 커뮤니케이션 기기를 개발한 '뉴클리어스'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아마존은 알렉사 펀드를 통해 2016년 뉴클리어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뉴클리어스 측은 아마존이 경쟁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에 협업을 꺼렸으나 아마존 측은 알렉사 펀드와 아마존 사이에는 방화벽이 있다며 절대 경쟁 제품을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거래가 완료되고 알렉사 펀드가 뉴클리어스의 재정 기록과 전략 계획, 특허 정보 등에 접근한 지 8개월 후 아마존은 '에코 쇼'라는 AI 스피커를 출시했다. 뉴클리어스의 제품과 상당 부문에서 유사한 제품이었다.
뉴클리어스 창립자들과 투자자들이 소송을 걸자 아마존 측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500만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아마존과의 거래가 양날의 검이라고 입을 모았다. 클라우드컴퓨팅, 전자기기, 물류 등 여러 산업분야에 진출한 아마존의 규모와 존재감은 분명 사업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노출하면 아마존이라는 거인과의 경쟁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 업체인 베세메르벤처파트너스의 제러미 레빈 파트너는 "아마존은 시장의 힘을 이용해 권모술수를 쓰고 있다"며 "양의 탈을 쓴 늑대 노릇을 한다기보다 노골적으로 늑대의 옷을 입고 포식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스타트업 거래에 관여했던 전직 직원들은 아마존이 지나치게 성장과 경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혁신 야심이 지나치게 강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절대 놓치려 하지 않는다며, 혹여 경쟁사가 아마존이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이더라도 서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드류 하드너 아마존 대변인은 "다른 기업이 공유한 기밀 정보를 경쟁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26년 간 아마존닷컴에서 시작해 킨들, 에코, AWS까지 새로운 사양과 제품, 심지어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해 왔으며 아마존의 혁신 성과와 대적할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불행히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 불평만 늘어놓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다"며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법적 분쟁은 법정에서 정당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응수했다.
규제 당국은 아마존 등 대기업들의 반(反)경쟁 관행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을 포함해 5대 대형 기술 기업들에 2010~2019년 투자 및 인수 관련 세부내용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아마존은 FTC뿐 아니라 의회와 법무부로부터 시장 우월적 지위나 자사 플랫폼을 통한 반경쟁 행위와 관련해 따가운 눈길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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