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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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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14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근현대사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정치 정체성'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4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저는 1965년 5월 18일(양력) 충남 금산군에서 10남매중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는 전남 강진군에서 역시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1921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922년 전북 금산에서 태어났습니다.(그 때는 금산이 전북이었고, 1963년부터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꼬마 신랑에게 대둔산을 넘어 사십리를 걸어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산모퉁이 돌면 마을 나올까, 저 산모퉁이 돌면 마을이 나올까...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낯선 땅 낯선 신랑에게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는데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맞절하다가 살짝 훔쳐보니 저하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아들 낳고 마흔다섯 살에 10번째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열 명을 낳았는데 저는 호적에 5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1939년생 큰 형님과 1953년생 둘째 형님 사이 14년 동안 다섯을 잃었습니다. 아이 낳고 첫돌 지나서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되면 홍역이 와서 데려가고, 데려가고, 데려가고 그래서 다섯을 연거푸 어머니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아기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가 죽으면 아버지는 하얀 천에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갔습니다.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가슴 속 무덤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다섯 아기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기 무덤을 어머니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갑니다. 생떼같은 남편이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3년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석탄을 캤습니다. 강제징용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은데 아버지는 다행히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 한푼 없이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다들 고생이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죽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마을이고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입니다. 평지가 거의 없고 산동네 다랭이 논농사를 하는 산도 높고 골짜기도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험하다는 것은 인민군 빨치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국군이 지매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동네입니다.

어머니는 무학이라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말씀이 청산유수이고 삶의 지혜가 많아서 동네에서는 '변호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군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중립외교, 균형외교를 했습니다. 낮에는 국군을 돕고 밤에는 몰래 인민군도 도왔나 봅니다. 해가 지면 인민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밥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민군들은 총을 들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집 앞 논바닥에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국군 편을 더 드는 반동으로 몰려서 즉결 처분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인민군에 결박당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인민군 총살장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습니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골로 갔습니다. 이 곳에 끌려가면 걸어 나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시신을 수습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 10시쯤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사립문을 열며 "나 왔어~"라는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어머니가 방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어머니는 기절초풍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 촉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둘러업고 솥단지 하나만 빼내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와 4km 야간 산행을 했습니다.

면소재지 지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끌려가 총살장에서 죽을뻔 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인민군에게 협력하겠다고 해서 살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용서해달라." 그러나 경찰은 믿지 않았고 아침에 인민군 부역혐의로 이제 군군에게 총살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을 설득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우리 집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1950년대 중반 큰 아들이 새로 생긴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큰 형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납부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퇴를 시키러 아버지가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가 등록금을 내 줄테니 중학교는 졸업시킵시다"고 했답니다. 어버지는 끝내 그럴 수는 없다며 공부 잘 하는 큰 아들 손을 잡고 학교를 자퇴시켰습니다. 아들이 학교 갈 시간에 아버지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런 큰 아들이 장성해서 장가를 갔습니다. 형수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어머니와 똑같은 코스로 대둔산 산길 사십리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큰 며느리가 첫 손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큰 며느리보다 5개월 늦게 저를 갖고 말았습니다. 첫 손주 해산을 돕고 며느리를 돌봐야 할 시어머니가 임신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했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저를 지우려고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막상 산부인과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며느리 배를 보니 남산만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산부인과 가서 저를 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억 납니다. "어머니 두 분이 좋아서 저를 가질 때는 언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저는 뱃속에에서 제 생애 첫 번째 투쟁, 생존권 투쟁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세요" 수술대에 누웠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요동을 치고 노는데 얘를 떼면 내가 큰 벌을 받겠구나 싶어서 수술 중지를 외치고 낳은 것이 접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외할아버지는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배우면 못 쓴다'고 공부를 안 시켰답니다. 먼발치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까지 혼자 뗐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운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농사일로 고단할 텐데도 밤에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뗐습니다. 제가 일곱살이 되자 어머니는 저에게 가나다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저는 한글을 깨우치고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쓰고 학교 가던 시절이라 저는 신동의 탄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 봐"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고 칠판에 백묵으로 "정 청래" 이렇게 글씨를 쓰자 선생님께서 "정청래 반장"이라며 저를 반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다 어머니 심모원려 덕분입니다. 반장이 되니 6학년 누나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책·걸상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날씨판에 맑은 날이면 햇님, 비가 오면 우산, 흐린 날에는 구름을 붙이고 한 시간 늦게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여름방학 한달 내내 나의 첫 번째 정치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개학날 아침 조회 때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인사를 안 하냐고 혼을 낼 기색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반장직을 사퇴 합니다" 그러지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너는 미성년자이니 자기 결정권이 없다. 어머니 모시고 와라"

"어머니 저 반장 사퇴하고 왔어요" "뭐라고 내가 너 반장시킬려고 을매나 고생했는데 안 된다 안 돼. 누구 맘대로 반장을 그만둬. 너 이 놈의 자식..." 하면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내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 기세로 뛰어오셨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는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마을 뒷동산까지 도망가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밥 먹으로 오라고 동네 한바퀴를 하며 저를 부르고 다니셨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군 장병과 거수경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초딩 1학년 짜리가 밤이 깊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러 다녔습니다. "청래야 밥 먹어라"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밤이 되면 옆집 부부싸움까지 다 들립니다. 큰 산소에서 몸을 숨겨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각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청래야, 그까짓 것 반장 안 해도 된다. 얼른 밥 먹으러 와라" 어머니를 믿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누구 맘대로 반장 그만두냐.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돌변해 어머니가 완고했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첫 단식투쟁으로 맞섰습니다.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밥을 안 먹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 그까짓 것 반 장 안 해도 된다. 학교 가자"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우리 아들 반장 사퇴를 어머니로서 인허가 합니다"고 말씀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산골 오지 시골 깡촌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저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직 물려받지 못한 산에 아버지는 불을 질러 곡괭이 하나로 밭을 일궜습니다. 아버지는 화전민이었습니다. 집에 1km쯤 떨어진 산에 6천평의 밭을 일궜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밭에 가셨고 해가 지고 껌껌해서야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반공일과 공일이면 어김없이 산과 들, 논과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겨울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꼬마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소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는 담당은 제 몫이었습니다. 소 풀을 뜯기러 다니다 쇠죽을 끓이면서 마늘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늘을 많이 먹었고 금산 인삼농사를 지으며 인삼 잔뿌리를 그렇게 많이 먹어서 제가 건강합니다. 학교에 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 가난한 동네입니다. 운동화는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신어봤고 바리깡의 빡빡머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나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사진은 중3 때 모습)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옷차림은 얼굴처럼 까만색, 아니면 흰색이었습니다. 때꼬장물이 흐르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한 여름이면 맨발로 다니고 둠벙에서 옷 안 입고 멱을 감았습니다. 축구도 맨발로 했습니다. 그때는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팠습니다.

6학년 때 서울에서 한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 동네 조그만 교회로 부임한 전도사 집 딸이었습니다. 내가 본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가위로 싹뚝 자른 단발이 아닌 웨이브가 약간 있는 긴머리에 피부는 복숭아 빛처럼 빛났고 옷은 흑백 단색이 아니라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숄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에 눈을 검고 컸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지난달 월례고사 시상식이었습니다. "우등상 정청래" 상을 받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그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전학 오자마자 처음 들은 이름이 정청래고,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정청래임이 분명합니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같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선녀가 하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검은 눈과 나의 검은 얼굴 속에 박힌 내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나의 가슴은 한없이 뛰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이고 찰나에 오는 것임을 나는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 아이도 나의 존재를 또렷이 기억했을 겁니다.

"아부지, 저 내일 모레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요. 네~ 이번 주만 일 안하고 교회 보내 주세요. 저 꼭 교회에 가야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야~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안 돼 이번 주 일요일에는 콩타작 하는 날이다. 너는 밭에서 콩을 지게 지고 날라라. 그래야 내가 타작을 하지..."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1km쯤 떨어진 콩밭에서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작업 분량이 있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집 마당과 콩밭을 오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필이면 12시 쯤 교회가 끝나고 그 아이가 빨래터로 오고 있고 나는 빨래터를 지나 집 마당으로 콩줄기를 지고 갑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얄궂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헐떡헐떡 막히고 때꼬장물 흐르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또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의 옮기기 싫은 발걸음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그 아이와 내가 10m쯤 가까이 왔을 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람이 홱~불어서 지게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지게의 끝을 작대기로 부여잡고 온몸으로 무너져 가는 지게를 지탱하고 있는 순간 지게도 무너지고 나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아이 바로 코 앞에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멘붕이 왔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게를 벗고 개구리처럼 이마를 땅에 대고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던말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가 나를 본 것도 무효처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땅에 대고 엎으려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너 정청래지, 괜찮아" 나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의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다니. 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내가 다쳐서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제발. 그 아이는 계속 내 곁을 지키고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계속됩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2.09 pangbin@newspim.com

제미나이의 해석

정청래 의원이 2026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헌사와 자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분석한 이 메시지의 핵심 의미와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글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6·25 전쟁, 그리고 극한의 빈곤을 모두 겪어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생존의 지혜: 무학(無學)이었음에도 '변호사'라 불릴 만큼 명석했던 어머니가 인민재판과 총살 위기에서 남편을 구출해내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의 의지'임을 보여줍니다.

상실의 아픔: 10명의 자녀 중 다섯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아장살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하며 그 시대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보편적인 한(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

이 글은 정 의원이 왜 지금의 성격과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이기도 합니다.

투쟁의 시작: 낙태 위기에서의 '생존 투쟁',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 사퇴 투쟁'과 '단식투쟁'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강단 있는 기질이 모태에서부터,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정무적 감각: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과 '균형 외교'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3.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

명절은 가족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막내들의 만남: 10남매 중 막내인 자신과 아내의 배경을 언급하며 가난했지만 북적였던 옛 시절을 소환합니다.

성장 소설 같은 서사: 짝사랑하던 전학생 소녀 앞에서 지게를 지고 넘어졌던 부끄러운 기억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해 '정치인 정청래'가 아닌 '인간 정청래'로서 대중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요약과 결론

결국 이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대의 고통을 지혜와 눈물로 이겨낸 어머니였다"는 감사와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비극적인 현대사(강제징용, 6·25)와 개인적인 성장사(가난·첫사랑)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그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계속됩니다'라는 예고는 이 서사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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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노소영에 9440억 지급" 판결 [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법원이 '세기의 이혼'이라고 불리는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는 24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등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을 열고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9440억원과 판결이 확정된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양측의 법적 다툼이 시작되고 9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파기환송심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SK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지 여부와 '재산분할 기준 시점'이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하면서 분할 대상으로 판단했다. 재산분할 비율은 노 관장 3분의 1, 최 회장 3분의 2로 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분할 대상 주식의 가액을 산정하는 시점은 이혼소송의 사실심(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16일, SK 주가가 약 16만원대였을 당시를 기준으로 책정했다. 항소심 변론종결일 이후부터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2026년 6월 26일) 사이 SK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이는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반소피고(최태원)의 보유 주식이 부부공동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최 회장 보유 주식의 가치 상승에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있음을 고려했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대법원 환송판결과 같이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은 분할 대상 재산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노태우 지원금 300억원은 최 회장 보유 주식의 형성이나 가치 유지에 대한 노소영의 기여나 재산분할비율 산정에서 참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아울러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전 경영권 유지와 경영활동 일환으로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은 분할 대상 재산에서 제외했다.  이날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입장문을 통해 "약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작년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되었고 오늘 재산분할의 파기환송심 판결이 있었다"라며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하여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며 재상고 의사를 밝혔다. 노 관장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편 두 사람은 지난 1988년 결혼해 세 자녀를 뒀지만 파경을 맞았다. 지난 2015년 최 회장이 혼외 자녀 소식을 언론에 알리고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결렬됐다. 이듬해인 2018년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노 관장도 이혼에 응하겠다며 2019년 12월 맞소송했다. 이혼 소송 1심 재판부는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원과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지만 양측 모두 불복했다. 이후 2024년 5월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보고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국내 이혼소송 사상 최대 규모다.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에 상당 부분 기여한 점, 노 관장의 가사와 자녀 양육 등이 가정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본 결과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위자료 20억원은 확정했지만, 재산분할은 파기환송하고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불법 자금이라 노 관장의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봤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100wins@newspim.com 2026-07-2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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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원내대표 멱살잡이 소동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이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정을 둘러싼 내부 충돌로 혼란에 휩싸였다. 상임위원회 배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등 혼란이 연출됐다. 정점식 원내대표가 24일 원내대책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정희용 사무총장이 공개 비판에 나섰다. 당사자로 지목된 권영진 의원은 이후 입장문을 내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저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정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들께 부끄럽고 한편으로 동료 의원으로서도 참담한 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앞서 권영진 의원이 전날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을 찾아 상임위 배정 문제를 두고 정 원내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원내대표실 밖 취재진에게 들릴 정도로 고성이 오갔고, 멱살잡이 등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권 의원은 당초 정보위원회 배정을 희망했으나 최종적으로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 배정되자 원내지도부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임위 배정 과정에서 의원들의 희망 상임위와 전문성, 선수 등을 반영하는 기준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희용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7.24 mironj19@newspim.com 정 사무총장은 "상임위 배정에 불만을 품은 의원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급기야 한 의원은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았고, 이를 말리던 전임 원내대표의 멱살까지 잡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항의와 물리적 행위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며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정 사무총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원들께서는 훼손된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거리에서, 현장에서 싸우고 있다"며 "이때 우리 당은 품격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그러면서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정 사무총장은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당의 명예와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장동규 기자 =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7회 국회(임시회) 제02차 본회의에서 신동욱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2026.07.23 jk31@newspim.com 그는 회의에 불참한 정 원내대표를 향해서도 "지금 우리 당에는 원내대표님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흔들림 없이 대여 공세를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국민의힘 사무처 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항의와 폭력은 다르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국민의힘 사무처 노동조합은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등 당내에서 발생한 폭력적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힘에서 치열한 이견과 항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상임위원회 배정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면 대화와 당내 절차로 해결했어야 한다"며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것은 책임 있는 국회의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단도 입장문을 내고 이번 사태에 대한 엄정 대응을 촉구했다. 원내부대표단은 "국민을 대표하고 민의를 받드는 국회에서, 그것도 당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폭력 사태가 발생한 것은 참담함을 넘어 당의 품격과 국회의 권위를 무너뜨린 전대미문의 오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를 만류하던 전임 원내대표까지 멱살을 잡았다는 사실은 묵과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단은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 = 뉴스핌 DB] 논란이 확산되자 권 의원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사과 입장문을 보냈다. 권 의원은 "어제 원내대표실에서 행한 저의 언행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저의 부족함이고 잘못이었다"고 밝혔다.그는 "이로 인해 정점식 원내대표님께 큰 결례를 범하고, 리더십에 상처를 드렸다"며 "저의 불찰과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했다.이어 "이 사실을 접하고 실망과 참담함을 느끼셨을 동료 의원님들과 당원 동지들, 그리고 국민들께도 깊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oneway@newspim.com 2026-07-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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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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