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월한 미장센
중간중간 작위적인 설정이 몰입을 방해
해무 속에서 펼치는 삼각 검투 대결 압권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란'(감독 김상만)은 넷플릭스로 봐서는 안 되는 영화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주요 영화인들은 야외 상영관의 스펙터클한 화면을 통해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관에서 이 영화를 봐야 하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칼과 칼이 맞붙으면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은 영화관에서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장센을 과시한다. 부산영화제의 넷플릭스 편중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앞으로 영화의 플랫폼이 OTT로 굳어진다면 두고두고 얘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전, 란'.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024.10.10 oks34@newspim.com |
'전, 란'은 두 주인공 천영(강동원 분)과 종려(박정민 분)의 이야기다. 조선 선조시대 왜란을 앞둔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다. 양인 출신 소년 천영은 무관 집안의 자제 종려의 노비가 된다. 천영은 종려를 대신해 회초리를 맞는 게 일이다. 종려가 검술 수련 중 실수할 때마다 매를 맞아야 하는 천영은 억울하고 분하다. 다행히 보는 것만으로도 검술을 익히는 천재적인 감각으로 도련님 종려를 돕는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천영은 매번 무과에 낙방하는 종려를 대신해서 과거시험을 봐서 합격한다. 종려의 아버지로부터 면천(免賤)을 약속받았지만 천영은 비밀을 지키려는 양반의 계략에 휘말리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와중에 임진왜란이 터져 종려와 천영은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전, 란'의 후반부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백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는 철없는 임금 선조(차승원 분),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유생 김자령(진선규 분), 일본 최고의 검술사인 왜장 겐신(정성일 분)까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자 못지않은 전투력과 배포를 가진 천민 여성 범동(김신록 분)도 인상적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전,란'.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024.10.10 oks34@newspim.com |
'전, 란'의 미덕은 스펙터클한 화면에 있다. 극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잠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관객의 멱살을 움켜잡고 끌고 나간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천영과 종려, 겐신이 해무 속에서 펼쳐내는 '삼각 검투' 장면은 압권이다. 이 영화의 각본을 공동집필한 박찬욱이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보여줬던 해무 장면처럼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강동원은 다이내믹한 검술 실력으로 적진을 휘저으면서 보는 재미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몇몇 장면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몰입을 방해한다. 천영이 불길에 휩싸인 집안에서 종려의 처와 강보에 싸인 아들을 구해주려 하지만 '더러운 천민'의 손길을 뿌리치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천민이라는 이유로 아들과 죽음을 택하는 어미가 과연 있을까. 선조 역의 차승원은 사극 속이 왕들과 달리 파격적인 구어체 대화를 구사하면서 종횡무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란'은 박찬욱의 아무라와 미술감독 출신인 김상만 감독의 미장센이 느껴지는 영화지만 뜨거운 스토리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실패했다. 11일 넷플릭스 공개 예정.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