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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열 아들’보다 나은 박근혜 당선인의 ‘위기’

기사입력 : 2013년01월31일 16:48

최종수정 : 2013년02월01일 21:15

-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서 국민들과 소통하라

“아들이 주식이라면 딸은 양념이야. 딸이 살갑게 하고 재밌긴 해도 아들처럼 의지할 수는 없잖아!”

며칠 전 형님 댁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다.

한 자녀, 혹은 1남1녀가 대부분인 요즘과 달리 8남매를 키우신 어머니의 말씀이니 작금의 세태나 가치관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적잖은 자녀를 건사하신 아흔에 가까운 어머니의 경험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 당선인 때문이다.

어머니께 직접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딸을 양념이라고 비유한 당신께서도 대통령이 된 박 당선인을 보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옛 산아제한 정책이 생각나진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상 남자라면 쩨쩨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어머니다.

◆ 박근혜 당선인이 처한 대내외 위기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낙마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왼쪽)과 박근혜 당선인.[인수위 사진기자단]
그런데 못난 아들들도 해내지 못한 자랑스러운 대통령에 선출된 박 당선인이 취임식도 갖기 전에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빠졌다.

나름대로 무난한 인선이라고 생각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부동산과 자녀 병역비리 의혹 등으로 청문회장에도 서보지 못한 채 낙마했다.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인 이동흡 후보자 역시 공금유용 등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돼 낙마 일보 직전이다. 형식적으론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하나 박 당선인의 동의가 전제된 것이기에 박 당선인의 인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셈이다.

여기에 박 당선인이 희망한국을 만들겠다며 야심찬 청사진으로 제시한 정부조직개편안마저 통상분리 문제와 미래창조과학부의 불분명한 정체성으로 인해 정부와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박 당선인이 당면하고 있는 대외상황은 더 엄중하다.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이용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북한에선 3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북적대시전략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북한발 핵실험 강행 방침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시키고 있다.

영토분쟁과 과거사 문제로 껄끄러운 일본에선 아베 내각이 집권한 이후 엔저(低) 정책을 앞세워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예봉을 무너뜨리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새로운 강대국 관계)’와 ‘돌돌핍인(咄咄逼人: 막강한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거침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정책)’을 내세우며 대외관계에서 핵심 국익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한국이 의지하는 유일한 혈맹인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당면한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는 데 여념이 없다.

‘만사올통’ 등으로 대표되는 친인척 비리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박 당선인을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다.

아직은 대통령 당선인과 언론 간의 밀월을 의미하는 허니문 기간이지만 만약 친인척 비리라도 드러나는 경우에는 박 당선인 주변을 향하고 있는 칼끝이 언제 본인에게 겨눠질지 모른다.

◆ 박 당선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권력자

이처럼 엄중한 첩첩산중의 위기상황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박 당선인만큼 입법·사법·행정·언론을 모두 장악한 권력자는 없었다.

박 당선인이 불통과 밀실, 독선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보안을 최우선시하며 ‘나홀로 인사’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에도 이 같은 권력이 배후에 있다는 자신감 이 깔려 있다.

그러나 권력의 산이 높고 구중궁궐이 깊을수록 계곡은 깊어지고 국민과의 소통은 멀어질 뿐이라는 것을 박 당선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취임식을 25일 앞둔 박 당선인에겐 오히려 취임 전에 다양한 위기들이 전개되고 돌출된 상황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전제는 박 당선인의 변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보도한 ‘독재자의 딸(Strongman’s Daughter) 박근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최초로 선출한 ‘여성대통령 박근혜’다.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여성다운 겸손함과 따뜻함으로 국민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필 수 있을 때 국민들도 박 당선인이 앵커로서 키를 잡은 ‘희망한국호’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명심보감 정기편에는 ‘勤爲無價之寶 愼是護身之符(부지런함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요, 신중함은 몸을 보호하는 보증)’이라는 글이 있다.

박 당선인이 살아오면서 마음에 담고 살아왔을 법한 경구다. 박 당선인은 근(勤)과 신(愼)을 바탕으로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한 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키는 박 당선인에게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정경부장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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