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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공직을 꿈꾼 이종배…학창시절부터 키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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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 4선 중진 이종배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전 삶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2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모범생' 이종배의 학창시절 꿈과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리더'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1957년생으로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거쳤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충주시장, 행정안전부 2차관, 음성군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2대 총선에서 충주시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이종배 국회의원.[사진=뉴스핌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송기욱 기자. 이하 송)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종배 의원. 이하 이)22대 총선이 끝나서 원구성이 됐고 상임위도 배정이 됐습니다. 이제 정기국회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상임위에서 활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법안소위도 하고 전체회의도 하고 또 이제 결산해야지 될 때고요. 또 정기국회 앞두고 우리 당 워크숍 같은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준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정부 질문에 정기국회에서 참여하려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쁩니다.

-(송)본격적으로 지금 질문 이어가 볼게요. 충주에서 태어나셔서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거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적 의원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산골짜기 입니다. 길 끝에 있는, 길이 가다가 더 이상 못 가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고 충주에서 중학교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대학은 서울.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충주에서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자였습니다. 7남매 되는데 그중에서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어가니까 7남매 중에서 한 명은 공무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키워주셨어요. '공직자다. 넌 나중에 대통령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다른 분들이 와서 네 꿈이 뭐냐 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대통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컸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학교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이)에피소드도 많겠죠.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육자시니까 학교 부근에 사셔서 따라서 학교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살고 학교 운동장에서 살고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재미있게들 많이 운동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렇게 지냈고요.
중학교 때는 제가 충주중학교를 통학했습니다. 기차로 통학을 했는데요. 기차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 1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 또 역 앞에서는 제가 자전거 타고 다니고 깜깜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서 어떤 분이 이 나무를 긴 나무를 지고 오는 걸 몰라서 그 나무가 제 이마를 쳐서 졸도를 해서 그 이튿날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최)그때는 가로등도 없었을 거고요. 칠흑같이 어두웠을 텐데

▲(이)고등학교 때는 제가 하숙을 했는데요. 하숙비가 이 쌀 일곱 말입니다. 집에서 그 쌀을 지고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송)쌀 일곱 말이면 요즘 이제 기준으로 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요즘 요즘 기준으로 한 15만 원 정도 되죠. 식사까지 다 제공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지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송)그렇네요. 이제 식사까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 대학생들 자취하는 비용이 월 40~50만원 정도 하니까 이제 그건 식사 제외하고서도 이렇게 하니까 저렴한 편이네요.

▲(이)그거 따지면 저렴하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받는 것도 현금 없으면 이 쌀로 갖고 오라고 해서 쌀로 갖다 주기도 하고 오셨으니까.

-(송)이제 저희는 이제 보통 이제 자취라는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시기가 대학교육 이후에 하다 보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당시에는 좀 이렇게 하숙이나 자취를 좀 많이 하면서 통학을 좀 많이 했었나요?

▲(이)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까 통학보다 자취, 하숙 그런 걸 많이 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자취하시는 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주에 자취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서 누나가 와서 밥을 해준다든지 뭐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송)상상하면 약간 아름다운 그림들인데요. 가족이 가족 챙겨주는 그런 모습.

▲(이)그렇긴 한데 이제 누나의 또 삶은 별로죠. 요즘 같으면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죠.

-(송)공부를 잘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목표들이 다 있잖아요. 반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 다들 꿈꾸고 하는데 혹시 의원님 학창 시절 최고 성적은 어느 정도셨는지 궁금해요.

▲(이)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했어요. 상위 1, 2등 또는 전체에서 한 5등 안에 저희들이 현재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400~500명 되거든요. 한 학년이 그때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 벽에다가 쭉 붙여놔요. 1등서부터 꼴찌까지 쭉 붙여놓습니다.

-(송)대학생으로 넘어가 보면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셨잖아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대학을 입학할 때도 제가 행정학과를 가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공무원 꿈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 행정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대 행정학과가 좀 제 실력으로는 좀 어려워서 우리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그래도 다음 두 번째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인데 이제 법대 안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대법대면 괜찮다. 사회적으로도 명망도 있고 괜찮다고 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제 꿈이 계속 이어진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의 어려운 사정도 제가 잘 살펴주기도 하고 잘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또 공부 잘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좀 잘못하는 학생이 가르쳐달라고 그러면 제가 잘 가르쳐 주고 집에도 놀러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그냥 그대로 지냈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과목 들어갈 때는 과대표도 하고 그랬습니다. 과대표하다 보니까 그때 1975년도 그때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긴급 조치가 떨어지고 막 그랬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 안에 탱크가 들어오고 그랬는데 제가 과대표를 하다 보니까 항상 앞장서서 뛰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북경찰서까지도 끌려다녔고 저는 뭐 재판까지 받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앞장서 봤기도 했고 그러다가 제가 제 정체성을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 와서 철학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다시 복학해서 그때서부터는 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만에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송)2년이라는 기간은 남들보다 빨리 합격하신 그런 걸까요?

▲(이)네 그냥 중상 정도 그렇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대에 가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장교로 가는 게 좋겠다 소대장을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지망을 해서 가서 전방에 가서 소대장 까지 훈련 기간만 합쳐서 한 39개월,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기간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합니다.

-(송)혹시 군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이)홍천 11사단 홍천 훈련 많은 곳으로 유명하죠. 1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송)혹시 군생활 에피소드는 좀 있으신가요? 이제 다들 남자라면 이제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있잖아요.

▲(이)군대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것들이 숫자를 보고 문자로 바꾸고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이런 음어거든요. 대표를 지냈기도 했고 저희가 이제 조금 영어를 한다고 해서 미군하고 같이 합동으로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미군들하고 아주 한 1~2개월 동안 지냈던 것이 뜻깊다 생각하고요. 요즘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그런 사병들 또는 다른 부대에 있던 장교들하고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송)벌써 알겠는 게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교 생활하실 때도 그렇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고 리더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그래서 제가 행정고시 합격하고 어느 부처를 갈 것인가 자기가 희망을 하거든요.희망을 할 때 제가 내무부로 가서 군수시장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내무부를 지망했습니다.그 당시에 제일 커트라인이랄까 경쟁이 센 데가 이제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좀 셌고, 내무부도 센 편이었습니다. 군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의 소망이었거든요. 합격생들보다 이제 부모님이 와서 고향에 와서 군수 한번 하라 이런 걸 자꾸 요구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행히 돼서 저는 그 젊은 나이에 충북 음성군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그때가 몇 살 때십니까?

▲(이)그때가 39살입니다.

-(최)그럼 39살에 이제 군수로 가셨을 텐데 그러면 나이 훨씬 더 많으신 분들이 말하자면 이제 같이 일하시는 분일 텐데 어떻게 융합을 하셨어요?

▲(이)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지만 리더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되거든요. 또 리더는 갑이 아니고 을이라 생각하고 대신 리더는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줘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그렇게 제가 잘 모시면서 지냈고 또 기관장, 단체장들 이런 분들하고 소통을 잘해서 수시로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그분들은 그 당시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어린 저를 항상 상석에 앉으라고 그러면서 군수가 아니고 성주라고 이렇게 불러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예우를 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낮은 자세로 그분들을 모시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제가 음성군수 한 것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충주시에서 국회의원 하는데도 충주시 내에 음성 출신이 상당히 있습니다. 한 1~2만 정도는 되는 거로 제가 생각되는데 그 분들이 우리 음성군수 하셨던 분이고 또 고향에 누구한테 얘기 들으니까 음성군수할 때 잘해주셨다고 그러면서 저를 지지를 많이 해주신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의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릴 때부터 이제 공부를 잘하셨고 또 아버님께서도 이제 교육계에 계셨고 자연스럽게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도서관이 옆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이런 꿈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릴 때부터 쭉 지금까지 이제 정치인, 행정인, 그리고 이제 정치인의 삶을 살아오시는 동안에 이끌어주셨던 멘토를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주위에서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저를 만들어주신 분은 부모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이 이제 부모님이 생각하실 때는 뭐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직자로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건 공직자 아니겠느냐 그런 걸 많이 심어주신 것 같고요.
또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씀을 주셔서 저는 그것들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우리 시민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늘 진정성 있게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정치할 동안도 부모님이 계속 생존해 계셨습니다.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들이 제 정치하는 거 보시면서 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수시로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저희의 정치의 하나의 길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타인을 위한 삶,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앞에서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에 행정을 하시고 그리고 또 정치를 하시고 이제 그런 일관성 있는 어떤 그런 말씀에 어떤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정치에 입문하시고 나서는 또 어떤 정치적인 멘토 혹은 롤 모델은 있으셨습니까?

▲(이)저는 어떤 한 분을 따라서 이렇게 롤 모델로 삼지 않고 내가 어떤 정치인이 돼야 되느냐를 늘 생각을 하고 있죠. 정치인으로서는 저희가 이제 정치 신조, 신념을 무신불립 으로 해서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과 약속한 걸 꼭 지켜야 되고 나 스스로도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늘 그런 걸 염두하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송)공직자로서 이제 꽤 오랜 삶을 살아오셨고 이제 여러 직책들을 거치셨잖아요. 공직자로서의 이종배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본인 스스로 돌아보셨을 때.

▲(이)저는 그래도 공직에서 행정고시 합격하고 최고로 올라가는 게 차관이거든요.차관까지 제가 올라갔고 동기들에 비해서 좀 빨리 승진을 한 편이었습니다.저는 이 일에 이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해서 전념해서 일을 처리하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또 승진을 하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이렇게 또 경험하고 다시 또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내무부가 나중에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는데요.그 이후에도 승진을 할 때는 지방에 가서 지방에 가서 또 근무하고 그래 근무하다 보면 또 중앙에서 불러들이면 다시 또 보고 이걸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저같이 이렇게 세 번 지방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한 사람도 상당히 드물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또 저희 동기들이 이제 내무부에 온 동기들도 군수를 다 못한 사람도 있어요.군수 1995년도에 지방자치가 실시가 돼서 자치단체장 선거가 처음에 있었거든요.

▲(이)95년도면 제가 공직에 나가서 15년 정도 이렇게 된 기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군수로 승진할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수를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었고 군수를 하신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조금 빨리빨리 제가 승진을 했고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제 삶은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제가 누구를 부리고 시키는 것보다도 앞에서 모범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도 빨리 된 것 아닌가 주위에서도 이종배가 승진해야 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됐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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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 논쟁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최슬아 숭실대 교수는 29일 "북한이라는 호명이 상대방을 한반도의 일부처럼 위치시킨다면 조선이라는 호명은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북한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은 어떤 온정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불안을 낮추고 관계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윤종빈)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평화 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 주제로 특별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는 관련 논의를 공론화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회의를 후원했다.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식별 기능을 갖지만 정치적 호칭이 되는 순간 이데올로기를 담게 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식 명칭으로 부르며 남쪽을 외국으로 재정의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며 토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며 도어스태핑을 갖고 최근 북한 '핵시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김성경 "호칭은 분단 산물…'조선' 관계 전환 출발점"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이라는 호명은 비공식적·약칭적 표현이지만 분단 80년 동안 누적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서 "북한을 계속 북한이라고 부르는 한 우리 안에 북한이 계속 갇힐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는 (북한을) 조선, 북조선으로 부르는 경향이 좀 있었다"며 "남과 북의 국가 정체성이 이미 상당히 공고화돼 있는 현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 맺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평화공존이나 통일에 더 도움이 된다는 논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통일은 남북이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그 맥락 안에서 관계를 맺고 남북 주민이 통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 권은민 "국호 사용, 국가 승인 아냐…정치가 먼저, 법은 따라간다" 권은민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DPRK'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국가 승인이나 정부 승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면서 "국가 승인은 정치적 행위이고 국가 의사 표시다. 그렇게 부르더라도 국가 승인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언을 하면 정리가 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관계는 법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가까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도 정치가 큰 틀을 규정하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는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남북 기본합의서 제1조는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돼 있다"면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국호 사용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취지의 기존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당사자 표기는 상대방이 원하는 공식 국호를 불러주고 그것이 국가 승인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제2경제위 산하 중요 군수공장을 방문했다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03.12 yjlee@newspim.com ◆ 이동기 "독일도 경멸적 호칭 쓰다 공식 국호 전환…출발은 이름" 이동기 강원대 교수는 "서독은 동독을 경멸적 표현으로 불렀지만 긴장이 격화되면서 더 큰 평화 정치에 대한 구상이 폭발했다"면서 "국제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평화 화해 논의가 공존에 대한 요구나 필요를 폭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독일 정치권에서는 헤르베르트 베너 전독문제부(통일부) 장관이 가장 먼저 동독 공식 국호를 사용했다"며 "당시에는 언론의 융단 폭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줬다. 국제법적으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인내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칙 고수와 실용주의가 결합하는 모든 출발은 국호의 제대로 된 호명이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근본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호칭 변경, 굴복 아닌 공존 가능성 넓히는 정치적 전략" 패널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조선 호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김태경 성공회대 교수는 "젊은 세대에는 '둘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조선을 일종의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에 대한 자기 인정과 그들에 대한 인정이 같이 결합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희 국립부경대 교수는 "핵심은 인정과 통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실질적으로 가는 데 있어서는 담론과 제도, 정치 차원에서의 접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호칭을 바꾸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적대를 줄이고 공존의 가능성을 넓히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hyun9@newspim.com 2026-04-2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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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發 쇼크에 리츠업계 초긴장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 가치 하락과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장 리츠 가운데 사실상 첫 디폴트 사례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개별 리츠의 리스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며, 전체 시장으로 확산되는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관련 시장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필요 시 유동성 지원과 함께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등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AI 그래픽 생성=정영희 기자] ◆ 무너진 해외 부동산 가치…유동성 위기 예견됐나 30일 리츠업계에 따르면 제이알투자운용의 기업회생 절차 돌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긴장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국내 대형 독립계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제이알투자운용이 2020년 국내 최초로 유가증권시장에 안착시킨 해외 부동산 공모 리츠다. 벨기에 브뤼셀 중심부에 위치한 파이낸스타워와 미국 뉴욕 맨해튼의 498세븐스애비뉴 등 대형 상업용 오피스 빌딩을 기초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해 왔다. 그러나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벨기에 브뤼셀 파이낸스타워 가치가 떨어지면서, 단기사채 4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27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매매 거래를 정지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1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해외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신 지연 등을 이유로 한 달 만인 2월 이를 자진 철회했다. 핵심 자산인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감정평가액이 급락하면서 현지 대주단과 약정한 담보인정비율을 초과했다. 임대료 등으로 발생한 현금 흐름을 대출 상환에 우선 충당하도록 묶어두는 캐시트랩(Cash Trap, 현금 동결)이 발동되더니 기업회생으로 이어졌다.  박광식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차입 만기 도래에 따른 차환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헤지(환율 고정 상품) 정산금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의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며 "캐시트랩 해소를 위해서는 약 7830만유로(한화 약 1354억원)의 현지 차입금 상환을 위한 추가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일제히 꺾인 리츠주…시스템 리스크 확산은 기우? 이 같은 악재에 상장 리츠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거래 동향을 살펴보면 이날 리츠 종목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마스턴프리미어리츠가 큰 폭으로 미끄러진 것을 비롯해 한화리츠, 삼성FN리츠, SK리츠, 코람코라이프인프라리츠 등이 급락세를 면치 못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뚜렷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리츠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됐다. 한국리츠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개 리츠의 시가총액은 9조7778억원을 기록했다. 리츠 시장은 지난해 1월 8조103억원 수준에서 같은 해 9월 9조2048억원을 돌파했고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는 10조원을 넘어서는 등 몸집을 불려왔다. 그동안 일반 주식에 밀려 상대적으로 소외됐지만, 최근 코스피 강세장 속에서 안정적인 피난처로 주목받은 결과다. 법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확실한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투자 자금이 대거 몰린 것도 호재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전체 금융 시장으로 퍼질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상장 리츠 22개사 중 해외 자산을 보유한 비중은 14.3%이지만,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하면 해외 자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 리츠의 총투자 자산 대비 해외 자산이 차지하는 파이가 극히 작아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자산 구성 및 투자 유형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보면 주택이 44.0%로 가장 컸다. 오피스는 35.3%에 머물렀으며 리테일 6.4%, 물류 6.4%, 혼합형 3.6%, 기타 3.2%, 호텔 1.1% 순으로 나타나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해외 오피스 리스크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수희 LS증권 연구원은 제이알리츠의 최근 기준 발행 잔액이 약 4000억원으로 전체 크레딧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찻잔 속의 태풍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크레딧물과 달리 리츠가 발행한 회사채는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내 크레딧 시장 심리에 타격을 주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 역시 이번 이벤트가 단기사채 미상환으로 불거진 만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 시장으로 파급될까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최근 풍부한 단기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어음 금리가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어 과거의 신용 위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국토부 방화벽 구축 총력전…상장리츠, 자산 다각화 과제로 다만 해외 부동산 자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리츠 종목들은 당분간 위축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는 KB스타리츠, 미래에셋글로벌리츠, 마스턴프리미어리츠, 신한글로벌액티브리츠, 디앤디플랫폼리츠, 이지스레지던스리츠 등이다. 이 중 해외 자산 구성 비중이 100%인 곳이 3개사, 50% 이상이 2개사, 50% 미만이 3개사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디앤디플랫폼리츠는 일본 소재 아마존 물류센터에 간접 투자 중이며 이지스레지던스리츠는 미국 소재 임대주택 및 대학 기숙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해외 자산의 장부 가치 비중이 각 리츠 총자산의 5~30% 수준에 그쳐 전반적인 쏠림 현상은 없다"면서도 "해외 자산을 보유한 개별 리츠의 경우 현지 대출 약정 위반에 따른 현금 흐름 통제와 국내 채무 차환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을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한파도 부담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주요 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4.7% 떨어졌다. 고점을 찍었던 2022년과 15%나 증발했다. 런던과 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폭락했다. 정부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방화벽 구축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김이탁 제1차관 주재로 금융위원회, 한국부동산원,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를 긴급 소집해 점검 회의를 열었다. 리츠 시장 전반의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응 방향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이알글로벌리츠의 부실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전일 합동 검사에 착수했으며,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며 "시장 안정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대주주가 되는 앵커리츠를 공급하고, 변동성이 통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채권 및 자금 시장 안정 프로그램 규모를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태 수습을 넘어 리츠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장 리츠의 주가를 궤도에 올려놓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된 상태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자금 조달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우량 자산 편입과 리츠 간 합병을 통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자산관리회사 역시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운용 현황과 배당 전략 등을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불신을 거둬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2026-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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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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