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반대한 반도체, 이병철·건희 부자는 달랐다
과감한 결단 '반도체 불모지'에서 10년 만에 세계 1위로
메모리 넘어 시스템반도체까지 동시 석권 노린다
[편집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산업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에게는 분명한 위기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펼쳐진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어려울 때마다 기적을 일으켜왔습니다. 영토는 좁고 자원은 빈약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가 되겠다는 기업들의 열정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기회의 문 앞에 선 우리 기업들. 매주 일요일마다 기업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1등 DNA' 사례를 연재하며 이들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합니다.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습니까".
1983년 이병철 회장의 이른바 '도쿄선언'으로 삼성전자는 본격적으로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다.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반도체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업체들이 점령하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걱정이 컸다.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한 차례 실패를 맛본 뒤였다. 하지만 반도체가 21세기를 개척할 '산업의 쌀'이 될 것이라 본 이병철 회장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후발주자 서러움 딛고 6개월 만에 '64K D램' 개발
삼성은 1983년 당시 이윤우 반도체연구소장 등을 미국 마이크론에 연수 보낸다. 곁눈질로 D램의 설계와 제조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이들은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펴놓고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다. 벽엔 '한반도는 반도체다', '하루 일찍 개발하면 13억원 번다'는 문구가 붙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손톱만한 칩 속에 8000자를 기억할 수 있는 고밀도 반도체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다.
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했다. [제공=삼성전자] |
삼성은 선진국과 비교해서 10년 이상 차이가 나던 국내 반도체 기술수준을 3~4년으로 크게 단축시켰고, 선진국이 20년의 시간을 소비했던 개발과정(4K, 16K, 32K)을 3단계나 뛰어넘는 도약을 이뤘다. 이 소식이 외신을 통해 각국에 알려지면서 2,3년 전부터 64K D램을 생산해 판매해 오던 미국과 일본은 물론 개발의 어려움 때문에 D램 사업을 망설이고 있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도 일제히 경악할 만큼 파문이 일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삼성의 성공을 반기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64K D램의 가격을 낮추며 삼성의 시장 진입을 견제했다. 삼성은 수출 첫 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해 1300억원의 적자가 나자 직원들도 "지금이라도 포기해야 한다"며 사업 철수를 권했다.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돈이 보인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과의 기술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집념이 어느 때 보다 강했다.
◆반도체 진출 10년만에 세계 1위 석권
당시 삼성의 연구팀장이었던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소개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87년 일간지에 "우리나라 반도체가 일본 반도체를 베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병철 회장은 곧장 수원 반도체 공장으로 달려가 불호령을 내렸다. "기껏 남의 거 베끼라고 평생을 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줄 아나? 영국은 증기기관 하나를 개발해서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 반도체도 그런 역할 하라고 시작한 거 아이가?"
진 대표는 "반드시 16MD램을 독자 개발해서 다시는 모방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이병철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 평택공장 전경 [제공=삼성전자] |
이병철 회장이 떠난 후 1989년 D램이 4MB로 넘어가자 D램의 저장소가 형태 문제가 부상했다. 당시 저장소와 트랜지스터를 웨이퍼에 평면으로 늘어놓는 일반적인 형식에서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방안을 구상해야 했다. 여기서 세상을 바꾼 삼성의 결단이 나온다.
IBM, 도시바, NEC 등이 집적회로를 웨이퍼를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형을 선택한 반면, 삼성은 웨이퍼에 쌓아 올리는 스택형을 선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기 시작한 삼성은 1992년 64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 대비 배가 넘는 삼성의 공격적인 투자는 삼성이 단기간 내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원동력으로 꼽힌다. 삼성은 1991년 4500억원, 1992년 8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드디어 1992년 시장 점유율 13.5%로 12.8%의에 그친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오른다. '도쿄선언' 10년만이다. 1994년에는 256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 확실한 기술 우위를 입증했다. 이후 현재까지 삼성은 한 번도 D램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지독한 품질경영 시작
여기서 그쳤다면 지금의 삼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 D램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지 1년.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핵심 경영진 200여명을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 선언'을 한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이후 삼성은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독한 품질경영에 들어간다. 삼성은 당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진행하며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삼성전자 6세대 V낸드 SSD [제공=삼성전자] |
2002년 삼성전자는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에서도 세계 1위로 도약한다. 삼성은 2001년 당시 낸드플래시 업계 1위인 일본업체로부터 사업제휴를 제안받지만, 독자사업화의 길을 택했다. 삼성은 D램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을 활용해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거래선 개척을 통해 2002년 플래시 메모리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독자노선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MP3, 디지털카메라, USB메모리 등 활용범위가 넓고 확장성이 큰 플래시 메모리가 모바일 시대의 핵심제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2002년 1위 등극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1위 자리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낸드플래시 기반의 차세대 저장장치인 SSD시장에서도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메모리 넘어 시스템반도체까지, '초격차'는 계속
삼성전자는 이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한정된 세계 1위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비메모리 분야, 시스템 반도체까지 세계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다. 여기에 지난 5월 투자금을 38조원 늘린 '반도체 비전 2030'의 추가 계획을 내놓는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미국에 170억 달러, 우리돈으로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월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제공=삼성전자] |
삼성이 발표한 일련의 투자 계획은 모두 첨단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과 생산라인 건설에 쓰인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보다 더 큰 데다,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5G 기술의 개발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지금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유례없는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각 국은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삼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한국이 줄곧 선두를 지켜온 메모리 분야에서도 추격이 거세다"며 "수성에 힘쓰기 보다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벌리기 위해 삼성이 선제적 투자에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