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사후 추정제' 야당은 '사전 지정제'
법안소위 닫히며 국회서 표류…논의도 멈춰
e커머스 정산 주기 70일→20일로 축소
계엄·탄핵 정국 이어지며 모두 '차일피일'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경제 심리는 한껏 위축됐다.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내수와 트럼프 신정부 출범 영향으로 둔화하는 수출까지,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경제 지표는 고꾸라지고, 국민 삶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 회복을 위해 국회 통과가 시급한 민생법안을 짚어보려 한다.
[세종=뉴스핌] 백승은 기자 = 탄핵 정국에 갇혀 대형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플랫폼법'과 '티몬·위메프(티메프)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특히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은 각종 규제 완화 기조를 앞세우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 정부 '사후 추정제' vs 야당 '사전 지정제'…모두 일시정지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은 정부의 '사후 추정제'가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온플법)으로 나뉜다.
작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대 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동시에 다수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행위)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내놓고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공정위는 시장 영향력이 큰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법 위반 사항이 발생하면 빠르게 제재하는 '사전 지정제'가 담긴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사후 추정제로 완화했다.
사후 추정제에 해당하는 플랫폼은 ▲1개 회사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용자수가 1000만명 이상인 경우 ▲3개 이하 회사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각 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다. 이때 연간 매출액 4조원 이하 플랫폼, 개별 점유율 20% 미만인 플랫폼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기준에 해당하는 플랫폼은 카카오, 네이버와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사전 지정제를 핵심으로 둔 온플법을 총 7건 발의한 상태다. 법안은 모두 매출액·월평균 이용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플랫폼 기업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고 사전에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기준은 법안별로 다르지만 ▲공정시장가치 10~30조원 이상 ▲연평균 매출액 3~4조원 이상 ▲월평균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 또는 월평균 온라인 플랫폼 이용사업자 수가 5만 개 이상 등을 기준으로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쿠팡, 배달의민족 등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작년 12.3 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정부안과 야당안 모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회 소관 상임위원호인 정무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관련 법률안 공청회를 연 게 전부다.
◆ e커머스 정산 주기·대금 관리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도 '하세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함께 티메프 미정산 및 정산 지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티몬, 위메프 등 큐텐 계열사의 정산 지연 사태가 발발했던 지난 7월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티몬 사무실 앞에서 피해자들이 환불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현재 대규모유통업법은 상품을 납품받아 직접 판매하는 매출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 면적 3000제곱미터(㎡) 이상인 업체를 대상으로 규제하는데, e커머스와 전자결제대행사(PG)사는 법망에서 제외된다. 정산 주기 등 규제에도 제외돼, 티몬과 위메프와 같은 e커머스의 정산 주기는 최대 70일까지로 지나치게 길었다.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국내 중개거래수익(매출액)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거래규모(판매금액) 1000억원 이상인 온라인 중개거래 사업자의 정산 주기를 정하고, 일정 규모의 판매 대금을 금융기관에 별도 예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산 주기는 법 시행 직후에는 40일, 1년 뒤에는 30일, 2년 뒤에는 20일로 축소된다. 판매대금 관리 역시 시행 직후에는 30%, 1년 뒤에는 50%로 단계적 인상된다.
◆ 플랫폼 규제 방향 잃은 사이…'규제 완화' 트럼프 행정부 출범
계엄과 탄핵에 두 법안이 추진력을 잃었다. 특히 플랫폼 관련 규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더 큰 위기에 처했다. 플랫폼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경우 매출 규모 등에 따라 구글과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도 대상이 되는데, 규제 완화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발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플랫폼 규제 완화론자'로 잘 알려진 제이미슨 그리어가 임명됐다. 그는 지난해 한국 공정위가 사전 지정제를 담아 추진했던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가칭)을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칼럼을 통해 "한국의 플랫폼법은 중대한 분쟁을 일으키고 무역 대립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공정위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도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앤드루 퍼거슨 위원장이 발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취임식 당시 빅테크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가족 바로 뒤 자리하는 등 사실상 규제 완화에 대한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국 플랫폼법이) 미국 국익을 해친다고 판단하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무역 보복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에는 대부분 묵시적인 방법으로 보복을 단행했지만, 이제는 주권침해 등 명분이 늘어나 명시적으로 보복할 위험이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책 방향을 정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든 특별법 제정이든 국내 정책을 먼저 결정해야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0win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