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건강'이 주요 키워드 되자 '비건' 새로운 트렌드로
비건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포섭할 '비건라면' 잇따라 출시
[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소수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지는 시대가 왔다. 한 때 소수였던 흐름이 이제는 '트렌드'로 자리 잡기도 한다. 다름 아닌 '비건' 얘기다.
비건은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고기, 우유, 달걀 등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비건은 과일과 곡식 그리고 채소류만을 섭취한다.
극도로 제한된 선택지 때문에 비건은 단지 소수가 영위하는 '특이한' 문화쯤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한국은 외식 메뉴 대부분이 '육류'다. 비건에게 외식 혹은 인스턴트 음식 등은 한마디로 '불가능'의 영역이던 것이다.
그런데 단 몇 년 사이에 비건이 신흥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이 온 국민의 화두가 되면서다. 건강뿐 아니라 환경보전을 통한 '지속가능성'이 차세대 핵심 가치가 되면서 사람들이 '비건식'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이제는 비건들도 찬장에 라면을 쟁여두고 언제든 부담 없이 꺼내먹을 수 있는 '다양성'의 시대가 열렸다.
[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비건라면 종류. 2021.04.09 jellyfish@newspim.com |
현재 대표적인 비건 라면은 2000년대 초반 농심이 최초로 출시한 '야채라면'과 삼양식품의 맛있는 '비건' 라면 그리고 풀무원의 '정'라면 등이 있다.
각사 라면 봉지에는 비건 음식답게 각종 채소 등이 가득가득 그려진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소비자들은 비건식이 건강할지는 몰라도 맛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실제로 하 씨(28세)는 다이어트를 할 당시 라면 대용으로 먹었던 각종 '건면' 맛을 회상하며 "칼로리가 낮은 음식은 맛있을 수 없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건면은 튀기지 않은 생면을 그대로 굳힌 음식이기 때문에 일반 라면보다 약 150kcal 가량 낮은 편이다.
실제로 비건 라면은 칼로리가 낮다. 삼양식품의 열량은 355kcal이고 풀무원 정라면은 385kcal이다. 과연 '저칼로리 식품은 맛이 없다'는 선입견대로 비건 라면은 맛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물론 국물에 고기가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풍미'는 부족했다. 통상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신라면과 진라면 등에는 '고기'가 들어있다. 신라면 성분만 보더라도 스프에 소고기와 돼지고기, 계란 등이 함유 돼 있다.
비건라면은 고기의 풍미 대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있었다. 특히 깔끔함에서도 각 회사별 차이점이 있었다.
우선 농심의 '야채라면'은 이름처럼 '채소향'이 물씬 느껴진 제품이다. 국물 맛은 처음 입에 대자마자 감칠맛이 감돌았다. 그 안에서 농심라면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표고버섯' 향이 끝에 치고 나와 나름대로의 풍미를 더했다. 면은 건면이었는데 그 탓에 라면보다는 오히려 국수를 먹는 느낌이었지만, 다 먹은 후에도 붇는 느낌 없이 속이 편안했다,
다음은 지난해 8월에 출시된 풀무원의 야심작 '정'면이다. 농심 야채라면은 총 7가지 채소를 우려냈다면, 정라면은 총 12가지 채소를 로스팅한 제품이다. 또 채수에 콩을 넣어 나름대로 고기 맛을 구현해낸 제품이다.
함유된 제품이 많아서인지 세 가지 라면 중에서 칼로리도 385kcal로 가장 높았는데, 가장 일반적인 '라면'에 근접한 제품이었다. 먹자마자 짭짤한 라면 국물이 시원하게 넘어갔다. 특히 건더기에 편마늘이 있었는데, 국물을 넘기면서 이따금 씹히는 알싸하면서도 단맛이 중독성 있었다.
마지막은 가장 최근에 나온 삼양식품의 맛있는 비건 라면이다. 이 라면의 핵심은 '청양고추'였다. 다른 두 제품에서는 표고버섯 향이 느껴져서 주류 라면과 비슷한 맛을 냈다면 삼양의 맛있는 비건라면은 청양고추의 칼칼함이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면에 감자전분이 20.4% 함유돼 라면이 특히나 쫄깃했던 제품이었다.
중요한 것은 세 제품 모두 비건이 아닌 기자가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다는 점이다.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제품은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일례로 풀무원의 정라면은 출시 4개월 만에 200만 봉지가 넘게 팔렸다.
다만 세 제품 모두 접근성은 떨어졌다. 당장 집 주변 편의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형 할인마트에서도 구매할 수 없었다. 때문에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량주문이 아닌 이상 배송비 2500원을 내야 했다.
결국 라면 세 묶음을 사는데 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 했다. 당장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천원 미만으로 사먹을 수 있는 라면과 다르게 번거로웠다.
현재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15만 명에서 10배가 늘어난 수치다. 물론 국내 전체 인구수 대비 150만 명은 적은 수다.
그러나 비건 라면이 비건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하면서도 라면을 섭취하고자 하는 다수를 겨냥하는 만큼 접근성은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적' 식품이 될 때 '비건'이라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 역시 모두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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