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괜한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CJ그룹 한 임원)
"알지도 못했고, 그런 일을 벌일 이유도 없습니다."(삼성그룹 한 임원)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출처 불명의 괴문건이 삼성과 CJ의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가 형제간 소송과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미행사건의 감정대립이 또 다른 국면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CJ는 괴문건의 유포자로 삼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미행사건 때처럼 조직적인 행동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해 멘트는 자제하고 있지만 화가 잔뜩 나있다.
삼성은 CJ의 이런 의심의 눈초리에 대응할 필요성이 없다는 분위기다. 괜한 오해로 생사람 잡는다는 속내가 느껴진다.
24일 CJ,삼성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 문건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법 시행령 개정 추진의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A4용지 3장 분량이다.
방통위는 지난 2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문건은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실 일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은 첫장에 이계철 방통위원장 등이 참석한 지난 7월3일 상임위 논의 내용과 향후 일정 등을 담고 있다. 둘째장과 셋째장에는 이번 개정이 CJ에게 어떻게 특혜로 돌아가는 지에 대한 주장을 적고 있다.
결국 핵심은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CJ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혜설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방통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특정 PP(프로그램공급자)의 매출 제한을 PP 전체매출 총액 33%에서 49%로 완화' 하는 내용과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가입자수를 전체 SO 가입자의 1/3 이내 제한하던 것을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전체 가입자의 1/3 이내로 완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건에서는 '명분은 규제완화를 통한 국내 컨트츠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으나 본질과 결과는 1위 업체의 독점체제 강화로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PP의 매출 규제를 완화하게 되면 PP업계 1위인 CJ E&M은 매출을 더욱 상향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 현재 CJ E&M 매출은 전체 PP 매출총액의 29.2%에 달한다.
더불어 MSO의 가입자 제한을 완화하면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이 가입자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문건에 따르면 CJ헬로비전의 가입자는 347만명으로 전체 가입자 중 23.2%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SO 가입자수 1493만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는 완전독점체제의 명분이 생긴다고 문건은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문건은 MSO인 CJ헬로비전의 상장을 앞두고 주가 부양을 위한 규제완화 조치로 인식한다거나 정권 교체 이전에 CJ를 키워 주려는 특혜 의혹이라는 등의 특혜설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방송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CJ의 수혜, 내지는 특혜라는 것이다.
이 문건은 국회 주변에서 외부로 흘러 나왔다. 하지만 이 문건을 전달받은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실에서조차 누가 문건을 놓고 갔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CJ 측도 나름 의심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문건의 폰트가 삼성이 사용하는 정음글로벌(훈민정음)으로 작성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나, 문방위 소속 일부 의원 보좌관에게 삼성 대관 담당자들이 방문해 이 문제를 부각시켜줄 것을 요청했다는 증언 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CJ의 한 관계자는 "이미 삼성이 이번 개정안의 입법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몇몇 언론을 통해서도 포착된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미디어 사업에 이렇다 할 지분이 없는 삼성 입장에서는 '반 CJ' 로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로비에 대한 인식이 안좋은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법안에 대해 로비를 펼친다면 당연히 그 배경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경제민주화' 관련 로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결국 양측의 주장과 반박이 맞서면서 삼성과 CJ의 갈등은 오너가의 소송에 이은 새로운 모양새로 부각되고 있다.
괴문건의 출처에 대한 진실은 차치하고라도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소송에서 비롯된 양측의 갈등이 사업적 측면에서도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뒷따른다.
재계의 한 고위 인사는 "앞으로 삼성과 CJ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소한 악재나 음해에 대해서도 서로를 의심하게 될 것"이라며 "삼성 미행사건 이후 수면아래에 있던 갈등이 여러 방면에서 표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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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