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오피스'의 홍원찬 감독이 두 번째 상업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선보였다. 절대악의 상정과 구원 서사를 통해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5일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홍원찬 감독은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작을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그렇듯 아쉬움은 있지만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이며 남다른 감회가 더 크게 다가올 듯 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홍원찬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08.05 jyyang@newspim.com |
"모든 감독들이 아쉬운 부분은 보이겠죠. 구상 단계부터 배우들을 통해 캐릭터가 구현되고 비주얼라이징까지 모든 과정이 떠올라요. 어떤 아이디어 하나에서 출발해 많은 노력과 물량과 자본이 투입됐죠. 저는 아직 신인 축에 드는 감독이에요. 정식 상영 전이니 반응이 궁금하고,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죠. 요즘 극장이 어려운 시기예요. 조금 우려되지만 이 기회에 관객이 이국적 배경과 액션을 큰 화면으로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만의 매력에 푹 빠져 기분전환 하시면 좋겠어요."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그간 한국에서 본 적 없던 독특한 느낌의 액션영화다. 뭔가 다른 것을 해보겠다는 각오가 영화는 물론 시나리오 곳곳에 녹아든 덕일까. 운 좋게도 1순위로 책을 준 배우들이 합류했다. 황정민, 이정재는 제작사에서 염두에 둔 최적의 배우들이었고 '운명처럼' 함께하게 됐다.
"'오피스'에 비해 훨씬 더 책임질 게 많은 영화라 부담이 컸죠. 생각보다 두분 캐스팅은 순조로웠어요. 대표님이 두분 얘길 꺼내셨는데 저는 무조건 땡큐였죠. 황정민 선배가 하실까 의구심도 약간 있었는데 일방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의 속도감 같은 걸 재밌게 보신 것 같아요. 이정재 선배도 책 드리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그 자체가 관심으로 느껴졌어요. 각자 매력을 느끼셨는지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힘이 됐죠. 박정민 씨는 제가 먼저 얘기해서 책을 줬어요. 막연하게 한편 더 같이하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주 잘해줘서 만족해요. 알아서 잘 해올 것 같았고, 오버하지 않고 어려운 역을 잘 잡아왔더라고요."
영화가 시작되고 빌런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칼잡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묘한 분위기나 신들의 배치가 영화 '킬빌'이나 '테이큰'을 떠올리게도 한다.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대사를 차용한 것 역시 감독이 깊게 영향을 받은 장르 영화의 특징을 의도적으로 넣은 듯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홍원찬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08.05 jyyang@newspim.com |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죠. '킬빌'은 영화 공부를 한 시기, 또 특정 시기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예요. 그런 영화들이 몇 편 있죠. 대부분 남자 감독들은 누아르 정서에 선망을 갖고 있고, 해보고 싶어해요. 어떤 장면을 모티브로 삼았다기보다 그런 정서,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죠. '드라이브'가 '사무라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마찬가지예요. 제 영화적 베이스를 잡아가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죠.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나온다는 것부터요. 목적은 돈이라지만 인물의 모호함이 가장 공포감을 주죠. '왜 이렇게까지 죽이려고 해?' '형과는 어떤 관계였지?'를 설명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게 레이를 더 무섭게 하죠. 쫓아다니다가 안잡히니까 쫓는 것만이 목적이 된 사람이죠."
홍 감독이 잠시 언급했듯, 영화 속 인물들의 전사는 거의 생략돼있다. 이미 '절대악'을 띠게 된 인물들의 속사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스피디한 전개에 빠져드는 경험은 낯설 수 있다. 감독은 모호한 설정을 고수한 이유와 제목에 함축된 의미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속도감을 주는 건 사실이죠. 전체적인 템포감을 주고 휘몰아치는 액션으로 넘어가면서 사연들을 많이 생략했어요. 제목에 주제가 약간 함축돼 있는데 악은 어떤 특정 대상이라기보다 비정한 세계관 자체예요. 인남, 레이, 유이 다 구체성이 없죠. 불분명해요. 각자가 어디론가 내몰린 이방인들이죠. 이들이 처한 비정한 세상, 세계가 이 영화의 핵심이고 그 안에서도 구원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을 그리고자 했죠. 그래서 해피엔딩을 보여줄 수 없었어요. 원죄를 가진 인물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복을 추구하는 건 이율배반적이에요. 남은 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겠구나, 여지만 남기려 했어요. 희망은 거기까지예요. 그 이후는 관객들의 몫이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홍원찬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20.08.05 jyyang@newspim.com |
'절대악'이라 불릴 만큼 잔인한 킬러들이 등장하지만 의외로 수위조절에 세심히 신경썼다는 느낌이다. 홍 감독은 예전 영화 같았으면 불필요할만치 반복됐을 끔찍한 장면들은 일부러 잘라냈다. 그는 "아예 자극적인 장면들은 찍지 않았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애초에 15세 관람가로 설정했어요. 제 성향이 찌르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고 하드, 고어한 걸 잘 보지도 못해요. 어두운 세계의 이야기라 칼부림과 액션이 나오지만 신체를 훼손하고 살인을 전시하는 건 최대한 덜려 했죠. 어둡고 묵직하지만 10대도 다같이 볼 수 있길 바랐고요. 막상 찍고 나서도 의도보다 더 세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었어요. 상황은 인지시키되 일부러 묘사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도 18세 등급이 나와서 당황했으니까요. 어떤 한 장면을 들어낸다고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자극적인 부분을 스무스하게 넘어가게끔 손 봤어요. 영화가 리얼베이스 톤이라 그런 것 같아요."
나름대로 문제의식을 곳곳에 심어놓더라도 누아르적 설정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누군가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킬러들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젓기도 한다. 과연 이 영화에 현실에서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게끔, 보편성을 갖는 지점이 있을까.
"어떤 사회성이나 시대성을 담는 얘기를 당연히 할 수 있죠. '오피스' 때는 목적이 명확했어요. 이 스릴러 안에 사회적 이슈를 좀 담아보자. 사회드라마의 성격도 다분했고요. 주인공이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인턴 여직원이고, 문제의식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포맷이었어요. 이번엔 영화적인 재미를 극대화했다고 보시면 돼요. 영화매체만이 갖는 특징이죠. 장르성을 깊게 파고드는 영화를 하려했고, 영화마다 목적성이 다르니까요. 예술적인 성취만을 추구하는 영화도 있고, 장르적인 재미도 당연히 그 범주 중 하나라고 봐요. 영화라는 맥락 안에서 누아르의 장르성을 최대한 관객들이 맘껏 즐길 수 있길 바랐어요. 힘든 시기에, 보는 동안만은 흠뻑 빠져서 묘한 분위기 속의 속도감과 감정 해소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