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리스크로 국내 반도체 출혈 우려도
日, 반도체 부활 위해 보조금 투자 지속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수요에 힘입어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지만 이들을 둘러싼 불확실성 요인은 여전하다. 지속되는 미국·중국 간 리스크에 더해 일본 반도체 기업의 부상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 美·中 사이에 낀 韓 반도체…보조금 받지만 독소조항 감내해야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역대 최대 보조금을 자국 반도체 업체인 인텔에 지급하는 등 자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사진=뉴스핌 황준선 기자] |
미국은 인텔에 이어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에도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예고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2조65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서부 웨스트 라피엣에 40억 달러(약 5조3000억원)를 투자해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정책에 따른 국내 기업의 출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60억달러(약 8조원)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이를 얻는 대신 미국이 제시한 독소 조항을 감내해야 한다. 초과이익을 달성하면 미 정부에 보조금에서 최대 75%까지 공유해야 하며, 생산 장비와 원료명 등도 기재해야 한다. 중국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기술 이전을 할 수도 없다.
◆ 제2의 전성기 꿈꾸는 日 반도체…TSMC에 막대한 보조금 투입
지난 1980년대까지 반도체 왕국으로 군림해 온 일본도 제2의 부활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도 불확실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금명간 라피더스 추가 지원책을 발표한다. 경제산업성이 지금까지 밝힌 보조금만 3300억엔에 이른다. 이번에 추가 지원하는 5900억엔을 합치면 총 1조엔에 가까운 규모가 된다. 도요타자동차, NTT 등이 출자한 라피더스는 2020년대 후반 2nm급 차세대 반도체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최근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 1공장이 일본에 문을 열자 TSMC에 설비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4760억 엔(약 4조2000억원)을 지원할 것으로 전해진다. 또 TSMC가 오는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지을 예정인 제2공장에도 약 7300억엔(약 6조5000억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공장에만 10조 원이 넘는 일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이른바 세계 주요국의 '칩워(Chip War)'가 격화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 기업도 국내 우선주의에 기반한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은 "핵심적인 선도 기술은 가급적 우리나라에서 먼저 상용을 시작하는 등 국내 시장이 먼저 기술을 내재화하는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며 "해외시장이 중요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한 뒤 해외로 수출하는 흐름을 통해 대외적인 인지도가 올라가는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원장은 "K-칩스법 등 정부가 국내 반도체 시장을 위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현재의 세액공제로는 약하다"며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정부처럼 세액공제뿐만 아니라 보조금 등 다른 측면의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