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접근 차단해 불체자 생활기반 붕괴 의도
[워싱턴=뉴스핌] 박정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단속의 새로운 무대로 은행을 지목하고 나섰다. 행정명령을 통해 은행에 모든 고객의 시민권 여부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권과 외국인 거주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은행 고객의 시민권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의 국경 단속과 물리적 검거 중심의 단속 전략을 넘어, '금융 접근'을 차단해 불법 체류자의 미국 내 생활 기반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 금융권 "전례 없는 요구"…시민권 확인 의무화 논란
현재 미국 금융기관은 자금세탁과 범죄 방지를 위해 '고객확인의무(KYC)' 제도에 따라 여권이나 사회보장번호(SSN) 등을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시민권 여부를 별도로 분류하거나 정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다.
행정명령이 실제 시행될 경우, 은행들은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 모두에게 시민권 증빙 서류를 요구해야 하며, 시민권이 확인되지 않는 고객은 계좌 유지에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은 "전례 없는 과도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법상 비시민권자라도 합법 체류 중이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은행이 사실상 '이민 단속 대리인' 역할을 부담하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데다,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재검증해야 하는 은행권에 전례 없는 행정적·비용적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미네소타 복지 사기 사건이 기폭제
이번 조치 검토의 배경에는 최근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소말리아계 이민자들의 대규모 복지 사기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허위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수십억 달러의 정부 지원금을 빼돌리고, 상당액을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는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으며, 지난 1월 FinCEN은 미네소타 일부 지역의 송금 한도를 기존 1만 달러에서 3000 달러로 대폭 낮추는 등 감시를 강화했다. WSJ는 이번 행정명령 검토 역시 이러한 '자금 흐름 단속'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분석했다.
◆ 백악관 "추측성 보도" 일축…유학생 등 금융불편 우려
백악관은 이번 보도에 대해 "공식 발표되지 않은 정책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불법 이민을 근절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온 만큼, 재무부 내부에서는 이미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유학생, 주재원 등 합법 비자 소지자들에게도 금융 서비스 이용의 큰 불편이 초래되는 등 한·미 간 인적 교류와 경제 활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민정책연구소(MPI)에 따르면 펜데믹 직전인 2019년 기준 미국 내 한국 출신 이민자는 약 103만9000 명으로, 이 가운데 66%인 약 68만9000 명이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추정치 기준으로는 약 17만3000 명의 한국계 이민자가 미등록 체류자로 분류돼, 미국 내 전체 불법 이민자 약 1100만 명의 2%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금융시스템을 활용한 단속이 현실화될 경우 한인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dczoomi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