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파리 한식당 맛있다 정기범 대표가 10일 한식의 다음 단계를 제시했다
- 김치·된장·전통주를 생산자와 지역까지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맛과 문법을 현지에 맞춰 한식의 문화화를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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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넘어 된장·청국장도…"맛·경험 함께 제공해야"
2호점엔 청국장 부대찌개·전통주…한식 외연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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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장류, 전통주 등 한국의 전통 먹거리가 미식의 수도 파리에서 새로운 맛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인마트와 한식당을 넘어 현지 대형마트와 백화점 식품관까지 한국 식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5년, 한국의 맛은 프랑스인의 식탁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뉴스핌>은 파리 현지의 식당과 수입·유통업체 등을 직접 찾아 한국 전통식품의 현재를 살펴보고, 유럽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식문화로 자리 잡기 위한 가능성과 과제를 짚어본다. [파리에서 만난 한국의 전통] 기획시리즈 5부작 ① 간장 수출 1년 새 3배로…프랑스 식탁 파고드는 'K-발효' |
[프랑스=뉴스핌] 김기랑 기자 = "좋은 와인을 소개할 때 생산자와 떼루아(Terroir)를 이야기하듯 앞으로는 한국의 된장과 간장, 김치와 전통주도 생산자의 이름과 지역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10일 방문한 프랑스 파리의 한식당 '맛있다(MA-SHI-TA)'. 이날 만난 맛있다의 정기범 대표는 한식의 다음 단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김치와 비빔밥, 불고기 등 몇몇 대표 음식의 이름을 알리는 데서 나아가 어떤 지역에서 누가, 어떻게 만든 식재료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1996년부터 파리에서 생활했다. 여행과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여러 문화를 접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21년 파리 14구에 '맛있다'를 연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정 대표는 "처음부터 단순히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그대로 옮겨놓는 식당보다는 한국 음식이 가진 맛과 문화적 배경을 프랑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치즈·와인의 나라에서 만난 김치·된장…"발효는 좋은 접점"
정 대표가 프랑스에 소개할 한식의 핵심으로 주목한 것은 '발효'다.
한국에는 김치뿐만 아니라 된장과 간장, 고추장, 청국장, 식초, 매실청 등 발효와 숙성을 거쳐 만들어지는 식재료가 많다. 얼핏 프랑스인에게 생소한 음식처럼 보이지만, 정 대표는 오히려 여기에서 두 나라 음식문화의 공통점을 찾았다.
정 대표는 "발효라는 것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라며 "치즈와 와인, 샤퀴트리처럼 프랑스 음식문화 역시 발효와 숙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발효가 한국 음식과 프랑스 음식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접점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장이나 김치를 단순히 맵고 강한 맛의 재료로 소개하기보다는 시간과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깊은 맛, 즉 한국의 또 다른 발효문화로 설명하면 프랑스 손님들도 훨씬 흥미롭게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맛있다에서는 강원도산 김치와 한국에서 생산된 된장·매실 등 한국 식재료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모든 재료를 한국산으로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육류와 채소 등 프랑스와 유럽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식재료는 현지산을 활용한다.
기준은 '한국산이냐 아니냐'보다 그 음식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재료인지 여부다.
정 대표는 "김치나 된장, 매실처럼 한국 음식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재료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며 "된장은 단순히 콩을 발효시킨 소스가 아니라 지역과 생산자, 메주를 만드는 방법, 발효 환경과 숙성 기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산 식재료를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히 원산지가 한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재료인가'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제 김치 설명 안 해도 알아"…된장·청국장으로 넓어진 한식
현지 소비자들의 인식도 차츰 달라졌다. 정 대표가 식당을 연 2021년만 해도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과 종류가 제한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유통망이 넓어지면서 김치·고추장·된장 등 기본적인 식재료를 프랑스에서도 훨씬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소비자의 변화는 더 빠르다고 평가했다. 이에 관해 그는 "예전에는 손님들에게 '김치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김치를 알고 찾아오는 프랑스 손님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김치볶음밥이나 김치를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처럼 발효의 산미와 감칠맛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반응도 좋다는 설명이다.

K-팝과 영화, 드라마 등을 계기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소비자들이 한국 음식으로 관심사를 넓힌 영향도 있다. 불고기와 비빔밥뿐 아니라 김치찌개와 잡채, 떡볶이, 막걸리 등을 이미 알고 식당을 찾는 손님도 많아졌다.
아직 김치에 비하면 된장이나 청국장의 인지도는 낮다. 그러나 정 대표는 낯선 냄새나 맛을 먼저 강조하기보다 '발효된 콩이 만들어내는 감칠맛과 숙성의 맛'으로 설명하면 프랑스 소비자도 흥미를 보인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결국 중요한 것은 맛뿐 아니라 그 맛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맛 바꾸는 대신 '먹는 문법' 바꾼다…생제르맹서 두 번째 실험
현지화에 대한 정 대표의 접근법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소비자에게 맞추기 위해 한식 자체의 맛을 바꾸기보다 한식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매운맛을 무조건 줄이거나 단맛을 높여서 익숙한 맛으로 만드는 방식보다는 한국 음식의 중심적인 맛은 유지하면서 표현 방법을 조금 다르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은 프랑스산·유럽산 육류와 제철 채소를 사용하되 양념과 장은 한국의 방식을 유지하는 식이다. 반대로 한 상 가득 음식을 내는 방식 대신 작은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아 제공하는 등 서비스 방식은 파리의 식문화에 맞게 바꿀 수 있다.
정 대표는 이를 두고 "제가 생각하는 현지화는 맛을 프랑스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한식을 편안하게 경험할 수 있는 문법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런 실험은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에 문을 열 예정인 맛있다 2호점에서 한 단계 더 확장된다.
대표적인 메뉴가 기순도 명인의 분말 청국장을 활용한 부대찌개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탄생한 부대찌개에 전통 발효식품인 청국장을 접목해 한 접시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정 대표는 "단순히 대표적인 한식 몇 가지를 소개하기보다는 지금 한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오래된 한국의 발효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한식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새 매장에서는 된장과 매실, 김치뿐 아니라 한국 전통주도 적극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음식 하나를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재료를 만든 지역과 사람, 술과 음식의 관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생각하는 한식의 다음 단계도 여기에 있다. 한국 음식의 이름을 아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과 생산자, 재료와 만드는 방식의 차이를 구분하는 단계다.
그는 "프랑스는 생산자와 지역, 계절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한식이 가진 발효와 계절성, 지역성, 생산자의 이야기는 프랑스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 사람이 된장 한 숟가락을 맛보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과 지역을 궁금해하고, 한국의 전통주 한 잔을 마시면서 어떤 쌀과 누룩으로 만들었는지를 묻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라며 "그것이 한식이 프랑스에서 하나의 유행을 넘어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