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화스와프, 금융위기·코로나19 사태 등 두 차례 그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국가, 영국·일본 등 기축 통화국 한정
트럼프측 논의 가능 입장…비 기축통화국과 체결 사례 없어
미 국채 매각-금리 상승 막기 위해 연준도 동의 가능성 있어
[서울=뉴스핌] 온종훈 선임기자 =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한국과 미국간의 주요 관세협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패키지와 관련해 일시적으로 투자자금(달러) 유출에 따른 외환시장 혼란을 막을 방안의 하나로 미국 측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 측도 원론적인 의미에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스와프는 유사 시 자국 화폐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우리의 경우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려올 수 있는 것으로 일반인들 입장에선 사용하는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하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300억 달러,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600억 달러 규모로 과거 두차례 체결되었으며 두 번 모두 위기 상황에서 금융시장 안정과 환율 급등 방지에 효과를 봤다. 2020년 통화스와프는 다음해인 2021년말 종료됐으며 현재로선 한미간의 통화스와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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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현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면담 내용을 언론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KTV] |
유엔총회에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중인 이재명 대통령을 수행 중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와 관련해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협상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이 대통령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면담하면서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한 논의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발언은 통화 스와프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므로, 체결되더라도 이후 추가로 논의를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외환위기'까지 거론하며 통화 스와프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을 언급하며 "그게 안 되면 충격이 너무 크다.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으로 나가지 못하는 필요조건"이라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는 과거와 어떤 차이점이 있고 실현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규모가 '무제한'이라는 점에서 과거 사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3500억 달러 투자요구액이 외환보유액(8월말 기준 4263억 달러)의 82.1% 수준임을 감안하면 달러 유출에 대한 외환시장 혼란을 막기위해 우리 측의 요구 조건은 당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국간 협상과정에서 한국은 직접 투자 대신 보증·대출·보조금 등으로 부담을 분산하려 하지만, 미국은 최근 일본과 체결한 합의처럼 직접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김 실장이 밝힌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필요 조건' 이라는 발언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에쿼티(현금투자) 형태의 투자는 어찌됐던 외환보유고에 버금가는 달러 유출이 불가피한 데 이를 해결할 방법을 미국 측에 다시 되묻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의문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통화스와프의 실질적 주체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2008년 당시에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연준이 금융시스템 보호를 위해 자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단위의 '달러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서던 시기였으며 2020년 당시에도 코로나19 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투자에 대한 외환유동성 요구에 응답한 측면이 컸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이 요구하는 사실상 '상설 통화스와프'에 대해 연준이 비 기축통화국과 맺은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국가는 일본,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스위스, 영국, 캐나다 등 대부분 기축통화 보유국이다.
반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측에서는 "우리도 외환보유액이 4200억 달러나 되고 이 대부분이 미국 국채다"며 "미국의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하면 연준도 채권 매각(시장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서 쉽게 응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통화스와프는 달러 크레디트라인(여신 한도)과 같은 안전장치이기 때문에 연준으로서는 당장의 부담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양측 모두 교착 상태에 놓인 한·미 관세 협상에서 상설·무제한 통화스와프는 우리 측의 주요 협상카드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특강을 하기 위해 방미해 베선트 장관과 간단히 면담을 했다"면서 "이 자리에서도 통화스와프 관련 내용이 전달됐다"고 전했다.
ojh11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