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투표 '하루 전' 발표된 정책 공약집
국정과제 발표 전 공약 실현가능성 점쳐
늦어진 공약집 발행에 공무원 '발등에 불'
내용도 두루뭉술…실무자 추정 따라 검토
첫 약속 가볍게 여기는 후보, 진정성 없어
조기 발행으로 정책 사전 검토 충분히해야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역대 대선 중 정책 공약 내용이 더 막연합니다."
21대 대선 후보들은 역대급으로 정책 공약집을 늦게 발간했습니다. 발표가 늦어진 만큼 그들의 비전이 담겼을까요? 역대 정부를 경험한 공무원들은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 공약집 중 가장 빈약한 공약집이라며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국민은 정책공약집으로 후보들의 철학과 5년 간의 정책 방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책을 실현해야 하는 공무원은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미리 점쳐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급으로 늦게 나온 정책 공약집에 공무원들은 부랴부랴 공약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공약도 모호한 탓에 실무진들은 공약 의미를 가정해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토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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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까지만 해도 정책 공약집은 후보 등록 시기에 내놓은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은 표를 의식해 공약집을 늦게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약집을 빨리 내놓을수록 국민들이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선 후보 정책공약집 발간 시기에 따르면 21대 대선 후보들은 역대급으로 늦장 공약집을 냈습니다.
19대 대선에 나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선거일 11일 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선거일 22일 전에 정책 공약집을 발간했습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선거일 15일 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선거일 13일 전 정책 공약집을 내놨습니다.
이러던 것이 21대 대선에서는 한 자릿수로 줄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선거 6일 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선거 8일 전에 정책공약집을 발행했습니다. 특히 이 후보는 사전 투표가 시작되는 하루 전에 PDF 파일로 187쪽에 달하는 정책 공약집을 발간했습니다. 국민을 고려하지 않고 표만 생각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들도 늦장 공약집 발행에 쓴소리를 내뱉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정책 공약집을 내면 공무원들은 공약집을 토대로 국정과제를 수립하기 전에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따집니다. 그러나 늦은 정책공약집 발간에 공무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보통 공무원들은 정책공약집을 보고 정책 방향성을 미리 점친다"며 "발행이 늦어지는 만큼 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공약에 대해 법 개정이 필요한지,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를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한데 시간이 줄었다"며 "대통령 당선 후 바로 국정과제가 수립돼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새 정부 들어 큰 사업 변화가 예고되는 부서에서는 걱정이 더합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기존 사업 방향과 같은 기조면 문제가 없지만, 기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업 부서에서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이 일하는 영향보다 국민들 입장에서 공약을 토대로 선택해야 하는데, 공약집이 늦게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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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왼쪽)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05.23 photo@newspim.com |
늦장 공약집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구체성입니다. 공무원들은 역대급으로 공약이 모호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고 했을 때 공무원들은 수십 가지의 가정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내년 예산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인데 재정 추계도 모호합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확대한다고 하면 연령을 기준으로 늘릴 수도 있고 소득을 기준으로 할 수 있어 여러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며 "실무자의 추측에 따라 여러 가지 경의 수에 따른 검토를 하고 있는데,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대선 후보들의 알맹이 빠진 늦장 공약, 이제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민주적 선택권을 제한하고, 정책 혼란을 일으킵니다.
대선 후보들은 공약 조기 발간으로 자신의 비전에 대해 당당히 평가받아야 합니다. 정책 공약 방향성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정책을 빼고, 필요한 정책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마땅합니다.
정책 공약집은 대선 후보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첫 약속입니다. 첫 약속부터 가볍게 여기는 후보는 앞으로도 국민 약속의 무게를 지킬 수 없습니다.
sdk19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