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세이모어 번스타인 교수가 4월 30일 미국 요양원에서 99세로 별세했다.
- 1927년생 그는 한국전쟁 중 300여 차례 위문공연을 펼쳤고 무대 공포증으로 1977년 연주를 마감했다.
- 뉴욕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며 다큐멘터리로 재조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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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교육자로 한 세기를 살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 전 뉴욕대학교 교수가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메인주 다마리스코타의 요양원에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향년 99세.

1927년 4월 24일 뉴저지 뉴어크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세 살 때 이모 집 방문 중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훗날 그는 "피아노 건반 몇 개를 두드리는 순간, 삶의 비밀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여섯 살에 정식으로 레슨을 시작한 그는 이후 알렉산드르 브라일로프스키, 클리퍼드 커즌, 나디아 불랑제, 조르주 에네스쿠 등 당대 거장들 밑에서 수학했으며, 1969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빌라-로부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세계 초연 무대에 서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번스타인의 삶에서 한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51년 4월 24일,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아 미 8군 보병으로 한국전쟁에 파병된 그는 이후 8개월간 전쟁터를 누비며 300여 차례 위문 공연을 펼쳤다. 그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연주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당시를 돌아 보기도 했다. 1960년 미 국무부 지원으로 재방한했을 때에는 4·19 혁명이 일어나 콘서트가 전면 취소되자,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해 피아노를 병원으로 옮겨 연주를 이어가기도 했다.
번스타인은 어떤 호평으로도 가라앉지 않는 극심한 무대 공포증을 평생 안고 살았다. 결국 1977년 50세에 뉴욕 92번가 Y에서 마지막 공개 연주를 한 뒤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를 거점 삼아 뉴욕대학교 음악·음악교육학 부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했다. 저서 '두 손으로'와 '건반 코레오그래피 20강'은 독일어·일본어·한국어·러시아어로 번역됐다.
번스타인은 2014년 배우 이선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시모어: 소개'로 대중에게 다시 주목받았다. 이 작품은 음악, 가르침,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철학을 담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finevie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