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필성 기자] “재판부도 이번 재판이 너무 어렵습니다. 하늘에서 계시라도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문용선 부장판사의 농담 섞인 하소연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검찰,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의 진술과 쟁점이 치열하게 법리공방을 펼치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3일 최 회장 형제 등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조기행 SK건설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추가 IB자금 설립 과정과 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추가 IB자금은 SK그룹에서 구조조정본부가 해체된 이후 설립된 투자회사관리실의 운용자금 충당하기 위해 생겨났다. 고위 임원에게 급여를 지불할 때 추가 IB자금을 얹혀 지불하고 이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수년간 139억원을 조성한 것이다. 최 회장은 이중 일부를 자녀 유학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검찰 측에서는 이를 최 회장 개인 비자금으로 보고 기소했지만 최 회장 측에서는 어디까지나 운영자금이었을 뿐,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맞서고 있다.
이날 증인대에 선 조 사장은 2005년 당시 SK 투자회사관리실에서 근무했던 임원으로 IB자금 설립과정을 깊숙이 알고 있는 인사다.
그는 “이 자금은 투자회사관리실의 독단으로 만들어졌을 뿐, 최 회장에게는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이것이 위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조 사장은 검사 측의 “박영호 투자회사관리실 실장이 IB자금을 만들면서 최 회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지시도 안받았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일축했다.
다만 재판부의 반응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내 재계서열 3위의 SK그룹이 자금 조성을 하면서 법리검토를 안할 수도 있냐”며 “박영호 투자회사관리 실장이 오너도 아닌데 회장에게 보고도 안하고 지시도 안 받는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조 사장이 긍정하자 재판부는 “수사 초기 대응한 변호인이 수사에서 유리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위법이나 비윤리적이어서는 안된다”며 “변호인 측은 증인의 위증이나 결과적인 위증이라도 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공판에서 최 회장 측은 다소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김준홍 대표 측은 펀드자금 인출이 김원홍 전 SK고문과 개인 거래였다는 최 회장 측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대표 측 변호인은 “펀드자금이 어디로 흘러갔고, 어디서 변제가 이뤄졌는지를 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며 “실제 451억원의 변제는 최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의 대출 자금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금대차계약서는 어디까지 세무조사를 받을 경우를 상정하고 만든 것으로 이율을 보면 회수 받을 자금을 전제하고 끼워넣기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펀드 자금 인출의 배후가 최 회장 형제라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 측에서 내놓은 근거가 박약해 보인다”며 “깊게 생각은 안하려고 하지만 김준홍 변호인 측 주장이 옳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최 회장 측은 “기존 증언과 오늘 발언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며 “따로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원홍 고문의 증인 소환은 결국 실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날 증인 취소를 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증인신청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가 소환에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최후까지 가능성의 실마리는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날 최 부회장은 “연락은 계속 하고 있고 증인으로 나와 달라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