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의로 자신 해친 경우 해당, 지급의무 없다"
"의사결정능력 상실 상태인지 심리해야"…파기환송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에게 보험사들이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의 어머니 B씨가 보험사 두 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2016년 12월 군에 입대한 A씨는 소속 부대에 배치된 이후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모욕과 폭행, 따돌림을 당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8월 부대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보험사들을 상대로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들이 보험계약 약관상 면책사유를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각 보험계약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쳐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1심은 "망인의 사망은 이 사건 각 보험계약에 편입된 약관에서 정한 면책사유인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망인이 군대라는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동료들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이로 인해 우울증을 앓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망인의 사망 당시 행위를 전반적으로 지배할 정도에 이르는 직접적 원인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소심도 A씨가 평소 환청·환시·망상 등 의사결정능력에 의심을 가질만한 증상이 없었던 점, 사망 전까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재한 진술서를 작성한 점,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방법은 극도의 흥분상태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사망 당시 심리적 우울상태를 넘어 자유로운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망인이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인해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른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은 A씨가 사망 직전 극심한 우울 및 불안 증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취지의 원심 병원 진료기록감정촉탁 및 사실조회 결과와 육군이 A씨를 '순직Ⅲ형'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사정을 들었다. 순직Ⅲ형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가혹행위 또는 업무과중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자해행위로 사망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면서 "원심으로서는 진료기록감정촉탁 및 사실조회 결과 등을 바탕으로 망인이 우울증의 원인을 회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등을 심리해 망인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