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화 이전에 근무 시간 자체 대폭 줄여야"
전문가 "중소 사업장 방지책·지원책도 마련돼야 현실성 있어"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우리나라는 이미 과로 근무 사회다. 주 69시간을 일하는 근로자 건강에 대한 보호 방안이라도 마련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지난 3월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월, 분기, 연 단위 등으로 유연화하는 내용의 근로 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바짝 일하고 바짝 쉬자'는 취지였지만, 주 최대 근무 가능 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나는 데 대한 반발이 나오는 등 역풍을 맞았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완 검토를 지시했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국민 6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한 뒤 오는 13일 설문 결과와 함께 근로 시간 개편 방향에 대해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국민 의견 발표 및 제안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8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대다수 직장인들은 주 69시간제를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취지로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 4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유연화 이전에 근무 시간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원 A씨(29)는 "이미 우리나라는 과로 근무 사회"라며 "매년 500명의 근로자가 격무에 시달리다 사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연근무가 필요한 업종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정부안에 근로자 건강에 대한 보호 방안은 제대로 마련됐는지 모르겠다"며 "근무 시간이 바뀐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인데, 정부와 업계가 국민을 단순히 소모품 취급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날 발표된 노동계의 여론조사 결과도 A씨 의견과 같았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30∼31일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전국 18∼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정부가 주 최대 근로 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 시간 개편안을 다시 추진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3명 중 2명인 66%가 '반대'했다. '찬성'은 29.6%에 그쳤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 노동시간 확대가 향후 노동자 일·생활 균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 47.4%, 약간 부정적 13.1%로 부정적 응답이 60.5%에 달했다. '근로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반대'라는 것이 여론으로 명확히 드러난 상황이다.
오후 서울 종로구 일대 직장인 모습. [사진=뉴스핌DB] |
전문가들 또한 '근로 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대기업 외 중소기업이나 열악한 사업장에서는 '주 69시간제'가 공짜야근을 시키는 등 악용 소지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정책 손질뿐만 아니라 기업 지원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악용되거나 편법으로 활용될 부분들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가 관건"이라며 "중소기업이나 열악한 사업장에 대한 방지책이나 지원책 등이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위원은 또 "인구구조도 바뀌고 있고 일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주장하는 '근무시간 대폭 감소'와 궤를 함께하는 주장이다.
그는 "과거에는 저임금 오버타임이 지속되어 왔지만 이미 그 시기는 지났고 소정 근로시간은 점차 줄이는 방식이 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정근로시간 자체는 적게 책정하면서도 유연 근무화와 그에 따른 보상을 확실히 보장받게 하는 정책 등 미래 지향적인 방식을 마련해야 될 것"이라며 "이번 기회 그걸 바꾸자고 하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mky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