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일리야 말리닌(22·미국)이 올림픽 피겨의 금기였던 백플립(뒤 공중제비)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반세기 동안 규정집 속에 봉인돼 있던 백플립이 세상에 다시 나오는 순간, 밀라노 아이스링크는 관중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와 함성으로 가득찼다.
말리닌은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 막판 백플립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피겨에서 백플립이 지워진 역사는 길다. 1976년 인스브루크 대회에서 미국 테리 쿠비카가 처음 선보인 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선수 보호와 부상 위험을 이유로 이듬해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머리나 목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피겨가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한 발 착지' 미학과도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후 백플립을 시도한 선수는 성공해도 2점 감점을 감수해야 했고, 공식 경기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금기 이미지를 굳힌 것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다. 프랑스의 수리야 보날리는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심판진을 향한 무언의 항의로 감점을 감수하고 백플립을 강행했다. 흑인 여성인 자신이 판정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느껴온 보날리는 금지 기술을 일부러 선택해 뒤로 한 바퀴를 넘었다. 이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저항"이라는 말과 함께 피겨 역사에 길이 남았다.
피겨의 기술 수준과 흥행 양상은 이후 빠르게 발전했다. 쿼드 점프는 일상이 됐고, 말리닌이 쿼드 악셀까지 완성하면서 "이 정도 난이도의 점프를 허용하면서, 백플립만 위험하다고 묶어둘 수 있나"라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결국 국제빙상경기연맹(ISU)는 2024년 총회에서 백플립을 포함한 소머솔트 계열 점프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백플립은 여전히 별도 기술점이나 가산점이 붙지 않지만, 최소한 '성공해도 감점'의 낙인은 지워졌다.
말리닌은 그 새 규정을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시험한 첫 올림픽 스케이터가 됐다. 이날 그는 쿼드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트리플 악셀, 쿼드 러츠 등 고난도 점프를 배치한 뒤, 연기 후반 속도를 줄이더니 갑자기 뒤로 몸을 던졌다. 양발이 얼음 위에 정확히 꽂히는 순간 밀라노 경기장에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채점표는 냉정했다. 말리닌의 점수는 98.00점으로 가기야마 유마(일본·108.67점)에 이어 2위였다. 백플립에는 기술점이 붙지 않고, 쿼드 러츠 언더로테이티드와 스핀 감점이 겹치며 간격이 벌어졌다.

그래도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선수는 말리닌이었다. 그는 경기 후 "관중들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환호했다. 올림픽 무대의 무게감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 순간"이라고 말했다. 쿼드 악셀로 남자 싱글의 난도를 끌어올린 '쿼드 갓'이 이제는 백플립까지 품으며, 피겨가 어디까지 모험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날이었다.
보날리가 규정을 거슬러 백플립을 '저항'의 상징으로 썼다면, 말리닌은 같은 기술을 '합법적 자유'의 언어로 다시 써냈다. 1976년 쿠비카의 실험, 1998년 보날리의 반항, 2024년 규정 개정을 거쳐 2026년 밀라노 팀 이벤트의 한 장면으로 이어진 긴 스토리는 이렇게 피겨의 새로운 역사로 새겨졌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