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위한 결정 아니다" 강조했지만 대립 불가피
타협 없다는 인식 여전…"산업 마비시키고 말이 되냐"
계엄령으로 규정한 화물연대도 투쟁 지속 예고
ILO 긴급개입 요청…명령 송달현장 충돌 우려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파업)에 대응해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노정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결정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물류망 차질로 국가경제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어 화물연대의 업무 복귀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화물연대의 명분 없는 일방적인 파업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게 정부 의지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오히려 정부가 소통 없이 강경 탄압의 명분을 쌓아왔다고 주장한다. 업무개시명령은 강제 노동인 데다 파업권을 제약한다고 보고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국제문제로 번지는 가운데 강대강 대치에 이어 철도노조 파업까지 겹치면서 물류대란이 오히려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9일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장관 브리핑에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국토교통부] |
◆ 업무개시명령 사상 첫 발동…"초법적인 행태 끊을 때가 왔다" 강경대응 고수
2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단운송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기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제도화된 이후 사상 처음 발동됐다. 화물자동차법 14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는 집단운송거부로 국가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정부는 그 동안 화물연대와 타협해왔던 방식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정부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화물연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사태를 봉합해 온 결과가 지금에 이른 만큼 정부 권한을 행사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관계장관 브리핑에서 "국회 논의를 박차고 자신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위한 집단적인 힘의 행사를 끊을 때가 왔다"며 "그 동안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안하고 매번 어정쩡하게 타협하고 초법적인 행태를 그때그때 무마했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고 말했다.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 요구에 대해서도 원 장관은 화물연대의 권익이나 처우개선 부분을 넘어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3년 일몰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곤란하다는 정부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는 취지다.
다만 화물차주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업무에 복귀해서 제대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원 장관은 전날 화물연대가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에 참여했다는 주장에 대해 "산업을 마비시켜놓고는 타협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일단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 TF 등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며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처벌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집단 운송 거부 중인 화물연대 소속 시멘트 업계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29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 차량들이 멈춰있다. 업무개시명령을 송달 받은 화물차 기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거나 화물운송 종사자격을 상실할 수 있다. 2022.11.29 hwang@newspim.com |
◆ "화물노동자 대상 계엄령, ILO 긴급개입 요청"…레미콘차 기사와 충돌 우려
반면 화물연대는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화물노동자에게 내려진 계엄령"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업무개시명령 제도 자체가 화물차주들을 탄압하기 위해 도입됐고 실제 단 한 번도 발동된 적 없는 사문화된 법이라는 입장이다. 화물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업무개시명령은 이를 따르지 않으면 운수종사자격을 박탈할 수 있어 차라리 죽으라는 명령"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생계를 볼모로 목줄을 쥐고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며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 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했다. ILO 협약 87호 결사의 자유와 105호 강제노동 금지 위반이라는 취지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현재 파업 영향은 ILO가 규정한 '파업권을 제한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전쟁, 인구 전체 또는 일부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극도로 중대한 상황에 해당하지 않고 운송부문은 파업이 합법적으로 제한될 수 잇는 필수 서비스가 아니다"라며 "대체수송 및 대체인력 투입은 제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 화물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을 광범위한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항만·물류가 마비돼 경제 전반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파업 직후 시멘트 출고량이 90% 이상 감소해 전국 건설공사 현장의 절반은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 전국 주요 항만읜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 대비 20%대로 감소했고 장치율(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비율)도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이날부터 시멘트 분야 운송사업자와 운수종사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해 현장에서 운송개시명령을 송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현장조사권을 발동해 운수사 209곳, 운수종사자 2500여명을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순차적으로 내리게 된다. 이에 따라 당장 레미콘화물차를 운송하는 기사들과 국토부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충돌할 우려도 나온다.
원 장관은 "일감을 주는 지입회사와 번호판만 관리하는 용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일감과 번호판을 함께 관리하는 운수사들은 오늘 오후 대부분 명령서가 전달될 예정"이라며 "명령서를 전달받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경우 형사처벌에 가중처벌할 방침이다. 화물운송의 정상적인 회복을 원하는 종사자들과 함께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는 계기로 삼겠다"고"말했다.
unsa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