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직접 지시 없었다"...오너 직접지시 여부는 '부정'
[뉴스핌=강필성 기자]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SK그룹 펀드자금의 무단 인출 당시 최태원 SK 회장 및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의 지시로 판단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는 기존 진술을 뒤집는 것으로 앞으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는 이번 최태원 회장의 공판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가 운영하는 베넥스인베스트먼트가 SK그룹으로부터 펀드자금을 투자받았고, 이 중 450여억원을 펀드 설립 직전에 인출했던 것도 그였다.
20일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최태원 회장 등에 대한 배임·횡령 혐의 4차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김 대표는 “SK그룹 펀드 자금을 김원홍 전 SK고문에게 송금할 당시에는 최 회장 및 최 부회장의 지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심 재판 당시의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김 전 대표는 당초 최태원 회장 등의 펀드조성 관여에 대해 일체 부정한 바 있다. 그의 진술 번복은 이번이 세 번째로 당초 최태원 회장이 펀드 조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다시 번복한 바 있다.
이 때문인지 김 대표는 공판 전에 판사에 탄원서를 보내 “1심의 거짓 진술을 후회하고 있다”며 “이젠 물러날 곳이 없는 만큼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한치의 거짓 없이 사실을 증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김 대표는 증언을 통해 펀드 설립 및 과정에 대해 면밀하게 설명했다.
김 대표는 “최재원 부회장의 자금 조달은 김 전 고문과 함께 진행해왔고 2004년부터 10여 차례 이상 자금을 조달해왔다”며 “2008년 10월 24일 김 전 고문이 담보 없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문의하면서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주면 500억원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전 고문과 이같은 논의 이후 며칠 뒤인 10월 27일 김 전 고문과 최태원 회장의 만남이 이뤄졌다”며 “최태원 회장은 ‘10월 말까지 펀드를 만들 수 있겠냐’라고 물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이후 SK그룹 펀드자금 조달은 급속하게 진행됐고 결국 펀드자금이 출자된 상태에서 450여 억원이 김 전 고문의 지시로 무단 인출됐다는 설명이다.
김 전 대표에 따르면 이미 수차례 진행해온 자금조달 과정에서 김 전 고문에게 보고를 하는 것은 오너들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나중에는 아예 최재원 부회장 등에게 직접 보고하기보다는 김 전 고문에게만 보고하는 방식을 취했다.
때문에 펀드자금을 인출하라는 최태원 회장 및 최재원 회장의 지시를 직접 받지 못했지만 오너가의 뜻으로 판단했다는 증언이다.
이날 김 전 대표의 진술은 기존 진술을 뒤집는 동시에 최태원 회장 측의 변호인들과도 다른 입장을 내세웠다는 평가다. 때문에 향후 재판 과정에서 김 대표의 증언에 대한 반대 증거 및 신뢰성에 대한 공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최재원 부회장 측 변호인은 “증인이 우리를 공범으로 지목하고 있다”며 최재원 부회장 자금의 개인적인 유용의혹, 김 전 고문의 재무상황 악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최태원 회장 측도 김 전 고문과의 자금 거래가 개인적인 거래 차원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된 김 대표의 계좌 및 금전대차계약서 등을 제시했다.
사실 이같은 공방은 예정됐다는 평가다. 이미 최태원 회장 측 변호인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뒤집으며 펀드자금 인출의 주범으로 김 전 고문과 김 대표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김 대표는 기존 진술 번복 이유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최태원 회장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았다”며 “변호인 측이 ‘회장님이 선지급금에 관여했다고 언급하면 과대 포장이 된다’고 진술을 삼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다음달 3일 증인 출석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김 전 고문의 소환은 또 다시 안개속에 빠졌다. 지난 3차 공판 당시 재판부는 직접 소환을 설득하는 방법을 검토해왔지만 이날 공판에서는 주소를 제출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는 증인 취소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사가 직접 전화해 설득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변호인 측에서 주소지를 밝히지 않으면 소환장의 송달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