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북한

속보

더보기

[탈북민 정착스토리](22) "평양에서 온 인어공주랍니다"...수중공연 전문회사 '몬스터테일' 류희진 대표

기사입력 : 2025년04월22일 11:04

최종수정 : 2025년04월22일 11:04

北 국가대표 수중발레 선수로 활동
지중해 몰타서 망명한 특이한 경력
전문성 살려 수중공연 업체 창업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한눈에 봐도 훤칠한 키에 미모가 돋보이는 류희진(33) 씨는 한때 북한의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였다. 평양 출신인 그녀는 10년 전 탈북해 방송활동과 강연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지만 언제나 '물'로 돌아가는 순간을 꿈꿔왔다.

그런 희진 씨가 얼마 전 '사고'를 쳤다. 수중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몬스터테일'을 창업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특별한 인어공주(Mermaid Tail)들을 모아 수준 높은 수중발레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생각에서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지중해 몰타에서 근무 중 탈북 망명한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 류희진 씨가 국내 공연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수중 발레리나 및 수중 공연 전문가로 알려진 그녀는 대표로서 기획‧연출을 총괄하고 직접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류 대표가 탈북을 결행한 건 남유럽의 섬나라 몰타였다. 지중해 중앙부인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한 인구 55만명의 몰타는 우리에게도 낯선 나라다. 비숑 계열의 소형견으로 국내에서 반려견 선호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말티즈(Maltese)의 고향이기도 하다.

류 대표는 2012년 그곳에 파견된 이후 수중발레 코치를 하며 북한 식당에도 근무했다. 외화벌이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자 이탈리아 식당의 요리사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식당이 운영됐다.

"솔직히 자유롭고 좋았어요. 현지에 파견된 보위 지도원은 많은 인원이 파견된 식당이나 재봉 공장 직원들을 감시하느라 제게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 덕분에 류 대표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식당에서 자주 소통했고, 인터넷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20대 나이의 자유분방함은 북한 체제의 단속이나 검열의 눈길도 막을 수 없었다. 혼자라 시내도 마음대로 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당시 몰타 지역에는 한국 식당이 없어 서울에서 간 유학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북한 식당으로 이어지게 됐다. 류 대표는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유학생들에게 몰래 만두를 빚어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식당에서 나오는 한 달 월급은 고작 200유로(한국돈 32만2000원)였는데, 그마저도 이것저것 제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은 거의 없었다. 당시 만두 한 개 가격은 1유로로, 200개만 빚어도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지중해 몰타에서 근무 중이던 지난 2015년 탈북해 한국에 온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류희진 씨가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어느 날 한국 유학생이 만두 200개를 주문했다. 숙소에서 밤새 만두를 빚고 저녁 9시가 넘어 문자를 하고 전달해 주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유학생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게 그만 실수로 감시를 담당하는 보위지도원에게 전송된 것이다.

보위지도원은 즉시 류 대표를 호출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잘못했다고 빌었고, 자아비판서를 써서 바쳤지만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며 온갖 행패를 부렸다. 마지막에는 민족 반역자, 변절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에 지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민족 반역자, 변절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때 평양에 있는 회사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조만간 북한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죠. 만두를 만들어 판 것이 조국을 배반할 만큼 큰 죄로 인정되는 북한은 저에게 더는 조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류 대표는 탈북을 결심했다. 다행히 4년을 몰타에 살았던 덕분에 남들보다는 쉽게 탈출에 성공해 무사히 한국에 입국했다.

정착 초기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서울 근교의 호텔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안전 요원)로 근무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하면서도 수중발레 코치를 하고 수중 공연회사에서 기획하는 공연에도 종종 참여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착 초기에 대학에서 조교도 하고 수중 발레 코치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죠. 몰타에서 혼자 독립해 생활한 경험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한 사회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탈북 망명한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류희진 씨가 환상적인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해외에서 탈출한 배경을 가진 류 대표에게 가족은 그리움과 죄스러움이 공존하는 아픔이다. 한국 정착 초기 평양에 남겨진 가족들과 연락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가능하다는 브로커를 소개받았지만,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브로커가 요구해 보낸 돈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다.

정착 초기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에 대한 죄책 감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 와중에도 탈북민들이 정착 초기에 경험 하는 사회·문화적 편견은 류 대표를 피해가지 않았다.

"수중발레 실력을 인정받아 아이들 수중발레 코치로 일하던 때 감독님이 한동안 부르지 않길래 전화를 걸어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왕이면 우리 코치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더라구요.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했고, 의지하고 믿고 따르며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분에게 나는 우리가 아니라 남이란 걸 느꼈죠."

동료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수중 공연 총감독으로 막일을 시작했을 때 공연팀의 임시 멤버로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자 동작의 잘못된 점을 수정해 주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 그때 돌아온 대답은 "북한에서 온 주제에 네가 뭘 안다고 나에게 조언이냐"는 말이었다.

"제가 진정 받고 싶은 위로는 '괜찮니? 속상했겠다' 는 공감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일들로 무너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최고의 수중발레 공연 회사를 만들고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꿈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은 없다. 오직 직진뿐이다. 그녀는 수중발레 공 연의 주연, 총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공연기획사 운영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현재 수중 발레리나로 활동하면서 공연진 캐스팅 및 티칭, 안무와 기획까지 전부 할 수 있는 한국인은 류희진 대표가 유일하다는 업계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사회든 나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살다 보니 탈북민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죠. 이제 제 머릿속에 탈북민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평양 출신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저를 국민으로 받아준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류 대표는 어느덧 수중 발레리나를 희망하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꿈'이 되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감사 인사와 편지를 받을 때면 뿌듯함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강한 긍지를 느낀다.

몬스터테일은 대전 엑스포 아쿠아리움에서 '미녀와 야수'를 각색한 수중발레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아쿠아리움 속에서 펼쳐지는 수중 공연은 황홀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는데 동화 속 천국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 때 유리벽에 손을 대고 바짝 다가선 아이들은 동화 속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연신 환호를 보낸다.

하루하루 좋은 경험들을 쌓아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미래를 상상하며 류 대표는 오늘도 가슴이 부푼다고 한다. 통일 미래에 반갑게 다시 만날 가족도 마찬가지다.

평양 대동강으로부터 멀리 지중해 몰타를 거쳐 서울에 온 인어공주 류희진에게는 어떤 파도와 큰 물살도 장애물일 수 없다. 그저 그녀의 꿈과 예술혼을 펼칠 아름다운 무대일 뿐이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한덕수, 대선 출마 여부에 "노코멘트"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대행은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다"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원조, 기술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했다. 이는 한국을 외국인에게 매우 편안한 투자 환경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대행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축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2025.03.24.gdlee@newspim.com 한 대행은 "협상에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상업용 항공기 구매 등을 포함해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조선업 협력 증진도 미국이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FT는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고 한 대행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한 대행은 협상 과정에서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도, 양국 간 무역의 자유가 확대되면 "한국인의 이익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재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 대행은 6·3 대통령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nylee54@newspim.com 2025-04-20 13:43
사진
호미들 중국 한한령 어떻게 뚫었나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중국의 한류 제한령)이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중국에서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8일 베이징 현지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3인조 래퍼 '호미들'이 지난 12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중국인 관객들은 공연장에서 호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분위기를 만끽했다. 공연장 영상은 중국의 SNS에서도 퍼져나가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적 가수의 공연은 중국에서 8년 동안 성사되지 못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BTS도 중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때문에 호미들의 공연이 중국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호미들 공연이 성사된 데 대해 중국 베이징 현지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이 소규모였다는 점과 공연이 성사된 도시가 우한이었다는 두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호미들이 공연한 우한의 우한칸젠잔옌중신(武漢看見展演中心)은 소규모 공연장이다. 호미들의 공연에도 약 600여 명의 관객이 입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800명 이하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정식 문화공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서는 공연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성(省) 지방정부 혹은 시정부가 공연을 허가한다. 지방정부가 허가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경우 중앙정부에 허가 판단을 요청한다. 한한령 상황에서 우리나라 가수의 문화공연은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었다. 호미들의 공연은 '마니하숴러(馬尼哈梭樂)'라는 이름의 중국 공연기획사가 준비했다. 이 기획사는 공연허가가 아닌 청년교류 허가를 받아서 공연을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한시의 개방적인 분위기도 공연 성사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한에는 대학이 밀집해 있으며 청년 인구 비중이 높다. 때문에 우한에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다. 게다가 젊은 층이 많은 만큼 우한에서는 실험적인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우한시는 중국에서는 최초로 시 전역에서 무인택시를 운영하게끔 허가하기도 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파격적인 정책이 발표되는 우한인 만큼, 한한령 상황임에도 호미들의 공연이 성사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의 한 문화업체 관계자는 "우한시가 개방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호미들의 공연은 소극적인 홍보 활동만이 펼쳐지는 한계를 보였다"며 "공연기획사 역시 한한령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현지 문화콘텐츠 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한국의 최정상급 가수가 대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서 빨리 한한령이 해제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시그널은 아직 중국 내에서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호미들의 중국 우한 공연 모습 [사진=더우인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4-18 13:1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