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흐름 속 공조 기술의 '재조명'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자동차 산업의 경쟁 축을 '동력'에서 '열'로 이동시키고 있다. 배터리 효율과 주행거리, 충전 성능, 실내 쾌적성까지 모두 열관리 성능에 좌우되면서, 과거 조연에 머물던 공조·냉각 기술이 모빌리티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글로벌 열관리 전문 기업 한온시스템과 통합 열관리 시스템을 앞세워 영역을 넓히고 있는 현대위아가 있다. 같은 '열관리'를 다루지만, 두 회사가 선택한 전략과 밸류체인상의 위치는 분명히 다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인 조정 국면을 거치는 가운데, 주행거리와 전비, 실내 쾌적성을 좌우하는 열관리 기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글로벌 열관리 전문 기업 한온시스템과 통합 열관리 시스템으로 영역을 넓히는 현대위아가 자리하고 있다.
한온시스템은 덴소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글로벌 톱티어 열관리 기업이다. 내연기관 시절부터 공조(HVAC)와 냉각 시스템을 주력으로 성장해 왔으며, 전동화 전환 국면에서도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한 통합 열관리 기술을 앞세워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한국타이어(한국앤컴퍼니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는 재무 건전성 강화와 함께 사업 구조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 경쟁력의 핵심은 히트펌프와 고전압 전동화 부품이다. 한온시스템은 업계 선도 수준으로 평가받는 4세대 히트펌프 시스템을 양산하며, 겨울철 전기차 주행거리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특히 800V 고전압 시스템에 대응하는 e컴프레서 기술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최고 수준의 성능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엔진, 모터, 히트펌프, 실내 열원을 하나의 제어 로직으로 통합한 'HEV 통합 열관리 제어 기술'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인 '올해의 산업기술혁신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기술 범위를 전기차(BEV)에 국한하지 않고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다양한 전동화 파워트레인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해당 기술은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 연비를 약 15% 개선하고, 실내 난방 응답성을 높여 체감 성능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한온시스템은 기술 경쟁력 강화와 함께 재무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올해 매출 11조 원 달성과 영업이익률(EBIT) 5% 회복을 핵심 경영 목표로 제시했다. 2025년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1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수익성 정상화와 성장 기조를 동시에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전담 조직 신설과 글로벌 R&D 체계 재정비를 통해 열관리 기술을 하드웨어 중심에서 제어·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파워트레인이 공존하는 시장 환경에서 완성차 업체들의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기술 역량을 핵심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
더불어 자동차를 넘어 AI 데이터센터 액체 냉각 시스템과 ESS 열관리 솔루션 등 비(非)자동차 분야로의 확장도 검토 중이며, 글로벌 애프터마켓 전담 조직을 중심으로 부품·서비스 매출 확대를 병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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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위아의 전략은 보다 공격적이다. 엔진·변속기 중심의 기계부품 회사였던 현대위아는 전기차 전환과 함께 사업 구조를 재편하며, 열관리를 핵심 성장축으로 삼았다. 특히 '통합 열관리 시스템(ITMS)'을 중심으로 단품 공급을 넘어 시스템 단위 공급사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방향성은 CES 2026에서 구체적인 기술과 수치로 드러났다. 현대위아는 이번 CES에서 ITMS와 쿨링 모듈, 슬림 HVAC 등 열관리 핵심 부품 3종을 공개하고, 오는 2032년까지 글로벌 모빌리티 열관리 전문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전기차 열관리의 '두뇌'로 불리는 ITMS에는 세계 최초로 10개 포트를 갖춘 '데카 밸브(Deca Valve)' 기술이 적용됐다. 이를 통해 배터리·구동 모터 냉각과 실내 냉·난방 등 7가지 작동 모드를 유연하게 구현했으며, 기존 대비 부품 수를 30% 줄이고 공간 활용성은 15% 개선했다.
두 개의 라디에이터를 하나로 통합한 쿨링 모듈은 두께를 20% 줄이고 무게를 7% 경량화했으며, 배터리와 전력전자(PE) 시스템을 동시에 냉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70도까지 기울어진 구조로 공기 흐름을 극대화해 냉각 성능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면부 여유 공간을 늘려 프런트 트렁크 활용도를 높였다.
기존 HVAC 패키지 대비 높이를 30% 이상 줄인 슬림 HVAC 역시 공간 활용성과 전비 개선을 동시에 겨냥한 제품이다. 풍량과 소음을 개선하고 3존 개별 공조를 구현해, 전기차 실내 환경의 질을 끌어올렸다.

현대위아는 이러한 열관리 부품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조 전문사로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친환경·고효율·쾌적성을 모두 갖춘 통합 열관리 시스템을 지향하며,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제어와 친환경 냉매 적용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창원 공장 내 공조·냉각 부품 생산 설비 구축과 함께, 열관리 연구를 본격화한 2021년 이후 관련 신규 특허 출원 건수도 약 6배 증가했다.
이처럼 두 회사는 전기차 시대 열관리 기술이 나아갈 서로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한온시스템이 글로벌 고객 기반과 히트펌프·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범용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면, 현대위아는 ITMS를 중심으로 한 모듈 통합과 공간·전비 개선을 통해 시스템 공급사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서는 배터리 성능만큼이나 열을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주행거리와 실내 품질을 좌우한다"며 "히트펌프와 통합 열관리, 공조 모듈의 설계 수준이 차량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