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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윤종오, 용접공에서 노동 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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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 과정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겪은 일화부터 노동 개혁에 앞장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윤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진보당 울산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진보당에서 현역 중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원내대표도 맡고 있다. 

윤 의원은 196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뒤, 거제도 대우조선소로 직장을 옮겼다. 

윤 의원은 과도한 노동에 문제를 느껴 노동조합원으로 본격 목소리를 냈다. 이후 울산 북구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2006년 울산 시의원을 거쳐 2010년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가 지난해 22대 총선으로 복귀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윤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안녕하세요.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저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재선 국회의원이신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님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네 반갑습니다. 워낙 전국 현안이 바쁘지만 또 대표님을 알아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초대 요청드렸습니다. 먼저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가족 관계부터 좀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제 대표님 과거 부모나 가족 관계 그리고 현재 뭐 가족 관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윤종오 의원. 이하 윤) 아버지는 한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지금 90세인데 아주 건강하게 살아 계시고요. 제가 원래 5남매 중에서 장남이었는데 한 10년 정도 전에 쌍둥이 동생을 한 명 더 찾아가지고 6남매의 맞이 2남 4녀 맞이고요. 자녀는 지금 딸 둘에 아들 1명 큰 딸이 결혼을 해 가지고 또 손주를 낳아서 큰 손주가 4살 그다음에 딸 아들 쌍둥이 손주를 또 낳았어요. 걔들이 이제 돌을 지나가지고 14개월 됐는데 제가 자식도 3명을 낳았고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저보고 벌써 애국자라고 많이 그러네요.

-(윤)가족끼리 명절 때나 보면 되게 이렇게 반갑겠어요 가족들도 많아서.

▲(윤)그렇죠 이제 우리 어머님 슬하에 6남매 그 밑에 이제 손주들 또 그 밑에서 또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한 모이면 뭐 한 30명 이상 대식구죠. 명절 때 집이 막 터져 나가면

-(윤)그러니까요. 근데 또 설 명절이나 이럴 때 오히려 의원님들 더 바쁘시잖아요. 근데 또 가족들 보시는 데는 괜찮으신가요?

▲(윤)뭐 아무리 바쁜 정치 일정이 있어도 또 우리 명절 때는 가족이니까 가족들과 이렇게 따뜻한 시간도 보내야지 가족들 지지 없으면 정치 활동도 못 합니다.

-(윤)의원님 태어나신 곳은 경남 합천이시네요.

▲(윤) 그렇죠 합천은 태어나기만 태어났어요.

-(윤)그렇구나 그럼 자라신 곳은

▲(윤)초중고를 그냥 부산에서 다 다녔기 때문에 부산이 제2의 고향이고 그 군대 다녀와서 이제 울산으로 왔기 때문에 울산은 얼떨길래 돈 벌러 올라 왔다가 제가 이만큼 정치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가 인생을 바꾸더라고요.

-(윤)그러면 합천에서 태어나시기만 하셨고 부산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윤)보냈죠.

-(윤)좀 찾아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좀 자랐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윤)그게 이제 아까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 여동생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 집안 형편도 어렵고 이래서 부잣집에 한 명을 보냈죠. 그걸 이제 44년 만에 찾게 되는 KBS 생방송 사람을 찾습니다.

-(윤)그러니까요. 저 어린 시절에

▲(윤)그런 아픔도 있었는데 그래도 또 잘 극복해서 제가 이렇게 재선 국회의원까지 됐지 않습니까?

-(윤)어린 시절에 의원님의 성향 이런 게 좀 궁금해요. 반장 도맡아 했다든지

▲(윤)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냥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잘 지내고 뭐 조금 솔선수범할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일을 하고 좀 부지런하고 좀 싹싹한 이제 그런 그냥 아이였죠.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지금 뭐 자주 보긴 하는데 이 친구가 어떻게 노동 운동을 하고 이렇게 정치로 나갔지 처음에는 되게 이렇게 의아스럽게 생각했죠. 근데 사람이 이제 이렇게 어떤 환경하고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나서야 될 자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또 살아왔던 시기가 이제 군부 독재가 한참 극을 달할 정도로 좀 독재가 심한 그런 시기에 이제 그 직선제 쟁취 혹은 철폐 이렇게 역사의 어떤 확 개병기 이럴 때 누군가는 또 나서야 돼.

-(윤)그렇죠

▲(윤)그 제가 그냥 나섰더라고요.

-(윤)그러면 어릴 때 꿈은 어떤 거였어요?

▲(윤)어릴 때 꿈은 그냥 유능한 기술자 빨리 돈을 벌어야 되겠다 가정 형편도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이 많이 앞섰는데요. 고등학교 때쯤 가서는 막연하게 다음에 내가 자라면 사회복지 사업 같은 거 했으면 좋겠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이런 걸 운영하면 잘하겠다 이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막상 이제 사회에 부도 끼고 제가 이제 정신까지 하게 됐잖아요. 이것은 고아원을 100개도 만들고 200개도 만들고 다른 복지관을 더 엄청난 복지 사업도 할 수도 있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처음에 꿈은 소박했지만 또 이렇게 살아가면서 새로운 꿈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윤)그럼 어린 시절에도 어쨌든 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런 직업을 좀 생각을 하시긴 하셨나요?

▲(윤)네 조금 어릴 때 이제 종교적인 영향도 조금 받은 것도 없지 않아 있고 그래서 제가 또 봉사활동도 고등학교 딸 시와의 활동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게 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또 도움으로 이 세상에 왔고 또 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서로의 협력과 이렇게 합의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데 맞아요.
조금 그런 게 그냥 생활화됐던 것이 어느 날 이 시대가 바뀔 때 저한테 정치의 기회도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윤)의원님 혹시 MBTI 검사해 보셨어요? 그 e와 i 성향이 있잖아요. 외향형과 내향형 중에 어떤

▲(윤)이제 제가 검사니까 외향으로 나오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내향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MBTI가 다 정확하지는 않다.

-(윤)본인이 선택을 하는 거니까

▲(윤)제가 이제 제 성향이다 이러니까 우리 딸 아이는 다른 사람이 다 속고 있는 거다 이 그런데 이제 사실은 제가 제가 조금 뭐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또 적응적일 때 있고 또 이럴 때는 좀 감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또 이성적으로도 행동하고 그 사안에 맞게 이렇게 적절하게 판단을 잘 하는 것들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왜냐하면 정치인이라고 하면 되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일 거라고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도 좀 내성적이기보다는 리더 활동을 많이 했다든지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윤)저는 이제 조금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함께하고 어디 놀러를 간다 이렇게 하면 제가 챙기고 준비하고 이런 것들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이제 사회생활하면서 다 도움 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할 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면 좋잖아요. 그렇죠. 세상 살아가는데 이 시에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은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

-(윤)그러면은 중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윤)부산의 사상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했고요. 그때는 뭐 방위 산업차라고 하는데 사실은 고무를 취급하는 곳이었어요. 그 전차 바퀴의 고무 청소는 개머리판에 고무 이래 사실은 고무공장이에요. 하루 일하고 나면은 호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가 그냥 한 주먹씩 나왔어요. 또 도저히 목욕을 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가 없고 그때 방지 마스크도 제대로 안 줬어요. 지금 같으면 폐암 걸려서 다 죽었을 텐데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제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또 이제 용접비를 이제 하게 되었고 그때도 뭐 정말 현장은 열악했죠. 한 달에 체라 특권을 많이 할 때는 15개

-(윤)뭘 15개요?

▲(윤)특근

-(윤)철야 특근

▲(윤)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해야 되잖아요. 저녁에 퇴근하지 않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 좋겠지만 안 하고 그다음 날 저녁에 퇴근하는 거예요.

-(윤)그럼 거기서 먹고 자는 거예요.

▲(윤)회사에서 밥 먹고 못 자고 일을 하는 거죠. 그렇죠 조이 졸면 와서 망치 두드리고 깨우고 그러죠. 이제 그래서 막 인간이 아닌 거죠. 노동을 짤 수 있는 만큼 짜는 거죠. 그게 거제도 조선소에서도 그랬었고 이제 80 제가 6년도에 군대 제대를 하고 현대차에 입사를 하게 되는데 거기 하니까 지금 현대차 되게 좋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잖아요.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 그 선호하는 대기업 거의 뭐 타 클래스에 속하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줄을 서면 돼 갔어요. 이번 주에 한 500명 뽑고 다음 주에 또 500명 막 뽑고 그 사이에 또 몇 백 명 퇴직 퇴사해요.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왜 안 좋은 회사니까 매일 12시간씩 교대 근무로 일을 하고 당연하게 출근 일요일은 출근할까요? 안 할까요? 의도가 비죠. 무조건 출근 쉬는 날이 없어요. 그렇게 이제 막 교대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다 일해도 실제적으로 이제 임금은 한 20만 원도 채 못 받고 내 차를 산다 내 집을 산다 꿈에도 못 꿨죠.

현대차가 그랬어요. 그게 이제 87년도 60항쟁과 함께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그때 이제 저도 모르게 제가 메가폰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고 그 이후에 이제 이렇게 획기적으로 이제 임금도 오르고 이제 이렇게 여러 가지 사내 복지도 좋아지고 어 이렇게 하면서 조금 다닐 만한 회사가 된 거죠.

그러한 과정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렇죠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되고 싸우고 막 어떤 데는 진짜 분신도 하고 막 이런 어마어마한 투쟁들이 속에서 오늘의 이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의 어떤 노동자 전체의 어떤 권익은 물론이고 사회의 어떤 분배의 정의 실현 이런 부분에서도 상당 부분 이렇게 역사적 성과는 있는 거죠. 그렇죠 다소 뭐 이렇게 대기업 노조가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인 어떤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같이 올렸던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노동조합 운동이 큰 역할을 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하는 데 앞장을 서신 거죠

▲(윤)예 처음에는 그렇게

-(윤)그때 그럼 노동조합 노조장 위원장을 하셨던 거예요.

▲(윤)위원장을 하지는 않았고요. 제가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가 25살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100명에 1명씩 대표인 대의원도 하고 우리 전체 재정이 제법 그래도 조합원이 많으니까 몇백억 되는데 거기에 총괄하는 총무부장도 하고 또 한 개 공장도 커요.

제가 1공장이라는 승용차가 만드는 공장인데 한 3600명 됩니다. 거기에 노동조합 대표도 하고 전체 노동조합을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쟁의실장도 하고 이렇게 이제 10년 정도 조합 간부를 하면서 현장에서 임금이나 단협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올리는 것이 좀 한계점이 왔을 수 있죠.

그래서 이제 사회 개혁 요구가 되게 많았어요. 의료 개혁을 하자 교육 개혁을 하자 이제 이런 요구들이 많았는데 분출했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누가 만들어요? 정치가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이렇게 정치의 직접 정치에 대한 어떤 요구들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이렇게 기름을 부은 것이 IMF가 오면서 이제 정내고 바람이 확 불었던 거죠. 여기 그만두시면 갑자기 갈 데 있으신가요? 쉽지 않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 현대차를 다니다가 갑자기 잘리면 뭐 대우차나 상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제 그렇듯이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대투쟁이 일어난 거죠.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제 그렇게 하면서 96년 말 97년도 노동법 개정이라는 큰 투쟁이 한 달 동안 이렇게 벌어졌고 그때 정리해고법이 통과됐던 것이 다시 2년간 유예되는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 투쟁으로 해서 유예되는 그런 어떤 엄청난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자각을 한 것이죠. 우리 대표를 정치권으로 많이 보내자 국회로 보내자 지방의회로 보내자. 이때 이제 제가 선발대로 뽑혀 가지고 98년도 지방선거 당시 제가 나이가 36살이었는데 이제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북구의원으로 당선된 것

-(윤)그 사이에 좀 더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왜 당시에 내가 이렇게 앞서서 이 노동 현장의 처우 개선에 내가 힘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계기가 뭐였

▲(윤)그냥 운명처럼 제 앞에 마이크가 잡혀 있었고요. 이제 그때 현장의 어떤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지금 어떤 일반 직장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 당시가 이제 군부 독재 시대고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 그 군사 문화가 그대로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처음 만들어졌으니까 많은 요구들이 분출했을 거 아닙니까? 요구들이 1번부터 해서 몇십 번까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1번 1번이 뭐였을 것 같아요?

상상이 안 가죠. 두 발 자유화였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두 발 자유화를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는 그 현장이 얼마나 군대처럼 이렇게 통제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의 어떤 사회였는가 이제 이것이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내가 땀 흘려 일하는 만큼 내놔라 하는 이제 그 권리의식이 같은 것이고 제가 현장에서 이제 실질적으로 명절 때 설날 같은 날 설날 아침에 퇴근시키고 휴일은 아예 없으니까 반장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반에 전이 보면은 우리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오직 회사만을 위해서 우리는 일해야 된다 이렇게 막 주입을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일요일 날 만약에 안 나오게 되면 당연하게 놀아야 되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2개의 또는 3개를 쳐가지고 고가 먹일 때 반영해서 임금을 적게 주기도 하고 이제 이렇게 하면서 많이 여리 바다에 있었던데 때마침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저도 모르게 나서게 될 거라고요.

-(윤)그때 그 노동 운동 그런 것들이 지금 정치를 하는 데까지 이제 발판

▲(윤)예 엄청난 이제 노동조합 운동은 정치 운동을 하는데 밑거름도 되었고 발판도 되었고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는 당연하게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과거에 일반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님은 계시지만 기자님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이것을 정치적으로 어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지 권익이 더 세지는 것이고 이렇듯이 정치하는 사람이 판검사 출신만 정치하고 대학 교수 출신만 정치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안 되죠. 그런데 이제 국회에는 가면 지금도 좀 편향되게 특정 직종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가다 대표하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죠. 앞에 나갔을 때는 노동자들 서민들 영세 상인들을 위해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들을 보면은 이제 그런 것들은 억수로 좀 터부시 되고 실질적으로 자기 이해 집단과 관련된 부분들이 훨씬 더 우선적으로 좀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이런 경향들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정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이제 독일과 같이 이제 이렇게 비례대표 총량을 더 키워서 한 600명 되는데 반은 비례대표니까 거기에 이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각 정당이 이렇게 배려를 하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들어와야 되는데 우리는 영남에는 뭐 그냥 국회입니당 호남은 민주당 지역 정치가 그냥 그대로 국회에 들어와서 실제적으로 계급적인 어떤 그런 사람들을 좀 제대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윤)네 의원님 자랑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특전사로 복무하신 이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좀 알려줘.

▲(윤)아 예 제가 부드러운 모양새라 가지고 안 믿는데 홍수에서 너무 고맙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보당 활동을 하다 보니까 선거 때만 되면 종북 공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근데 그 종북이라는 게 웃기는 게 선거 끝나고 나서 나한테 종복이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선거 되면 또 종북 이야기합니다. 근데 종복 이야기할 때 제가 특전사 출신이다 이러면 상당 부분 이렇게 종북 공세를 방어하는 데 좀 유리한 부분으로 작용했고요. 네 그런데 그런 어떤 이념 논쟁이라는 게 좀 웃기는 게 저희 고향이 합천이라고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정치적으로 놓고 보면 300명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좌측에 있다고 대부분 기자님들이 그렇게 판단하시죠.

그렇죠. 근데 그러면 당연하게 자기 좌측에 있으면은 조금 이제 종복 공세하는 그런 경향이 그동안 그런 경향이 억수로 더 이렇게 진한데요. 제 고향에 가면은 아재들이 이래요. 막 정치 이야기하다가 맞아요. 제가 종복인 기라면 은 아니지 우리 종우가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어떤 이념 공세라는 게 괜히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우리 진보당에 있는 의원들도 누구보다도 애국자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로 만 만들어 갈까 하는 측면에서 이런저런 정책 제안을 하고 그것을 좀 이렇게 실현시키려는 노력들을 소수 정당이지만 이제 끊임없이 해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의제를 선도했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의 어떤 복지 모델이나 이런 어떤 사회 대개혁 과제 중에서 상당 부분 어떤 성과를 저는 저희들은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석은 작았지만 성과를 만들어 나오는데 우리 진보 정당의 역할이 있었고 앞으로 진보당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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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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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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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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