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직접시행-공공재정비-신축매입임대 확대 운영
권한 축소 위한 개혁안 무색…LH 더 커지고 더 세진다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내부 직원 비리와 각종 안전사고로 '개혁' 대상에 올랐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새정부 개혁안을 계기로 오히려 더 강하고 규모가 큰 공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H의 발목을 잡아왔던 부채 문제는 임대주택 관리 분야 분사를 통해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본연의 사업인 공공택지 개발은 물론, 민간 영역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에도 대거 진출하며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후 LH 임대주택 공급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축매입임대사업에서 LH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사실상 '건설 준공영제 운영기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임직원 비리 사건 등을 계기로 독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LH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지만, 이번 개혁이 오히려 LH의 독점화와 비대화, 방만 경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중 마무리될 예정인 개혁안을 통해 LH가 현재보다 규모가 커지고 업무 영역과 권한이 한층 강화된 '독점 건설 공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H 개혁안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최근 대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한 국토교통부 LH 개혁위원회는 당초 연내로 예정됐던 개혁안 마련 시점을 연장해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그럼에도 개혁안의 큰 틀은 지난 12일 열린 국토교통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LH 업무보고에서 임대보증금 등 부채와 자산을 분리해 관리할 자회사 설립을 직접 언급하며 조직 개혁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LH 재정을 들여다보면 부채 비율이 높은데, 임대보증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며 "기술적으로 부채와 자산을 분리해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말했다. 현재 LH의 총부채 160조원 가운데 약 100조원이 임대사업 관련 부채라는 것이 LH 측 설명이다. 분사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할 경우 주택 공급 사업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대통령이 언급한 부채·자산 관리 자회사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명확하지 않다. 업계에서는 LH가 임대주택 건설을 담당하고, 별도의 임대주택관리공단 등을 설립해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LH는 그동안 부채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임대주택 사업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하며, 임대주택 관련 부채를 자산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 같은 구조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지난해 기준 218%였던 LH의 부채비율이 2030년 300%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7 주택공급 확대 대책'에서 제시된 LH의 직접 시행 방식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도권에서는 민간 업체들의 입찰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짜 회사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하려는 등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며 "좋은 입지는 공공이 직접 개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LH가 사업을 100% 직접 시행할 경우, 해당 주택단지의 아파트 건설은 도급제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공공택지에서 주택 사업을 수행해온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주로 수주해 시공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건설업계 동향이나 LH·국토교통부의 권유 등에 따라 인기 브랜드를 보유한 대형 건설사의 참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수주 구조가 정착될 경우, 건설업계 전반의 '준공영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동탄1신도시 시범단지처럼 LH나 국토부가 의도적으로 브랜드를 유치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업은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될 것"이라며 "결국 자금력이나 브랜드를 보유한 순서대로 '준공영제'의 혜택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정비사업 수주 등 자체 경쟁력이 약한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일부 대형·중견 건설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로 재편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LH 임대주택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신축매입임대사업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억원짜리 집을 1억2000만원에 LH에 판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매입임대사업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매입임대사업은 전 정부 시절에도 현 여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혈세 낭비'의 대표 사례로 비판을 받아왔다.
현행 매입임대 제도는 빌라 등 소규모 공동주택을 짓는 소형 건설사들에게 사실상 '유일한 일감'으로 여겨진다. 빌라의 특성상 적정 가격 산정이 쉽지 않은 데다, 이들 업체 역시 저가 경쟁에 내몰리면서 LH 매입임대 사업에 의존하는 준공영적 구조에 편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개혁안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한 LH의 진출 문턱도 대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됐던 공공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이번 정부에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심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재개발·재건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부족이나 주민 이주 문제 등으로 사업 추진이 지연된 도심 노후 주거지를 국토부가 공공 재개발·재건축 구역으로 지정하고, LH가 참여하거나 수용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이는 LH의 민간 영역 진출과 사업 범위 확대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나온 언급들로 이같은 LH 개혁안 시나리오를 짜면 LH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의 사실상 건설 준공영제를 운영하는 '대한민국 독점 건설기업'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커진 공기업은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업역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개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LH는 향후에도 '공공성'을 무기로 업역을 더 확대하는 등 위상과 규모를 키우려는 성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상했던 LH의 정화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안과 다른 점도 지적된다. LH 개혁안은 2021년 LH 전·현직 임직원들의 비리 의혹으로 촉발됐다. 윤석열 정부는 LH에 대해 전관 예우를 대거 없애고 업무를 공공주택으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LH를 '단죄'하는 방식의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번 개혁안은 오히려 LH를 대거 키워주는 형태가 될 것이란 시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본래 LH 개혁안이란 게 내부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됐는데 오히려 새정부 들어 LH가 그동안의 모든 과오를 공공성을 이유로 덮어주는 형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dong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