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확산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중요한 정책으로 등장했다. 앞으로 10년간 협동조합 수를 8000개까지 확대하고 서울내 총생산(GRDP)의 5% 규모인 14조 3700억원을 협동조합을 통해서 생산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민 1인 1개 협동조합에 속하도록 만드는 것이 박원순 시장의 꿈이다.
그의 꿈이 실현된다면 서울 시민들은 사회적으로는 마을공동체에 속해서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면서 살게 되고, 경제적으로는 최소한 1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속해서 돈을 벌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대표적 기업조직인 주식회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같은 사람에게 투자금액에 따라서 의결권이 정해지는 주식회사 제도는 자본의 지배를 받는 비정한 제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협동조합은 모든 조합원이 협동을 통해서 일을 하는 인간적인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은 200년 전부터 시작된 공산주의 운동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 왔다. 영국의 낭만적 공산주의자였던 로버트 오웬이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주식회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인 셈이다. 박원순 시장도 모든 서울 시민을 협동조합 구성원으로 만듦으로써 자본주의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동조합을 대단히 불온한 조직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한국은 자유사회 아닌가. 협동조합이든 합명회사든 주식회사이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어떤 형태의 조직이라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출자금과 관계없이 사이좋게 뜻을 모아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5인 이상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협동조합들이 존재한다. 특히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업활동의 영역에서는 협동조합을 찾기 어렵다. 법으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던 것은 그 조직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생협처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소규모 사업을 할 때에 적당하다. 이런 조직에서는 이심전심으로 협조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규모의 투자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주식회사처럼 싸고 좋은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지 못한다.
협동조합은 또 걸려 있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을 때에 적당하다. 걸고 있는 이익이 커자면 조합원들이 우정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선택하게 되고 의사결정도 어려워진다. 사실 협동조합은 만장일치가 어울린다.
의견이 갈려서 표결을 해야 한다면 비록 그것이 1인1표주의에 따른다 해도 우정과 공유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의 이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정은 없지만 깔끔한 주식회사 방식이 협동조합보다 낫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제활동에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주식회사가 채택되어 온 것이다.
사실 박원순 시장이 협동조합의 확산에 주력하는 이유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협동조합에 속한 사람이라면 강력한 경쟁자인 주식회사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기 십상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하게도 될 것이다. 그것은 좌파 진영이 바라는 바 아닌가.
이런 모든 문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의 설립을 쉽게 만들어준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활동 조직으로서의 협동조합을 막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시민의 돈으로 협동조합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미 서울시 전역에 4개의 협동조합지원센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협동조합 사업비의 80%까지 지원해준다고 한다. 주식회사를 몰아내는 일에 그 돈을 쓰는 것은 시장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의 돈을 쓰는 것이다.
또 서울시의 행정 조직을 좌파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이건 부당한 일이다. 협동조합을 확산하는 데에 서울시 공무원을 동원하지 말라. 또 서울시민의 돈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쓰지 말라.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프로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1988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2003년에는 숭실대학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2012년 3월 9년간 해오던 자유기업원장직을 떠나서 지금은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있다. 그 밖에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의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고,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정호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령 래퍼이기도 하다.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해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2011년 1월에는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라는 음반을 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김문겸 중소기업호민관과 같이 동반성장을 주제로 하는 랩배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공개했다. 제목은 We Can Do It! 2012년 10월과 11월에는 대학로 갈갈이홀에서 <기호 0번 박후보>라는 시사 코미디에 래퍼이자 강연자로 출연했다.
「비즈니스 마인드 셋」,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 「누가 소비자를 가두는가」, 「땅은 사유재산이다」,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등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